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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성룡 Jan 07. 2024

긍정의 힘?

우리는 살면서 니체가 말한 것처럼 “목적과 의지” 그리고 “우연”, 이 두 가지의 영역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의 삶은 열과 성을 다해 노력을 해도 계획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한마디로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니체는 이를 “우연”의 영역으로 설명하면서 주사위 던지기를 예로 들었다. 우리가 주사위를 던지는 것이 바로 “목적과 의지”이고, 던져진 주사위가 허공에 떠 있는 상황이 “우연”이라는 것이다. “우연”은 나의 “목적과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다. 우리가 아무리 준비를 하고 결연한 “목적과 의지”로 주사위를 던져도 갑작스럽게 불어온 바람 한 번(“우연”)에 결과가 달라져 버린다. 그래서 우리의 대부분은 성경(잠언)의 “주사위는 사람이, 결정은 여호와께서”, 공자의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 같이 종교에 의지하며 살아간다. 문제는 우리가 종교(미신까지 포함)에 의지하고 열심히 기도하면 다 이루어질 거라고 믿고 “우연”의 영역에 너무 많이 매달리는데 있다. 우리가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면 “우연”도 결과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니체는 지혜롭고 실현 가능한 “목적과 의지”로 최선을 다한 후 결과는 “진인사대천명” 하는 것이라고 말한 것이리라.  

    

갑작스럽게 중요한 연락을 받고 먼 길을 떠나야만 하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한 밤중에 시동을 걸고 집을 나서니 한적한 시골길은 설상가상으로 짙은 안개 속에 쌓여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서 시동을 걸고 운전해서 나아가는 행위가 바로 “목적과 의지”이고, 안개로 예측불가한 상황이 나머지 영역인 “우연”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연”의 영역은 신의 결정이라고 믿든, 말 그대로 우연하게 일어나는 거라고 생각하든 우리가 우리의 노력과 선택으로 결정되는 영역이 아닐 뿐 아니라 우리의 “목적과 의지”없이 “우연”만으로 우리의 목적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비록 한 밤중에 짙은 안개 속에 쌓여 한치 앞도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난 이를 극복하고 꼭 가고 말거야 하는 “목적과 의지”가 있어야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설상가상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고라니를 만나거나 고장 나서 버려진 트럭과 마주치는 등 예측불가의 돌발 상황이 “우연”의 영역에 더해진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황에 맞게 속도를 줄이고 돌발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운전 능력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상시에 교육받고 훈련해서 능력을 배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리라.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목적과 의지”를 실현하려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능력”이 기본이고 여기에 “우연”이 도와주는 상황으로 더해질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는 자신의 “목적과 의지” 그리고 능력을 수반한 노력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우연”이 더해진 것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존 롤스가 그의 정의론 에서 주장한 “우연” 즉, 선천적 우연성 그리고 역사적・사회적 우연성의 개입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선천적 우연성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과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으로, 예를 들면 대재벌의 자손으로 또는 천부적 재능을 갖고 태어나는 것 등을 말한다. 또 역사적・사회적 우연성은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결과가 시대적 상황이나 사회적 환경에 따라 임의성을 띄는 것을 말한다. 이를테면, 매우 유능한 화가가 시대적 사조와 맞지 않아서 재능을 인정받지 못하고 궁핍하게 살다가 사후 어느 시점에서야 뒤늦게 능력을 인정받게 되는 경우라든가, 프로축구 선수 손흥민 못지않은 재능과 노력을 경주했지만, 비인기 종목 국가대표라서 손흥민 선수와 같은 부와 명예를 갖지 못하는 선수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따라서 우리가 얻어 누리는 성과(소득, 재산, 기회, 권력 등)가 자신의 능력과 노력만이 아니라 이상과 같은 “우연”의 개입이 더해진 것이기 때문에 사회 정의 차원에서 성과의 사회적 분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자는 것이다. 이처럼 “우연”의 영역은 우리 자신의 노력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에 존 롤스의 정의론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 한다. 그렇다면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결정되는 “목적과 의지”의 영역은 어떨까? 


