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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14. 2024

어 파이어

내게로 다가오는 산불


감독 : 크리스티안 페촐트

출연 : 토마스 슈베르트, 파울라 베어, 엔노 트렙스, 랭스톤 우이벨, 마티아스 브란트

촬영 : 한스 프롬

편집 : 베티나 뵐러

등급 : 12세 이상 관람가

장르 : 드라마, 멜로/로맨스, 코미디

국가 : 독일

개봉 : 2023.09.13.

러닝타임 : 102분

수상 : 2023 73회 베를린국제영화제(은곰상:심사위원대상)     


 작가가 주인공인 독일제 작가영화, 그런데 기존의 작가영화가 아니다. 좀 색다른 게, 어파이어의 작가는 지질하다. 그 지질함의 핵심이 주변과 어울리지 못한다는 에고이스트라는 것이다. 그렇다고 자기 세계에 빠진 천재 예술가도 아니다. 겨우 두 번째 책을 내려고 하는 신인 작가다. 

  그의 이름은 레온이다. 레온의 관심은 오로지 자기 자신뿐이다. 고장 난 차도, 하늘을 가로질러 가는 소방헬기도, 휴양지의 바다도 모두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눈 밖의 것들이다. 거기에 자신의 책을 출판해 줄 출판사 사장의 건강에도 한 걸음 떨어져 물러서 있다. 심지어 처음 볼 때부터 사랑하게 되었다고 고백한 나드야에게까지 제대로 된 마음을 표현하지 못한다. 

  이 상태의 극한점이 펠릭스와 데비드의 죽음이다. 시체안치실에서 눈물 한 방울 흘리고 있지 않는 그를, 뚝뚝 눈물 떨구며 나드야가 바라본다. 그리고 그녀는 그를 떠난다. 

  도무지 레온이라는 인간은 주변에 몰지각하다. 그저 자신의 글, 남이 봤을 때, 청소 아줌마나, 문학 박사과정의 대학원생 나드야나, 출판편집자나 모두 똑같은 결론을 내리는 것, 문학작품 혹은 예술작품은 계층과 지식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오히려 특정 지식과 계층을 대변하기까지 한다.


  예술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너(레온)의 바깥에 있다. 그것이 세상이고 나를 둘러싼 세계인 것이다. 세계를 버린 예술은 없다는 것, 그걸 ‘어 파이어’(어떤 화재)는 잘 보여준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에 완성된 레온의 원고는 훌륭한 작품이 되었을까, 하는 물음도 던진다.

  감독이 이야기하는 것은 그냥 거기에 머문다. 내게 ‘어떤 산불’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예술을 한답시고 내면의 사적 자아에 갇혀있는 그들만의 세계는 어떤 가치도 없다는 것.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가 훑고 지나간 탈중심적 세계관은 인간 개체수만큼이나 많은 중심을 양산했다. 그것을 ‘다양성’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이 영화는 그들이 다양성에서 제외시켜야 할 독단적 이기주의(레온의 세계)를 공격하고 배제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자아와 세계의 충돌에 해당하는 서사 장르의 탄생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서사와 리얼리즘의 본질에 해당하는 이론적 근간을 레온과 화재를 매개로 그려 낸 영화다. 과히 독일인적 사고의 틀을 있는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과 그들의 사상적 한계 또한 엿볼 수 있다는 점, 이와는 별개로 이런 것들을 표현할 줄 아는 그들의 상징과 은유의 발상에 더 방점을 찍어 이 작은 소품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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