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기의 아파트에 짐을 푼 다음날 상기의 차로 수원의 장례식장으로 갔다.
"연락할게, 일 보고 있어."
"24시간 대기, 충성!"
활기찬 표정을 지으며 상기는 동수원 사거리 쪽으로 멀어져 갔다. 병원 정문으로 걸어 들어가 안내표지에 따라 오른쪽으로 접어들어 응급실을 지나자 사람들이 벽에 붙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장례식장의 자동문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 설치된 ATM기와 그 옆에 돈을 넣을 수 있도록 봉투와 필기도구가 마련된 스탠딩 데스크가 보였고, 좀 안쪽 벽의 큰 모니터에는 사망자와 상주들의 이름이 초단위로 넘어가는 화면이 보였다.
엄마의 이름을 찾았다. 상주이름에 오빠의 이름이 보였고, 호상자 명단 맨 끝에 내 이름도 보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내려오는 고모를 만났다. 고모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붙들고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키웠다는 어린 고모였다.
고모손에 이끌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자 언니 오빠, 조카들이 일제히 달려 나왔다. 엄마는 한 덩어리의 식구들을 남기고 간 것 같았다. 언니가 상복을 입어야 한다며 등을 떠밀어 내실로 들어갔다. 까만색 치마저고리로 갈아입자마자 언니는 나를 바닥에 주저앉혔다.
"애들은? 다니엘은?"
"너무 급해서 티켓을 못 구했어."
"그래, 어쩌면 잘된 일이야. 그럼 김서방 연락해도 될까?"
"왜? 그 사람을 왜?"
"아니, 아직 너 그렇게 된 거, 아는 사람은 우리 식구 말고 아무도 몰라. 그리고 김서방도 알아야 하는 거 아냐?"
순간적으로 고민스러웠다. 전혀 생각지도 않은 일이었다. 어떻게 그 사람을 오라고 하는 게, 합당한 처사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더구나, 내가 죄를 지었는데 무슨 면목으로 그를 오라고 한단 말인가. 한국의 대행사에 이혼 청구 요청을 하는 순간 철호를 다시 볼 일이 없다고 믿었다.
"언니, 내가 잘못해서 그런 건데, 그 사람한텐 미안한 일이지만 내 일로 그 사람 보고 싶지 않아."
"이게 어째 니 일이야? 다른 친척이나 지인들한테 뭐라고 해? 너 전에 온 후로, 3년 만에 다시 왔는데 그때도 그랬고, 남편이 같이 안 왔다 그러면 남들이 어떻게 보겠어? 설사 헤어졌다 하더라도 인정상 그러는 것도 아닌 거 같고... 그래도 20년간 우리 집안 사위였잖아."
"이게 남 눈치 볼 일이야? 나도 너무 미안해서 그래, 그 사람한테 죄스러워. 그렇지만 안 보고 싶어."
"이 것아, 엄마를 생각해 봐. 엄마는 김서방 안 보고 싶겠어? 마지막 가시는 길에?"
언니에게 시간을 두고 생각을 좀 해보자고 말하고 방을 나왔다. 제단 앞으로 가서 엄마 사진을 보았다. 7순 때 찍어둔 사진을 액자에 끼웠다. 사진 속의 엄마는 활짝 웃고 있었다.
"엄마 영정 사진 찍으면 더 오래 산대."
굳이 찍기 싫다는 사진을 이왕 칠순잔치를 동네에서 하는 마당에, 곱게 차려입었으니, 떡본 김에 제사 안 지낼 테니 사진사도 왔고 온 가족이 다 모였으니 가족사진도 한번 찍자고 목소리를 높였던 것이다. 싫다며 손사래를 치던 엄마는 엉거주춤 의자에 앉아 사진사가 웃는 꽃이 제일 이쁘다는 말에 부끄러워하다가 활짝 웃고 말았다. 그렇게 웃었던 얼굴이었다.
향을 태우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훌쩍훌쩍 눈물이 났다. 언니가 나를 끌어안고 제단 구석에서 부둥켜안고 같이 울었다. 한산하던 장례식장이 흐느낌으로 더 고요해졌다. 슬픔은 산 사람들의 정적으로 남겨진 것 같았다.
그렇게 오후 나절이 지나고 저녁답에나 되어서야 멀리 사는 친척들이 왔다. 가족들의 지인들이 띄엄띄엄 찾아왔고, 엄마의 고향 친구들이 자손들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왔다. 한 사람의 죽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미국 산다는 막내딸이야?"
엄마의 고향 친구들이 손을 잡고 어깨를 쓰다듬고, 등을 쓸어내렸다.
