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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Nov 03. 2024

전, 란

시대를 말하는 시대극

감독  김상만

각본  신철, 박찬욱

각색  김상만, 이자혜

출연  강동원, 박정민, 김신록, 진선규, 정성일, 차승원 외

제작  박찬욱, 윤석찬, 백지선

프로듀서  고대석

촬영  주성림

미술  이나겸

음악  조영욱, 이명로, 권소현, 신현지

편집  한미연

의상  조상경, 무술  류성철 서지오, 시각효과  정철민 최민호, 분장  조태희

조명  최종하, 녹음  조민호, 사운드  김석원

컬러리스트  박진영, 그립  정일서

제작사  모호 필름, 세미콜론 스튜디오

개봉일  2024년 10월 2일

상영 시간 128분 (2시간 8분)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넷플릭스 서비스 영화다.

  감독, 각본, 배역이 예사롭지 않다. 흥행보증을 전제로 작정하고 만든 기획작품으로 보인다. 시대를 시대극으로 만드는 각본과 면피성 각색. 고전소설이 가지는 혁명적 목소리가 당대에는 생명을 건 무서운 일이었겠지만, 후대에 보면 나약한 용기로 밖에 보이지 않음을 알게 한다.



전쟁반란

   겉으로 드러낸 제목을 통해 숨겨놓은 이야기가 드러나는 것도 일종의 아이러니한 표현이다. 꼬으고 꼬아서 만든 제목이다. 180도를 돌면 그냥 돈 거지만, 더 많이 360도를 돌면 그냥 제정신이 되는 것과 이치는 같다.  

   영화를 네 토막으로 나눠 놨다. 영화시작 후 23분에 '전', 46분에 '쟁', 1시간 30분에 '반', 2시간째에 '란'. 그래서 이 영화는 이중서사구조를 지녔다.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 외화는 종려와 천영의 신분(계급)을 뛰어넘는 우정을 그리고 있지만, 속에 숨겨놓은 이야기는 내화는 오히려 대문짝만 하게 화면을 차고 나오는 글자들에 있다.

  전쟁반란, 왜란이 시작되고, 백성의 분노가 극에 달하고, 의병장 자령은 모함에 의해 처형되고, 코를 절여놓은 함이 열리자 모든 조건이 완성된다. 전쟁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외세를 물리치고 주권자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 내란이 벌어진다는 뜻이다. 이쪽과 저쪽의 싸움이 무의미하다는 것은 종려와 천영이 맺은 원에 대한 진실이 드러나고 각본을 쓴 자가 처음부터 품었던 속을 내 보이면서 쉽게 마무리된다. 이건 진짜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각본을 각색한, 각색의 페이크다. 네 토막 중, 쟁과 반 사이가 50분을 차지할 만큼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만, 란이 터진 후 고작 2분 만에 엔딩이 올라가면서 '짐승(중생) 풀이' 대동놀음으로 나가는 것은 이 드라마가 달려가야 할 곳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대미에 해당한다. 어떤 영화가 이제 제목이 올라갔는데 끝나랴? 무언가 새로 시작하라는 암시다, 너희들이!


사극

  사극,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허구를 만들 때,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지 못하는 역사관을 가진 민족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어찌보면, 현실을 죄다 역사로 보고 았는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디까지 창작을 허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토론이 회자될 만큼 TV사극이 유행했던 적이 있으니까, 웃기는 일이다. 어떤 역사적 사실도, 지금 다시 언급한다는 것은 모두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는 진지빠는 사람들의 소행이다. 과거의 시간 속에 이미 벌어진 사건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강의 소설을 가지고 역사적 왜곡 운운하는 인간들을, 그래서 우리는 색안경을 끼고 쳐다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찌 개뿔도 모르면서 창작을 한다고...

  각설하고, 뻔히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을 재현할 때 그것을 넘어서야 하는 창작자의 고뇌가 있다. 역사성에 흥미와 주제의식까지 고루 갖추어야 하는 큰 짐을 짊어져야 할 판이 되어버린다. 그런데 이 영화는 두루 갖추었다. 무협의 흥미성과, 역사의 현재성, 두 사람의 대결로 페이크 쳐서 진짜를 숨겨 놓는 재주까지 역시 박찬욱의 각본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제재 자체가 가진 위험요소를 극복했을 때 수작이 탄생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선조, 차승원

  강동원은 뭐 그렇고 그런 역할에 충실한 연기자로 나무랄 데가 없다 치고, 베테랑 차승원의 연기는 한 꺼풀 벗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다른 어떤 메이저급의 연기자들을 능가할 수 있는 자질을 보였다고나 할까, 어느분야든 오래 하다 보면 매너리즘에 빠져 그게 그거 같은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농익으면 떨어지게 마련이기도 하련만 그가 보여준 선조의 무능, 시기와 욕망, 보신적 이기심이라는 복합심리를 가진 캐릭터는 스크린에서 살아나올 것 같은 현실의 인물을 창조해냈다. 그 큰 키의 장대한 체구가 허수아비처럼 보이고, 튼튼한 골격들은 나약해 보이기까지 한다. 또한 그의 눈빛은, 최근 보여주는 눈빛을 넘어선다. 어디까지 가능한 배우인지, 더 많이 보게 만든다.

 


박수받을 영화

  종사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영화다. 어느 것 하나 놓친 것이 없는 영화, 그들이 무엇을 추구했건, 이건 참을 수 없는 우리의 시대를 이야기하는 시대극이므로, 과연 그들이 의도...? 제목 뒤의 포스터를 보라, 마치 동학혁명기념관에나 나올 법한 벽화 그림이 아니던가 말이다.

  역사는 현실로부터의 도피라고 누가 그랬던가, 당당히 칼들고 돌아온 사극을, 시대극을, 전쟁반란을 봐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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