“목적과 의지”는 제아무리 “우연”의 영역이 목적을 이룰 수 있는 상황과 조건을 만들어 주어도 스스로의 기본 능력이 없고 이를 실현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성취할 수 없다. 여기서 짙은 안개에 휩싸인 도로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 안개가 심하든 그렇지 않든, 고라니가 튀어 나오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우리 스스로가 시동을 걸고 운전을 해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바로 이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 아닐까? 한때 젊은이들 사이에 회자되었던 “근불감은 후회를 남기지만 근자감은 경험을 남긴다.”는 말이 생각난다. 이는 근거 없는 불안감으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후회만 남고, 비록 근거도 없는 자신감으로라도 일단 시도하면 설사 실패하더라도 경험이라도 남으니 긍정적 사고로 시도라도 해보자는 격려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긍정의 힘”은 매우 중요하다. 어떻게 보면 우리를 오늘날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원천도 “긍정의 힘”이다.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는 긍정의 힘이 우리를 여기까지 이끌고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긍정의 힘”이 도를 넘으면 희망고문이 된다. ‘하면 된다.’도 ‘중・꺽・마’도 모두 통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나의 능력(설사 내가 그 한계치를 모를지라도)은 나의 노력과 “긍정의 힘”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가브리엘 외팅겐은 그의 저서 “무한긍정의 덫(Rethinking Positive Thinking)”에서 여러 실험을 통해 목표 성취에 관한 긍정적인 환상이 실제 현실에서는 오히려 성취를 방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목표 성취를 위한 충분한 능력(재능)과 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계획이나 노력 없이 그저 동화속의 신데렐라나 알라딘처럼 자신의 인생을 꿈꾸듯이 바꾸고 싶다는 욕망만으로 가득 찬 사람일수록 긍정적 사고로 인하여 무의식적으로 목표 성취를 위한 실천 노력이나 극복해야할 장애 등을 동화속의 주인공처럼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있거나 쉽게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에 사로잡히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마디로 운동에 소질도 재능도 없는 사람이 손흥민 선수가 되겠다고 “하면 된다. 할 수 있다.”를 외치며 죽기 살기로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는 긍정의 힘이 아니라 긍정의 덫, 즉 희망 고문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적과 의지”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나의 노력과 의지에 상관없이 주어지고 펼쳐지는 “우연”의 영역을 살펴보는 것이다. 여기서 선천적 우연성으로 주어진 나의 재능과 능력의 한계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를 기본 바탕으로 단순히 풍요만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기여 가능한 일인지 검토해보고 우리의 “목적과 의지”를 계획하고 실행해야 한다. 


어디에 있나요제 얘기 들리시나요.

그럼 피 흘리는 가엾은 제 사랑은 알고 계시나요.

용서해주세요벌하신다면 저 받을게요.

허나 그녀만은 제게 그녀하나만 허락해주소서


가수 임재범의 노래 ‘고해’의 가사 일부다. 긍정의 힘만 믿고 근자감으로 그저 절대자에게 기도로 들이 밀면 원하는 욕심을 채울 수 있을까? 내가 그녀 또는 그이를 원하면 나 스스로 그녀 또는 그이에게 사랑 받을 만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욕심과 기도로 되는 것이 아니다. 긍정의 힘은 내가 원하는 목표를 나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 이룰 수 있을 만한 능력이 있을 때 발휘되는 것이다. 그러한 노력과 능력이 없을 때는 긍정의 힘은 오히려 덫이 되고 희망 고문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하자. 




* 위 글 ‘긍정의 힘?’과 관련한 내용은

  브런치북 “나뚜라”[https://brunch.co.kr/brunchbook/hyunso2]   

    14화 ‘3.1 가야할 길 : 행복_3’에서 존 롤스의 정의론과 

    16화 ‘3.1 가야할 길 : 존엄성_1’에서 웨팅겐의 무한긍정의 덫

    25화 ‘4.2 존엄성 실천하기_3’ 등을 중심으로 참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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