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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간의 귀향

by 별사탕

데이비드를 낳고 3년이 지나는 사이, 참 많은 일들이 내게 일어났다는 걸 실감했다. 폭풍이 몰아치고 난 뒤 쑥대밭이 되어버린 현장을 추스르는 심정이었다. 쓸고 닦고 치우고 정리하는 시간들이 지나갔고, 지금의 현실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어진 날들을 보내는데 감사했다.

종일 아이가 뛰어다니는 걸 뒤 쫓아가며 치다꺼리를 해대는 것이 일상이었고, 그나마 돌이 되기 전까지 젖만 빨고 있던 아이를 쳐다보며, 순하게 크고 있다는 생각은 데이비드가 일어서서 걷기 시작하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누굴 닮았냐는 다니엘의 물음에 그럴리야 없겠지만, 철호라는 이름이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걸 눌러야 했다.

고달픈 즐거움이라고 할까, 위로 두 아이를 키우면서 몰랐던 애틋함이 데이비드에게 가득했다. 행복함을 넘어 생의 축복을 받았다는 느낌으로 충만한 생활이었다. 분초단위로도 끊어지지 않는 미소가 얼굴에서 떠나지 않았고, 나는 세상 모든 것들의 중심에 존재했다.

베이비 시터를 파트로 써가며 병원 근무 시간을 한 달 단위로 조절했다. 다니엘과의 결혼 생활은 편안하게 안정되어 갔고,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무엇보다 급여가 고생을 충족시켜 주었다. 그렇게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는 상태로 더 없는 만족으로 굳어있던 얼굴이 주름 하나 남김 없이 펴지는 기분이었다.

출근하는 4월의 아침이었다. 먼 데서는 새파란 바탕의 하늘에 하얀 뭉게구름이 군데군데 멈추어 섰고, 코가 닿는 가까운 데서는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깨끗한 공기로 가득 찬 그림 같은 화창한 날이었다. 차창유리에 햇볕을 담고 달리는 차량들의 미소 띤 행렬 속에서 저마다의 즐거운 속도로 산타모니카를 향해 넘어가는 프리웨이 상에서 전화가 울렸다. 수원의 언니였다.


"어젯밤에 엄마가 돌아가셨어. 너 깰까 전화 못 하고 이제 하는 거야."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리고 느닷없이 벌을 내가 이렇게 받는구나 하는 생각이 한쪽 마음 구석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나는 브레이크를 밟으며 카풀 래인으로 들어갈까 망설이던 차를 갓길로 뺐다. 그리고 조금씩 속도를 줄이며 가이드라인 옆으로 차를 세웠다.


"다니시던 병원이 수원 성모였잖아, 영화동 거기로 잡았어."


연세가 있어 인공관절 수술을 한 것을 제하면 잔병 없이 건강하시던 분이었다. 늘 자식들 걱정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는 세월을 보내신 분, 일찍 남편을 보내고 자식들을 다 길러낸 분이었다. 가슴이 미어졌다. 언니의 목소리가 오픈 스피커로 차분하게 차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래도 너 이혼한 거 끝까지 모르고 가셨어. 어젯밤까지도 김서방 찾았고, 애들 보고 싶다고 하셨거든. 데이비드는 잘 크지? 다니엘은?"

"응, 다... 잘... 있어."


나는 입을 벌린 채 소리 죽여 울었다.


"너 울고 있니? 괜히 지금 전화한 거 같다. 출근 중일 텐데... 나중에 마음 가라앉히고 전화 줘. 참, 낼모레가 발인이니까 서둘러야 돼. 이번에 데이비드 다니엘 다 같이 오면 좋겠다. 형부도 얼굴 보고 싶어 하고, 큰 언니나 오빠도 많이 보고 싶어 해."


그렇게 갓길에 정차한 채 한참을 서있었다. 엄마 얼굴, 아버지, 할머니 얼굴이 차례로 떠올랐다. 대학 입학식에 상경해서 학교 앞 중국집에서 탕수육을 사주던 아버지 옆에서 환하게 웃고 앉아계시던 엄마의 얼굴이 오버랩되었다. 모든 게 모자랐지만 아름다웠던 시절이었다. 마치 흑백사진처럼 마음속에 정지된 화면으로 남아 있는 기억들이 현실의 나를 붙잡았다. 얼마나 그렇게 시간을 보냈을까, 순찰대 차량 한 대가 뒤에 멈춰 섰고, 까만 안경을 쓴 제복의 경찰이 창문을 두드리며 노크했다. 나는 창문을 내리며 눈물을 훔쳤다.

