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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보름 살기_12

교래 자연휴양림

by 이성룡

2019년 4월 22일 월요일 : 교래 자연휴양림

오늘은 2~3일 해변중심의 올레 길을 걸었으니 천혜의 숲속에서 자연을 만끽해보고자 교래 자연휴양림을 택했다. 이쁜각시는 아침부터 도시락 등 피크닉 준비에 바쁘다. “느긋하게 숲속에서 사색을 즐겨야지”하며 부푼 꿈을 안고 교래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였다. 어라 근데 어째 분위기가 좀 다르다. 붉은오름과 절물 자연휴양림과는 뭔지 모르게 분위기가 다를 뿐 아니라 사람도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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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교래 자연휴양림


분위기야 어떠하든 숲속에서 피크닉을 하러 온 것이니 자연그대로의 숲이면 좋은 것이고, 사람이 없다는 것은 호젓해서 좋은 것이니 “이 보다 좋을 수 있을까?”하며 숲으로 들어섰다. 붉은오름과 절물 자연휴양림과는 달리 관리를 하지 않은지 꽤 오래된 것 같아 보였다. 어째 인디아나존스 같기도 하고, 쥬라기 공원 같은 분위기가 난다. 게다가 피크닉을 위한 데크나 변변한 벤치도 없다. 어쩌다 발견한 콘크리트로된 벤치는 문화유적처럼 모퉁이가 부서지고 듬성듬성 이끼가 덮인 채로 방치되어 있는 듯 보였다. 산책이야 이색적이고 호젓하게 날것의 자연을 흠뻑 즐겼는데, 피크닉이 문제였다. 앉아서 식사할 만한 장소 찾기가 어려웠고, 그나마 적당하다 싶으면 바닥에 습기가 있거나 개미를 비롯한 각종 곤충들의 천국이었다.


호젓한 숲속에서 자연과 함께 피크닉하는 것을 즐기는 이쁜각시가 아이러니하게도 각종 벌레는 무서워하고 질색한다. 그러다보니 이 순간부터 원래 자연 그대로의 자연을 즐길 수가 없다. 인공의 도시에 길들여진 우리에게 자연이란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 아니라 붉은오름, 절물 자연휴양림과 같이 사람의 손길로 다듬어진 자연을 당연시 한다. 그러니 600만년 동안 초원에서 수렵과 채집의 유전자를 가지고 진화한 우리네 인간들이 자연이 그리워 캠핑과 피크닉을 즐기면서도, 인류 존재 기간의 1%도 안 되는 동안 구축한 문화와 문명에 익숙해져서 날 것의 자연에 대한 생각이 혼란스럽고 불편하다. 여기서부터 기후변화도 탄소중립도 내 자신의 문제가 아닌 사회의 문제요 정책의 문제로 떠밀어 버리는 시발점이 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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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황우지 선녀탕


결국은 일렁이는 마음결을 다스리지 못하고 올레 7코스 사이에 있지만, 올레 안내지도에는 빠져있어 아는 사람만 안다는 황우지 선녀탕으로 발길을 잡았다. 외돌개를 대표로하는 올레 7코스의 해안절경은 제주 올레길 중 가장 경치가 뛰어난 코스중 하나로 알려져 있어 제주에 관광객 중 외돌개 코스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다. 나도 이 외돌개 코스를 좋아해서 적어도 5번 이상은 와보고 걸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황우지 선녀탕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와보니 외돌개 코스의 해안 진입로 부분에 있는데, 안내판도 있는데, 7코스의 외돌개를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은 그냥 지나칠 수도 있겠다 싶다. 갑자기 마음결이 일면서 “화광동진(和光同塵)”이 떠오른다. 태양은 빛을 차별 없이 내려주는데, 그 빛을 받아들일 건지 거부할 건지는 나에게 달려있다. 한 평생 살면서 주어진 기회들을 기회인지도 모른 채 지나쳐 버린 일이 얼마나 많았을까?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80여개 이상의 계단을 내려가니 황우지 선녀탕이 보인다. 과연 선녀들이 드나들었을 법한 경치이다.

선녀들을 뒤로하고 최근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는 안덕 계곡으로 향했다. 안덕 계곡은 제주 10경 중 하나이고 제주 지정관광지이지만, 한동안 제주도민도 잘 찾지 않던 곳이었는데, TV 인기드라마의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젊은 사람들을 중심으로 핫 플레이스가 되었단다. 처음엔 주차장에서 내려 주위를 살펴보아도 계곡이 있을 것 같지 않아 보이는 지형에 의아했다. “계곡이 어디에 있지? 하며 이정표를 따라가니 도로 건너에 계단이 있고, 그 아래에 안덕 계곡의 비경이 수줍은 새색시의 비단 신발처럼 꼬~옥 숨겨져 있다. ”유레카“ 아르키메데스가 이런 기분 이었을까? 나무숲을 경계로 인간의 인공 구조물들 아래에 위치해 오롯이 태고의 자연만이 숨 쉬고 있는 것 같은 신비한 느낌이 든다. 벌써 제주 보름살기 막바지인데, 제주는 파고들수록 매력이 있는 곳 같다. 다음번에는 좀 더 오래 머물면서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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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덕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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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안덕 계곡과 한복 입은 신혼부부의 모습이 잘 어울린다.


절물휴양림에서처럼 오늘 하루 교래 자연휴양림에서 돗자리 깔고 자연을 사랑방 삼아 하루를 여유롭게 만끽하려던 계획이 의도치 않게 변경되어 황우지 선녀탕과 안덕 계곡을 선물처럼 받았다. 4차산업혁명이 어떻고 인공지능이 어떻고 하면서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우리가 사실은 한치 앞도 모르는 무지랭이 임을 애써 부인하며 살고 있는 것이다. 잡다한 생각을 정리하며 잠자리에 들기 전 한갑자를 넘게 살았어도 아직 사춘기를 사는 인생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이에 대한 시 하나를 적어 보았다.



사춘기


이성룡


님이 이성이라는 것을 주어

만물의 영장이 되게 하시더니

자유라는 것을 주어

민주주의를 꽃피우게 했지요.


이제는 그 이성이라는 것이

주인을 무는 개가 되고

저마다의 자유를 외칠수록

님의 뜻과는 반대로 가고 있네요.


밤이 오히려 화려한 환락의 도시

뒷골목에 듬성듬성 십자가도 빛나는데

오늘도 사춘기 사회는

허상의 꿈 따라 UHD 화면을 파고듭니다.


- 2019년 제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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