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21조의 1항과 2항은 다음과 같다.
①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②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
그래서, 언론 출판 집회 결사는 허가제가 아니라 신고제라는 것이고, 특히 언론 출판을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조항이 명문화되어 있다. 은퇴후 어떤 조직체를 결성해서 집회를 계획하고 있다거나 하지 않는다. 단지 회를 결성해서 정기적인 모임을 운영하는데 있어 누구로부터 간섭받지 않을 권리가 나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서양음악의 아버지라고 하는 바흐의 곡을 1950년 볼프강 슈미더가 정리하면서 매긴 BWV번호에 의하면 바흐가 작곡한 곡의 총수는 1,126곡이다. 이렇게 숫자로 집계되지 않은 곡을 모두 더하면 만곡이 넘는다고 한다. 왜 아버지라고 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단지 작곡을 많이 해서 그런 게 아니라 바흐의 음악엔 모든 음악 경향이 총망라 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독일에서 발매된 총 172장의 CD로 구성된 바흐전집을 가지고 있다. 일관된 하나의 통일성을 가지고 1975년부터 2000년까지 녹음작업을 했다는 이 전집을 처음부터 나는 듣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나는 이 전집의 1/3가량을 들었다. 이 과정은 힘겨운 노역이다. 매일 틀어놓고 듣는 데 3개월이 걸린 듯하다.
이렇게 혼자서 골방에 고독한 감상자를 자청하며 바흐를 듣는 것은 바흐에서부터 서양의 모든 고전음악이 다 나오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바흐는 서양음악의 남상인 셈. 내가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음악가와 음악 사조에 대한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나,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음악이라고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을 다루는 예술이라는 것을. 예를 들면 베토벤적 현실, 이것은 못생긴 외모에서 시작하여 비사교적인 성격, 그렇지만 여자를 좋아하는 본능, 거기에 넘쳐나는 자기 고집, 여기에 더하여 청력의 상실이라는 치명적 삶의 방향 상실 등이 만들어내는 복잡하게 뒤섞인 그의 현실적 상황, 이것을 드러내는 외연이면서 내포이기도 한 음악만이 자신을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한다.
음악이 단지 유흥이자 한가로운 시흥을 돋우는 도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숭고하며 비장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동의한다면 그들의 마음을 어떤 글을 통해 아는 것보다 직접적인 표현물인 음악을 통해 접근하고 싶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감상회의 이름은 낭랑으로 정했다. 중국의 피아노연주자 랑랑의 이름에서 따왔다. 생긴 건 맘에 안 들지만, 너무 진지한 표정으로 연주해서 그렇다, 그가 표현하고자하는 음악적 감수성들은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하게 보인다. 유자왕같은 파격과 즐거움을 주어야한다는 뜻에서 두음법칙을 적용했다. 그래서 낭랑은 랑랑의 진지함에 유자왕의 낭랑한 패션같은 마인드를 표상한다. 무겁지만 사뿐하게 날아오르는 나비같은 마음 자세를 뜻한다.
또한 낙랑과 같은 음가를 가지는 표기이기도 하다. 사랑을 위해 아버지의 나라를 바친 비운의 공주가 아니던가. 이름 하나로 한편의 오페라를 보는 것 같은 비극을 느끼게 해주는 이름, 클래식감상회의 이름으로 이 아니 적절할손가.
회원은 모두 남자, 5명을 선정한다. 탄노이 아델을 천장에 달아 객석을 향해 각도를 낮추어 단다. 매킨토시 275 진공관에 녹색불이 들어오면 바흐의 브란덴부르크협주곡이 체르노빌 선재를 타고 흐른다. 객석의 바닥은 음이 반사되어 튀어오르지 않도록 오동나무 재질의 합판을 사용했다. 그리고 사방의 책꽂이에 꽃힌 책들이 음악을 흡수할 것이다. 바흐는 더 차분하고 아정하게 바닥으로 가라 앉아 줄 것이다.
살아내기 힘든 매주 월화 이틀간,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브런치타임에 S.CHang에서 열린다.
기술이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 극장용으로 이름을 날렸던 AR 방짜형 혼스피커 혹은 동축 스피커들은 넒은 공간에서 사람의 음성이 멀리까지 전달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개발된 명기들이었다. 흔히 대북방송에 쓰이는 대형 스피커들의 용도가 그 목적에 맞게 개발된 것들이다. 보통 소규모에서는 미드레인지에서 재현되는 보이스의 명확성에 사운드 효과를 제대로 살려줄만한 저음 보강 우퍼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큰 문제는 없다. 그것이 5.1이든, 7.1이든 애트모스피어 돌비시스템으로 전후좌우 12개의 스피커를 다닥다닥 붙여 놓든 그것은 주인장의 기호와 사치다. 특히 19세기 고전영화를 감상하면서 서라운드 사운드시스템은 개발에 말의 편자격이다.
영화는 예술의 장르중 유일하게 인간이 의도하여 만든 발명자를 알 수 있는 예술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예술은 누가 만든 것인지, 어떻게 해서 이런 모습으로 정착된 것인지 그 기원에 대해서는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사실은 알 수없는 상태였다. 그것은 마치 알타미라 동굴벽화를 그린 원시인 집단의 사회적 구성체나 그림을 그린 자가 어떤 소행으로 인해 그런 그림이 벽에 남게 되었는지, 하는 이런 밝혀지지 않는, 밝힐 수없는 전설에 의거했다. 그래서 이솝 또한 장님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게 된다.