"니가 엄마에겐 큰 자랑이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얼굴이 붉어졌고, 슬픔이 가슴 한가운데로 복받쳐 올랐다. 언니의 친구들도 내 손을 잡아주었고, 오빠의 친구들은 코 흘리며 개울창에 첨벙거렸던 꼬마가 이 애냐며 놀렸다.
"남편은? 안 왔어?"
"똑똑한 이 집 사위는 왜 안 보인데?"
밤이 되자, 이런 말들이 귀에 들어왔다. 언니가 다시 나를 내실로 불러 앉혔다.
"그러는 거 아닌 거 같아. 엄마가 늘 김서방 자랑을 그렇게 했는데, 여기 없다는 게 나도 많이 서운해. 그냥 오늘내일 가시는 길 함께 하자. 눈 한번 딱 감고, 김서방이 잘못한 일이 없으니까, 김서방이 갑이야. 우린 쥐 죽은 듯 가만있으면 돼. 사정은 아무도 몰라, 그치? 조용히, 아무도 모르게..."
온갖 말로 언니는 나를 설득했다. 철호는 그만큼 친정식구들에게 잘했다. 집안 대소사를 챙기는 일에 게으르지 않았고, 특히 엄마를 찾아보는 일은 열일 제치고 네 시간 거리의 시골에 내려왔다. 술도 잘 마셨고, 동네 사람들하고도 잘 지내서 명절 때면 그 집 사위 안 왔냐며 집에 들러 보는 이도 있을 정도였다.
“내일 아침이 발인이야. 오늘 저녁에 오는 게 맞아.”
문상객의 테이블을 치우며 언니가 다그치듯 말했다. 나는 제단 옆 호상 중인 오빠를 쳐다보았다. 감정을 느낄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하얗게 샌 머리카락, 온몸에 피로를 견뎌내며 허리를 숙인 모습이었다. 어쩌면 이들이 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철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이 어떤 말을 할지 예상할 순 없지만, 최소한 나에게, 그리고 우리 가족에게 해를 끼치진 않을 거란 믿음이 생겼다.
비난과 욕설 몇 마디를 했을 뿐, 그건 나에 대한 저주에 국한된 일이었다. 충분히 이해할 만한 거리를 내가 제공했다는 걸 나 스스로가 잘 알았다. 잘못이 있다면 오로지 나에게 있었던 일이었으니까. 그가 나를 배척한 일은 오로지 나의 남자관계, 복잡하게 얽혀있었던 내 사생활의 문제였다는 것, 백번 되돌려도 책임있는 쪽은 내 쪽이었으니, 내가 할 말이 없는 건 명확했다. 이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그가 선택할 수 있는 문제였던 것이다.
"어때? 그 사람을 오라고 하면, 그 사람이 올까?"
"글쎄 그건 형 마음이지 않을까 싶은데, 내 생각으론 못 올 이유도 딱히 없을 거 같은데?“
10시가 지나자, 문상객들이 조금 뜸해지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고 술을 거나하게 마셨던 예전의 장례식장 분위기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식사를 했고 곁들여 반주 정도의 술을 한잔씩 했다. 그리고 조용조용 그들만의 이야기를 하고 먼저 일어설 사람들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 틈을 이용해 상기를 불렀다. 11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너 같으면 오겠어?"
"뭐 사달을 만든 원인행위자도 여기 없잖아."
"원인행위자?"
"그래, 다니엘..."
"그렇지, 그 사람이 없다면 좀 단순해질지도 모르겠네."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원인행위자는 다니엘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걸, 한 템포 늦게 알아차렸다. 모든 원인 행위자, 행동은 내가 했지만 좀 더 비겁하게 말하자면, 모든 원인 제공은 철호가 했던 것이다. 뿌리 깊은 남자관계, 끊어 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끊을 수도 없었고, 거기에 무분별하게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는 것, 이 모든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근본적인 잘못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의 삶이 따로 있다, 모든 인간이 그렇다. 그러니 너도 너로서의 삶을 살기를 바란다.'
철호가 분명 내게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날 그에게서 미련없이 떨어져 나왔다. 그에게는 근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살가운 애정이 없었고, 남보다 못한 나와 그 사이의 거리감이 그의 말속에 존재한다는 걸, 순간 깨달았던 것이다.
'너의 삶에 내가 어떤 권리를 가져야 하는지 나는 모르겠고, 너 또한 나에게 그러해야 하겠기에, 우린 단지 생물학적 본성에 얽힌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을 뿐이야. 내가 너에게 아무 권리도 주장하지 않는 것처럼, 너도 나에게 그랬으면 좋겠다는 거야.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좋을 텐데...'