괜찮냐는 물음으로 고개 숙인 경찰은 차 안을 살펴보고 어깨를 으쓱이며 이내 사태를 파악했다. 목적지를 물어본 경찰은 자기를 따라오라며 뒤에 세워둔 차를 끌고 내 앞으로 질러 나갔다. 그렇게 순찰대 차량은 산타모니카로 나가는 곳까지 안내해 주었다. 세상은 모두 친절했고 평화로웠다.

요양원에 붙어있는 병원 주차장에 들어와 다니엘에게 전화를 했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 11시 조금 넘은 시간에 다니엘로부터 비행기표를 구했다고 전화가 왔다. 그런데, 데이비드와 다니엘은 좀 더 시간을 두고 구할 수 있을 거라고 했고, 함께 갈 수 없어 너무 안타깝다고 했다.


"급하게 찾아서 티켓이 딱 일주일이야, 변경 안 된대. 연기할 수 없는 티켓이라, 나도 갈 수 있으면 데이비드 데리고 가고 싶은데..."


저녁 비행기였다. 급히 병원에 일주일 휴가원을 썼고, 몇몇 직원들로부터 애도를 받고 오후에 조퇴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해요,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데이비드를 보던 미시즈 정이었다. 애들 공부시키러 왔다가 심심하다며 애를 보는 일이라도 하겠다며 제이빗을 돌본 지 1년이 지나고 있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태워주고 나면 우리 집으로 출근하는 셈이었다.

데이비드를 안은 미시즈정이 따라다니며 캐리어를 꾸리는 데 도와주었고, 간단하게 옷가지와 생필품을 챙기고 가방을 닫았다. 다시 안방으로 들어가 옷장을 열고 안 쪽에 숨겨둔 가방을 꺼냈다. 틈틈이 모아둔 현금과 각종 신분증을 넣어 두었다. 한국에 있는 친척, 조카들을 떠올리며 한 장씩 돈을 셌다. 아이들 1인당 100불, 따로 식사비 선물비용을 계산했다. 넉넉하게 300불을 챙겼다. 그리고 혹시 모르니 한국 주민등록증도 여권 지갑에 챙겨 넣었다. 여권 표지의 독수리문양을 내려다 보면서, 새삼 내가 미국인이 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미시즈 정, 잠깐만..."


나는 미시즈 정에게 잠깐 내려가 있으라고 눈짓하고 침대에 걸터앉았다. 방문이 닫히고 사방이 고요해졌다. 열린 창문으로 작은 새들이 짹짹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늘 들리는 새소리였다. 팔로스 버디스 언덕 위 주택가, 부자들만 산다는 주택지구였다. 차를 몰고 언덕을 올라오는 도로 한쪽에 빨간색 우체통이 대문 옆에 세워진 집, 안쪽으로 잔디밭이 파랗고, 현관을 들어서 계단을 밟고 거실로 올라가면 곧장 뒷마당으로 통하는 유리문이 보인다. 그 문을 열고 나가면 넓은 잔디밭 뒤뜰, 파라솔 아래 바비큐 그릴이 한쪽으로 정리되어 있고, 벽 에는 여러 방식으로 분사할 수 있는 호스가 매달려 있는 곳,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어떤 시선도 없는 자유로운 공간이 거기에 있었다.

거기에 돗자리를 깔고 텐트를 치고 잔 적이 있었다. 멀리 태평양의 파도소리가 철석이고, 밤하늘의 별들이 반짝거리는 밤이었다. 돔처럼 하늘로 난 돔텐트의 문을 열고 우린 발가벗고 누워 서로를 안았다. 내 몸은 그에게 가서 열렸고, 그의 몸은 내게 들어와 정박했다. 그렇게 넘실대는 파도를 타고 우리는 출렁거렸다. 태평양하늘의 별들이 우리에게 낮게 내려와 속삭였다.

