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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Dec 14. 2024

아침바다, 갈매기는

그렇다고 죽을 수 없는 갈매기들

장르  드라마, 가족

감독  박이웅

각본  박이웅

제작  안병래

주연  윤주상, 양희경, 박종환

촬영  이진근

편집  안현건, 한영규

음악  연리목

촬영 기간  2023년 3월 ~ 2023년 5월

제작사 고집 스튜디오, 엔진을켜 스튜디오, 체리코끼리

배급사 트리플픽쳐스  영화사벌집

개봉일  2024년10월 6일 2024년11월 27일

화면비 1.85:1

상영 시간  113분

상영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새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난다는 동요, 잠꾸러기 없는 나라가 우리나라이며 좋은 나라라는 아이들의 노래, 그래서 잠이 없는 아이들이 일찍 일어나 좋은 나라를 만든다는 '새나라의 어린이'들이 새마을운동을 했던 1세대들의 연가와 같은 영화다. 모든 혁명에는 피의 역사가 담겨있듯, 밝음 속에는 어둠이 그늘져있다. 처참한 생활의 그늘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희망이 있다면, 그건 세대교체다. 다음 세대가 세대교체를 실천하면 그건 도발이고 항거이며 시대에 대한 반항이다. 그러나, 세대교체를 현세대가 주도한다면 그건 명예혁명쯤으로 기억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아이들의 검인정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라, 슬프기까지하다.


  월남전까지 갔다오며 치열하게 살아온 마초 할배 '영국'은 어선을 한 척 가지고 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는 선장이다. 그에게는 뼈아픈 가족사가 있다. 자신의 사려깊지 못함으로 인해 딸 하나가 죽었고, 그로 인해 다른 딸과 연도 끊고 살고 있다. 물론 딸 쪽에서의 단절이다. 그에게 가족은 지울 수 없는 지난 날의 문신같은 것이다. 팔등에 새겨진 월남 참전 부대마크 문신 같은 것.

  영국의 배를 타고 투망질을 하는 용수는 삶의 희망이 없어 늘 정신줄을 놓고 있다. 그물에 다리가 걸려 죽을 뻔한 적도 있을 지경이다. 그가 영국에게 자기가 사라지고 보험금을 타서 그의 어머니 판례와 베트남에서 온 아내 영란과 함께 베트남으로 도주하여 행복하게 살아 보고 싶다. 자신이 꾸민 보험 사기를 영국에게 도와달라고 한다. 현생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그것 뿐이라고 용수는 믿고 있고, 거기에 영국이 조력자로 나서며 사건은 시작된다.

  그러나, 예상 외의 사건들이 발생하게 된다. 보험금을 타기 위해서는 사람이 죽었다고 판명되어야하는데 그걸 계산하지 못했던 것, 한편으론 남편이 죽으면 베트남인 아내 영란은 추방되어야 하는 계획에 없던 난관들에 부딪힌다. 서류미비와 법적 행정처리의 결과다. 영국은 용수의 아내 영란을 통해 사망신고를 하게 하고 보험금을 타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바로 불법체류로 추방될 처지에 놓이기 때문이고 용수의 계획은 단 한번에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그 사이 용수의 어머니 판례는 아들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하고, 아들을 수색하고 찾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더욱이 영란이 보험금을 타기 위해 사망신고를 했다는 데에 격분한다.


  이런 절박한 생활 드라마가 연속된다. 그런데, 이 영화가 단순한 생활 드라마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은, 캐릭터들 속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인생을 담았고, 그 연장선 상에서 인물들이 생동하고 있다는 이중적 성격을 창출한 데 있다. 또한 젊은 사람들에게 미래가 없는 어촌, 다문화인 시선으로 바라본 다문화 문제, 도시에서 돌아온 마을청년이 바라본 현실감 없는 마을 공동체, 지리멸렬하게 실패한 인생들의 집합, 이런 집단과 인물의 총화를 이 영화가 전제함으로써 드라마적 한계를 극복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군상들 중에서 영국과 판례는 '새나라의 어린이'가 마지막으로 간직한, 포기하지 못하고 버릴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존재 이유를 드러낸다. 그래서 그들이 부르는 노래는 내일을 노래하지만 슬프고, 희망을 노래하고 싶지만 절망에 발목을 잡힌다. ‘아침 바다 갈매기’는 웃고 있지만 울어야 하고, 눈물이 흐르지만 미소 역시 번지게 되는 그들 삶의 종착역이다.

  마지막까지 놓지 못한 것, 영란을 야반도주 시키는 것이, 영국과 판례에게 선택한 마지막 탈출구다. 그들이 자신들에게는 하지 못한 행위를 좌절의 굴레에 매여있는 용수와 영란 부부에게 쏟아 낸 것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리고자하는 감독의 긍정적인 세계관이다. 이건, 단순하지 않다. 큰 정신세계를 전제하지 않고서는 보여줄 수 없는 세계다. 빈틈 없이 막막한 이 세상에서 형식적 결말이라는 상투적인 단조로움에서 벗어나 더 큰 세계에 진심으로 가서 닿고 싶은 연출의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나 보인다. 그 마음이 아름답지 않은가.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 찬 아침바다 노저어가요.


  희망으로 가득찬 동요의 가사들이 사실은 슬픔을 전제한 음률로 노래불린다는 걸 알아챘다면, 그건 우리 삶의 모습을 바르게 직시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고갱이로서의 삶, 돌이킬 수없는 후회로 점철된 단 한번 뿐인 그들의 삶이 슬프기에, 우리는 희망의 노래를 불러야만 한다. 삶이 그렇다고, 그렇다고 해서 죽을 수는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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