그래서 그날, 나는 이승호와 함께 춘천으로 갔다. 그건 철호가 말한 관계를 확인하기 위한 나의 여정이었다. 그리고 외과수술방을 지휘했던 수술과장, 대학원에서 만났던 의료행정 교수, 동창 찾기로 나를 찾아온 고등학교 동창 정수, 이들이 상기가 사라진 결혼 후반 5년을 함께 한 남자들이었다. 그러면서 내가 알아낸 것은, 몸으로 덤빈 남자들의 내면은 모두 텅 비어 있었고, 마음으로 다가온 남자들은 오히려 몸으로 가득 차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배반적인 현실이었다. 그들 어디에도 사람과 섞여 들려는 감정의 호흡은 없었다. 경험하는 남자가 늘어날수록 정체 모를 헛헛함에 내 속도 서걱거리는 모래바람처럼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했다.
우습게도 남자들은 정 반대였다. 내가 밀어내면 더 달라붙었고, 내가 먼저 마음을 내주려고 열을 내면 저 만치 멀리 달아나 버렸던 것이다. 그 어느 쪽에도 그들은 마음을 내줄 줄 몰랐다. 그 중간쯤 어디선가 나는 나를 내던져 버렸고, 이후 나는 세속의 욕구에 자신을 매몰시켜 버렸던 것이다.
"나도 정말 오랜만에 형 얼굴 좀 보자. 어떻게 지내는지 나도 궁금하네."
"너하고의 관계를 알면 가만 안 있을 걸? 다니엘보다 더!"
"안 그럴 걸? 철호형보다 내가 누나를 먼저 가진 사람이었어. 엄밀히 말하면 내게서 누날 뺏어간 남자가 철호형이라고. 화낼 사람은 나였다고!"
"왜 남자들은 가지려고할까? 나누면 좀 안 돼?“
상기의 차 안에 둘이 피우는 담배연기가 실내에 퍼지자 선루푸를 열었다. 철컥 소리가 나며 천장이 열리자 바람을 가르며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가 세차게 차 안으로 파고들었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해볼게. 근데 널 철호 씨 앞에 내보이는 건 절대 안 되는 일이야. 그건 니가 더 조심해야 할 일이란 걸 명심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목구멍이나 위장 어디에 남아 있을 마지막 연기를 쥐어 짜내듯 폐부의 공기를 끌어당겨 오므린 입술 밖으로 내 보낸 후 나는 차에서 내렸다. 내 쉰 만큼 다시 더 깊게 숨을 들여마시자 찬 바람이 얼굴에 확 끼쳐왔다. 서늘한 봄밤의 찬기운이었다. 밤이 되면 쌀쌀하다며 언니가 입혀준 카디건 자락을 당겨 몸을 감쌌다.
"누나, 내일 부평 화장장으로 갈 거지? 나도 따라갈 거니까 피곤하면 내 차 타고 눈 좀 붙이면서 가."
"그래, 고마워, 조심히 잘 들어가."
위에서 반쯤 내려진 창으로 상기와 눈인사를 한 후, 나는 돌아서서 장례식장 출입구를 향해 돌아섰다. 알고보니 정문 말고 바로 장례식장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따로 있었다.
상기와 함께 한 시간이 22살 때부터였으니까 무려 27년이 지나고 있다는 생각이 무겁게 마음을 눌렀다. 방금 피운 담배가 다시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 보면, 결혼을 했다면 그와 했어야 하는 게 맞았다. 초혼 때도 재혼 때도 상기와 내가 맺어져야 했었다. 처음에는 다급한 생활 형편때문에 잘못된 선택을 했고, 두 번째는 다니엘의 순한 마음에 감동한 약한 마음 때문이었다. 내가 진짜 원했던 사람은 상기였을지 몰랐다. 그때도 지금도, 역설적이게도 나는 한 남자만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지금에 와서야 그 사람이 상기라고 했을 때 하나도 이상할 데가 없다는 생각에 미치자 잘못된 선택을 두 번이나 한 나를 용서할 수 없다는 감정에 이르게 했다. 후회와 자책이었다. 그때였다.
"담배 한 대 필래?"
나는 고개를 들어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장례식장으로 들어가는 출입구 쪽에 서서 나를 바라보고 서있는 남자가 보였다. 그의 한 쪽 손에는 파란색 멘솔 담뱃갑이 들려 있었고, 다른 한 손에는 황금색 라이터를 쥐고 있었다. 그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