카메라가 발명되고 그것이 돈벌이 수단이 된다는 것을 안 기술자들이 너도 나도 찍는 도구와 트는 도구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그 통을 들고 다니면서 찍고 틀고를 했던 것이다. 이것이 단지 흥미를 끌어 돈벌이 수단으로 급부상하면서 더 큰 돈을 그럴듯하게 벌 수있다는 생각이 규모있게 만들어졌고, 제작자집단 배우집단 소비자집단, 그리고 중간 유통집단이 만들어지면서 거대한 산업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어떤 집단은 예술에 집중해야 했고, 어떤 집단은 산업에 집중해야 했다. 그들 사이에 이해충돌이 있었던 건 뻔한 일. 나는 예술적 표현에 집중하고자합니다. 이미 고전이 되어 버린 영화적 표현의 고전적 이론들은 이제 영화속에 스며들어 표도 나지 않게 변했다. 바야흐로 영화임을 증명하는 이론보다는 무작정 만들어야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이론으로 무장하지 않아도 이미 관객은 수많은 영화를 봤다. 더이상 어떵 공부가 더 필요한가. 남은 것은 찍으면서 자기만의 시행착오를 통해 교정과 완성의 중간 어띠쯤으로 나가야한다.
영화는 특히, 뜻을 함께 하는 결사체여야한다. 예술적 표현이라는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서로 거침없이 부딫쳐야한다. 그러기 위해서 자본으로부터 독림되어야하고 도구로부터 자유로와야한다. 시나리오를 쓰고 토론하면서 완성 계획서를 만들고, 설계도를 만들어내야한다. 그 다음부터는 사회적 기금과 펀드, 공유자산의 활용이 작용해야한다.
매주 수목, 일주일에 두 번 오후 3시에서 5시까지 브런치타임에 감상회를 연다. 여기엔 여자가 3명, 남자가 3명 짝을 맞춘 회원으로 구성된다. 모든 회원들은 30대 40대 50대에서 각 두 명씩 선발한다. 결사의 명칭이 18세인 것은 19세면 이미 낡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17세면 또 너무 어린 티가 나지 않는가. 그렇게 짖랄맞게 독립된, 혹은 독립하고 싶은 나이가 18세다. 그런 18세로부터도 독립해야 하는 나이라는 것을 의식하는 인자라는 것이다. 역시 S.CHang에서 주최한다.
관계, 개념, 근분적 질문들을 묻는 독서회를 개최한다. 물을 필요없는 당연한 질문들에 생의 답이 있다. 대통령은 왜 필요한가, 아내는 남편은 왜 있어야 하는가, 사회는 왜 나와 함께 있는 것인가, 학교를 없애는 안 되나, 시스템과 체재는 일반적으로 다수에게 이로운가, 지금 혁명은 필요한가, 사회와 국가를 바꾼다면 어떤 부분부터 바꾸는 것이 급선무인가, 통일에 동의한다면 통일하기 위해 국가가 무엇을 가장 먼저 실천해야하는가, 가족관계는 유지되어야하는가, 다자간 사랑은 가능한가, 인류는 함께 공존할 수있는가, 수많은 질문들을 던질 수있다. 하나의 책을 가지고 이런질문들을 엮어볼 수있다.
'낭랑 18세'가 모인다. 토론의 끝은 언제나 난장일 수밖에. 금토 10시부터 11시까지 1시간은 술을 위한 시간이다. 딱 한시간 퍼마시면서 서로를 씹어댄다. 때로 위로하고 감싸고 내편이 되기도 하지만, 적이되어 살의를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서로를 동등하게 드러내놓는 데 뜻이 있다. 감추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다. 독서는 그래야한다. 자기를 알게 해주는 솔직한 도구가 책이며 그 실천 행위가 독서다. 그래서 독서는 사람들을 폭탄주처럼 마구 뒤섞어 놓는다. 어떤 블랜딩은 불과 불이 될 수도있지만, 어떤 블랜딩은 환상의 조합을 만들어 낸다. 중요한 것은 성질과 비율이다. 그래서 성비가 3:3이다. 웃기지?
내가 꿈꾸는 것은, 이 결사체가 동지로서의 운명을 함께 하자는 데 있다. 일종의 무정부주의자들이 대놓고 커밍아웃하는 연애같은 집단이 되는 것이다. 제대로 한번 살아보잔 얘기다. 어쩌면 이 결사 안에서 죽을 수도 있다는 걸 구성원들은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결사는 회원의 자발적인 회비와 기부에 의해 운영되며, 무형의 자산은 특히 중요하다. 각 1인은 각 1표의 의사결정권을 가지며 특정 부류가 소외당하는 일이 없도록 민주적인 절차와 과정을 반드시 존중한다. 결사의 입회와 탈퇴는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되 동반 입회 혹은 동반 탈퇴를 허용하지 않으며 결사 협의체의 결정에 따르지 않을 경우 응분의 제재를 가한다. 단, 결사가 1주년이 되었을 때 탈퇴를 이유 없이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동시에 입회희망자 중 전원 합의에 의해 신입회원을 받을 수 있다. 결사의 목적은 회원 개인을 바로 세우고자하는 데 있으며 여러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을 집단의 의견으로 암암리에 표방하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결사는 집단의 뜻을 사회적으로 달성하고자하거나 개인 외에 집단의 목적 자체가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가장 먼저 인정하고 존중하며 자유에 따른 개인의 귄리를 무한히 인정하는 자유독립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