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제와 인용의 전복적 예술
포케마의 문학 비평 이론 속에서 벤야민(1892-1940)을 본지 오래다. 그가 쓴 '기술적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은 문학뿐 아니라 그가 천착했던 사진의 예술성을 바탕으로 영화의 예술성, 영화야말로 제의적 가치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온 독립적 예술로 인정한 첫번째 예술로 상정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따라서, 영화를 만들어내는 배우, 촬영기사가 담당하는 몫이 가지는 예술적 속성에 대해 분석한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용해서 예술적활용과 과학적 활용을 동일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영화 예술 뿐이라고 단언한다.
기존의 모든 이론을 섭렵하고 모든 것에 대해 언급하다가 마르크시즘과 시오니즘 사이를 오갔으며, 생전에 빛을 발하지 못한 모든 것을 섭렵하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철학자 문학평론가로 우리 앞을 앞서간, 인용만으로 된 책을 쓰고 싶다던 불운한 천재다. (나찌의 폭압을 피해 프랑스를 탈출하여 에스파냐 국경에 이르러 국경이 하루만에 막히자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천재의 충격적 삶)
'발터 벤야민 1892-1940'은 그의 친구 한나 아렌트가 쓴 벤야민의 사상 요약본이다. 주로 벤야민의 서간과 선집의 인용을 중심으로 서술하고 있다. 아렌트는 벤야민이 탈출한 같은 경로로 미국으로 탈출하였으므로, 그 국경에서 친구 벤야민이 자살했다는 소식은 충격 그 자체였다. 같은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의 운명이 극명하게 갈라지는 순간이다. 미국으로 건너온 아렌트는 벤야민보다 35년을 더 살았다.
벤야민에 대해 알려진 일화들은 모두 아렌트가 언급한 내용들이다. 그는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그 어느 것에도 통해 있었다고 말했고, 벤야민 스스로는 자신을 문학평론가라고 자청했다는 말도 아렌트가 한 말이다. 이 책에는 유명한 '수집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수집은 아이들의 열정이며, 부자의 취미인데, 지금과 동시에 더 나은 세계에 가 있는 꿈을 꾼다는 점에서 혁명가와 같다는 것. 그래서 소유는 사물에 대해서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소위 매문을 하는 지식인들에 대해, 매춘부가 성적인 사랑을 배신하듯 지식인은 정신을 팔아버린다고 경멸했다. 우리 역시, 벤야민의 사상은 유신 독재시절 민중활동가들이 어용지식인들을 향해 던지는 날카로운 비수로 작용했다.
어떤 시, 그림, 교향악도 독자 관객 청중을 위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늘 진리를 향한다. 그래서 벤야민의 예술관은 학자적 태도에 있다고 본다.
전통은 현재를 파괴하는 힘으로 작용하며, 그것은 더 이상 숭배와 전수의 대상이 아니라 인용이라는 장치를 통해 큰힘을 발휘한다는 새로운 발견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