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레 6코스
오늘은 서귀포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고 이쁜각시가 서귀포오일장을 가보고 싶단다. 그래서 선배부부에게 우리 서귀포향토오일장에 갈 건데, 시장구경도하고 점심식사도 같이하자고 제안했다. 나는 사실 향토오일장이니 서귀포만의 독특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 기대했었다. 시장에 도착하니 인산인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다. 나의 기대는 점점 증폭되기 시작했다. 어렵게 주차하고 시장에 들어서면서 나의 기대는 와르르 무너졌다. 그냥 어느 도시에나 있는 상설 전통시장이다. 그런데 이렇게 몰려드는 인파는 뭐지? 단순하게 SNS의 힘이라고 믿기에는 여긴 젊은 친구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암튼 참 묘한 생각을 뒤로하고, 수국축제가 절정이라는 휴애리 자연공원으로 향했다.
<사진> 휴애리 자연공원
잘 가꿔진 자연휴양림의 하나로 생각하고 갔다가 입장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 아하 사설 식물원이구나. 갑자기 제주도민이 부러워졌다. 입장료를 50%나 할인해준단다. 암튼 절정의 수국을 기대하면서 공원에 들어섰다. 좀 실망스러웠다. 그냥 잘 가꾸어 놓은 수목원이다. 게다가 수국이 아직 듬성듬성 피었다. 관람객이 상당히 많아 차분해질 수가 없었다. 그나마 자연에 가까운 자연휴양림이 훨씬 좋은데 입장료도 비싼 사설 수목원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뭘까? 암튼 무언가 이유가 있겠지.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하고 김선배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니 아무것도 없고 식당을 홍보하는 플래카드 3개만 어른거린다. 그중에 하나를 찍었는데, 아마도 메뉴가 흑돼지 불고기였던 것 같고 상호가 “쇠소깍 모꼬지”이다.
별다른 정보 없이 거리의 홍보 플래카드 하나 보고 찾아간 식당치곤 음식이 맛있었다. 이 또한 여행의 묘미라고 생각하며 흐뭇하게 식당 안을 둘러보는데 10주년 기념 이벤트 안내문이 눈에 띈다. 5만 원 이상의 음식 값을 현금으로 계산하면 제주도 2박 3일 여행 쿠폰을 준다는 이야기다. 갑자기 혼자 밥해 먹고 회사 다니고 있는 아들 녀석이 생각났다. “오호라 경품에 당첨되면 아들 녀석 여행이나 보내줘야지” 살짝 사심이 들어가 들뜬 마음으로 현금 계산을 하니 바우쳐 하나를 준다. 유효기간이 일 년이고, 안내서에 있는 호텔에 예약하는 조건으로 공짜로 왕복 항공 티켓과 함께 2박 3일 여행을 시켜준단다. “아니 밥 한번 먹었다고 경품 추첨도 아니고 공짜로 2박 3일 여행을 시켜 준다고? 이게 가능해?” 묘한 생각이 들었지만, 이따 천천히 읽어보면 알게 될 테니까, 그냥 기분 좋게 집어넣고 오후 여행을 시작했다.
오늘은 올레 6코스의 검은여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소정방, 정방폭포까지 갔다가 검은여로 되돌아오는 해안도로를 걸었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다가 전망 좋은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도 한잔하면서 그렇게 또 하루의 오후를 만끽했다. 돌아오는 길에 쇠소깍에 들러 몇 년 전에 와봤던 정취를 다시한번 느끼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전에 들렀던 제주의 명소들은 시즌이거나 주말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관광 인파와 섞여서 돌아봤다면 지금은 아주 한적한 자연 그대로, 날것 그대로를 만끽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사진> 제주 올레 6코스(검은여에서 정방폭포까지)
<사진> (좌) 제주 올레 6코스의 해안 (우) 쇠소깍
숙소로 돌아와 기분 좋게 샤워를 하고 점심에 받은 이벤트 여행 티켓을 살펴보았다. 공짜 맞다. 제주 2인 왕복항공권과 2박 3일 자유여행 선택 시 렌트카 48시간 무료 제공이다. 단, 제주에어투어를 통해 항공, 숙박 및 관광을 예약해야만 하는 조건이 있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왕복 항공권을 주는데 공항세와 유류세는 자부담이고, 호텔은 그들이 지정하는 곳을 예약해야 한다. 따져봐서 그 돈이 그 돈이면 오히려 다행이다. 참 재미있다. 노자께서 “不貴難得之貨 使民不爲盜, 不見可欲 使民心不亂”라고 그렇게 일렀거늘 자본주의는 오늘도 인간의 탐욕을 끊임없이 자극하여 경쟁심리를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뜨려 결국엔 인간사회를 파멸의 길로 몰아가는 것은 아닐까? 어수선한 생각들과 함께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