그리고 이 침대와 열린 창은 우리의 생활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했다. 빈방이 그와 나의 흔적, 공간의 체적으로 자리했다. 생각해 보면 지난 3년간 그와 난, 이 공간을 떠나 있었던 적이 없었다. 우린 3년을 잘 살았고, 완전한 행복이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도 3년 만이었다. 그 사이 시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제 내 어머니도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국으로 나간다. 지난 10년간 미국생활, 아니 지난 20년간의 내 결혼 생활의 종지부를 찍고 비로소 자유로운 몸이 되어 한국으로 나가게 된 것이다. 내겐 그래서 새 출발과도 같은 소회로 다가오는 귀국이 될 것이다.


다니엘이 데이비드를 데리고 배웅하는 차를 타고 저녁 8시에 엘에이 공항에 내렸다. 2층 출국장에서 간단히 포옹을 하고 데이비드를 안았다. 다시 데이비드를 다니엘에게 넘겨주고, 한번 더 다니엘을 끌어안았다. 그렇게 출국심사장을 통과하고 비행기 승강장으로 넘어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은 시장통 같았다. 태반이 한국사람들이었고, 그들은 조용한 듯 시끄러웠다. 이렇게 한꺼번에 많은 한국사람들과 함께 뭔가 동시에 한 적이 있었던가, 친근하고 어색한 한국말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조용하지만 시끄럽고 이질적이지만 친밀한 아이러니가 그들과 나 사이에 존재했다. 11시간을 날았고, 잠깐 졸다가 눈을 뜨고 창밖을 보았고, 다시 눈을 감았다가 주변을 돌아보는 일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였다.

기압이 내려가면서 붕 뜬 머릿속이 제자리를 잡는가 싶더니 몇 번의 덜컹거림과 함께 비행기는 착륙했다. 보딩브리지를 향해 가는 활주로를 미끄러져 들어가면서 승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트렁크를 열어 캐리어를 내리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 중에 섞여 작은 캐리어를 꺼내 복도의 긴 줄에 섞였다.

짐을 넣은 큰 캐리어를 찾아 세관을 통과해 나온 시간은 정확히 새벽 3시 30분이었다. 실제 흐른 시간과 내가 겪은 시간과의 격차를 인지하면서 시간이 조금씩 덜 간 느낌이었다. 더디게, 아무리 빨리 달려도 시간은 천천히 가서, 도무지 제자리를 벗어날 수 없는 수렁과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래서 다시 한국이었던 것이다.

이 새벽에도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출국장 바깥에 몰려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선글라스라도 껴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놀라운 것은 저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 일면식도 없을 거라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모를 무방비 상태의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언젠가 나는 검은 안경이 필요할런지도 몰랐다.

멀리서 사람들 속에 섞여 있는 얼굴 하나가 들어왔다. 쑥색 쇼트 버버리를 걸친 상기가 사람들 속에 서 있었다. 4년 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캐리어를 받아 든 상기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우리도 남들처럼 한 번 안아야 할 거 같은데?"

"여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감당할 수 있겠어?"

"다 큰 우리가 남몰래 어디 숨어서 안아야겠어?"

"넌 항상 이런 식이지..."

"그동안 많이 우렸잖아? 진국이 곰삭아서 사골이 푸석거려..."

"아직 우려먹을 골수가 남았나 봐, 집 정리는 좀 해 놓았니?"

"그럭저럭, 스케줄 겹치지 않게 조정하느라 좀 무리했어."


도로를 두 개 건너 주차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상기의 SUV 트렁크에 캐리어 두 개를 싣고 어깨에 멜 쌕을 꺼내자 상기가 트렁크를 닫았고, 그가 허리를 끌어당겼다. 날 차에 밀어 세워놓고 상기가 나를 내려다봤다. 나도 그를 쳐다보았다.


"7일간 나를 에스코트해야 하는 이별 여행이 될거야."

"동의해. 이제 누나를 놔주려고 해."

"내가 널, 놔주는 게 아니고?"

"계약은 서로에게 동등한 거니까, 완전히 일치하는 계약 종결이네."


상기의 손이 허리춤 사이로 들어와 힙 라인을 감쌌다.


"넌, 다시는, 날 가질 수 없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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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