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 사는 문제는 다양성이 주요 이슈로 떠오른 한국사회의 사회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핵심문제에 해당한다. 성 소수자, 민족 소수자, 탈북 소수자, 모든 소수자의 문제를 이렇게 열거해 보면 한국사회가 민주화되기 시작하면서 숨겨지고 감춰져 있던 소수자 문제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고 있는 형국이다. 그리고 그 부당함은 싸움이 되어 다수의 주변을 맴돌며 불편함으로 남아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말 하지 않고 있는 문제들, 그 중 한 가지가 장애인 문제다.
우선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자신에 대한 문제로 처우와 관련한 법과 제도의 문제, 불편함과 관련한 생활의 문제들을 떠올려 볼 수 있는데, 이들 모든 문제가 사실은 장애인을 돌보는 그 부모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장애인들의 삶을 대변할 수있는 유일한 존재가 바로 그 부모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에게'는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그 누구도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현실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상연은 잘나가는 정치부 기자다. 편집장에게 인정받고, 의원에게 큰소리치며, 기자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는 스스로에게 당당한 여기자다. 신혼의 단꿈 속에 훗날 편집장이 되어 있을 자신의 계획을 포함시킬만큼 당찬 여장부 스타일, 꿈과 패기로 똘똘 뭉친 불의에 타협하지 않는 정치부 기자, 상연.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출산에서부터 시작된다. 이란성 쌍둥이 지수와 지우를 출산하면서 사고가 발생, 늦게 나온 지우가 장애 2급판정을 받은 자폐아가 된 것이다. 이 때부터 영화는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의 수기가 된다. 장애아동 단체의 모임에 나가고, 시위에 참가하면서, 세상은 장애아에 대한 편견과 부당한 대우로 가득 차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절망한다.
일상은 무너지고, 출산후 직장 복귀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학보사 선배의 과격한 조언, 장애아를 키우는 한 '너는 없다고 생각해.'라는 말은 씩씩했던 상연을 숨막히게 만든다. 통합반 엄마들의 불만, 마트와 키즈카페 등 공공장소에서 벌어지는 지우의 발작 등은 상연을 주눅든 늘 죄인의 심정으로 살아가게 만든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 하나하나가 모두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신을 믿지 않는 상연에게 현실은 그녀의 종교였다. 현실이 보여주는 좌절과 절망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 교육에 쏟아부은 돈의 액수만큼 아이는 성장한다는 말을 믿기로 한다. 그래봤자, 10살정도의 지능을 가질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되면 혼자 살 수는 있지 않겠느냐는 고작 그 정도의 희망에 힘을 낸다.
담임교사가 특수학교로 전학갈 것을 권유하고, 의사가 장애등급의 부당함을 묻어 두고 있는 이런 비인간적인 부당한 현실 앞에 상연은 분노하고 주장한다. 그러나, 장애아의 엄마라는 현실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그 자리에 있다.
한 사회에서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게 성처를 입고, 일반인 보다 절망과 좌절에 가 닿기가 더 쉽다는 것을 말한다. 그 소수자가 어떤 종류의 소수자이건 다 똑같다. 자신이 다수 쪽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죄인이 되어야만 하는 사회, 그런 국가는 다수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과 야만 그 자체다.
그래서 소수는 약자가 된다. 약자는 공격받고, 매도당하고, 눈총을 받아야한다. 그러지 않기 위해 그들이 겨우 할 수 있는 일은 연대하는 일이다. 약자의 연대, 소수자의 연대, 여성의 연대, 엄마의 연대가 등장하는 이유가 그렇다. 함께 가자고 손을 내미는 행위가 그렇게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일까, 영화는 그런 마음들을 생각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