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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앞에서

난국을 바라보는 지식인의 눈

by 별사탕

오래된 책이다.


김성칠(1913-1951)은 경북 영천사람이다. 대구공립보통중학교 다닐 때(1928) 독서회 사건으로 수감되어 어린 나이에 옥살이를 1년간 했다. 이후 독학으로 농사, 역사 공부를 해서 동아일보 농촌구제 현상공모에 당선되어 당선금 100원을 들고 일본 풍국중학에 유학하여 1년만에 졸업했다.


이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다시 같은 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이듬해 전임강사가 되었다. 수학 중 강제 징용되어 수용소살이를 했으나 법전 시절 일본인 훈련교관의 도움으로 풀려났다.


해방 이후 금융조합이사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경성전문 사학과로 옮겨 강의를 하는 중 6.25가 발발, 피난가지 않고 서울에 남아 그 참상(보고 들은 바의 현상)을 일기로 기록하였으며, 흥남 철수, 1.4후퇴를 틈타 공산치하에 있으면 안 된다는 판단 하에 가솔을 이끌고 피난대열에 들어 부산까지 가게 된다.

부친의 위독으로 귀향, 51년 1월에 상을 치렀고, 부산에 정착 피난살이 중, 중구절을 맞아 부친 봉사를 위해 방문한 영천 집에서 괴한의 총탄에 맞아 졸지에 절명했다.


김성칠은 일기에서 서울에 진주한 인민군에 대해, 약탈자의 모습에서 잘 훈련 받은 군인들의 모습으로 비쳤다가 소년병들이 많다는 걸 알고 동정심을 유발시킨다고 말한다. 공산당들은 말끝마다 북침에 맞서 내려온 인민해방전쟁임을 토를 달듯 말했으며, 그들에 의해 집에서 내쫒겨 하루아침에 가재도구를 빼앗기는 일을 당하여, 총과 권력을 들이밀고 들어와 남의 집을 빼앗는 건 다반사였다고 말한다. 아녀자와 노인들이 걸핏하면 부역에 동원된다든가, 청년들이 강제 동원되어 인민군에 자원 입대하는 일이 마을마다 벌어졌다.

당시 서울대 인문대 교수들 역시 학생들이 인민군에 자원 입대한 것을 빌미로 교수들도 자원 입대하라는 종용을 받고 1인 예외 없이 자원입대서를 쓰게 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그는 신발을 감추고 집 안채에 숨어 지내며 이 곤란을 피해가려고 한다. 군중을 모아 놓고 반동 분자의 처형을 물어보는 고함소리에 입을 맞춘 누군가가 옳소!라고 외치면 왜 죽여야하는지 이유를 밝히지도 않은 채로 그 자리에서 총을 쏴서 사형시키는 장면도 나온다. 인민재판인 것이다.


우리는 남과 북의 분단에 따른 이념 전쟁을 경험했다. 거기서 오는 무수한 비극적 희생을 겪었다. 지금을 돌아보면 과연 우리 민족이 그런 비극을 겪은 민족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과거를 잊고, 마치 현재만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모습들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는데, 또 무엇을 겪으라고 이런 짓들을 하는 것인지, 성숙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어디 가고 없고, 모두 현실의 이익에 눈먼 자들만이 시뻘건 눈빛으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형국이 되어 버렸다.

친구, 형제, 부자, 모녀 간에 바른 정리와 도리, 인륜적 가치들이 짐승의 수준에 떨어져 있는 것이다. 편당이 덩어리가 커지면서 좌우, 남녀, 노소의 질타와 반목만이 엄연한 현실로 드러나 보이는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지식인은, 원래 회색분자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느 한가지로 마음먹기가 대단히 힘이 들기 때문이다. 김성칠 역시 민족 혼란, 교란기에 지식인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고 중립적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어느 편에도 설 수 없는 세상의 이치에 학을 떼며 치를 떨고, 탄식했을 것이다. 젊은 지식인으로 혼란기를 살면서 결국 꽃피우지 못한 삶을 마치고 갔다.

김성칠은 일기의 말미에, 피란지 부산에서 3월에 본격적으로 법대강의를 한다. 이게 일기의 마지막장이다. 그로부터 6개월 후 총탄을 맞았으니, 피란지에서 적개심을 살 일을 한 것이 분명하다. 강의하면서 민족혼에 대해 강조하였다고 하니, 아마도 그를 우익 극렬 분자라고생각한 누군가의 소행일 수 있을 거란 추측을 하게 한다.


부인 이남덕은 이화여대 국문과교수를 지낸 분으로 90 넘어까지 살다 갔다. 김성칠에게는 이미 시골에 아내가 있었던 터라, 이남덕이 김성칠과 결혼한 것은 분명 중혼에 해당한다. 그 시기 좀 의식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혼인 방식은 좀 흔했던 듯 싶다. 집안의 정혼자와 자유의지로 만난 연애자가 다른 경우이다. 그의 세째아들 김기협이 '아흔개의 봄'이라는 어머니 간병일기를 써서 출간한 것도 가족의 대물림처럼 일기를 쓴 집안 내력으로 볼 수 있을런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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