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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사탕 Oct 10. 2024

패왕별희 TheOriginal

예술가적 삶의 비극, 극과 현실


감독  천카이거

각본  이벽화

원작  이벽화 - 소설 《사랑이여 안녕》

제작  서풍

기획  서걸

출연  장국영공리장풍의 외

촬영  구 창웨이

편집  배소남

음악  자오지핑

제작사  베이징 필름 스튜디오 중국전영합작제작공사

수입사  조이앤시네마

배급사  미라맥스 하명중영화제작소 제이앤씨미디어그룹 드림팩트엔터테인먼트 와이드 릴리즈

개봉일  1993년 12월 23일

(장국영 추모 20주기 확장판 재개봉)  2024년 3월 27일

상영 시간  156분 (국내 최초 개봉), 171분 (확장판)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찾아보니 패왕별희가 9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전날에 개봉된 것으로 나온다. 그때 나도 누군가와 봤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나는 누구와 이 영화를 보러 갔을까?


  전통 극예술인 경극의 주인공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때 봤던 기억을 더듬으며 별로 기억나지 않는 기억을 소환해 보면(오랜 시간이 흘러 기억이 잘 안 난다는 것이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의 영화라는 뜻은 아니다.) 두 주인공의 동성애적 사랑이야기로 머릿속에 남아있다.     

  시투(장풍의)가 두지(장국영)를 보호하며 어린 시절을 보내며 두지와 시투가 붙어 잔다든가, 두지의 혀끝이 시투의 이마를 핥아준다든가 하는 장면들은 어떻게 동성애로 발전하는지를 이들의 어린 시절 성장과정을 통해 잘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또한 성인이 된 후에 두지가 보여주는 몸가짐은 여성의 그것으로 굳어져 있다. 두지의 시투에 대한 사랑이 이 영화가 보여주려는 주제였다.     

  93년에 봤던 버전이 미국버전이라는 것에 놀랐다. GV 호스트인 라이너에 의하면 패왕별희는 미국, 유럽, 감독판이 있다는 것, 한국에서 개봉된 것이 미국판(자본주의적 관점을 근간으로 한 개인사적 버전)이었고, 지금 상영하고 있는 것이 감독판, The Original이라는 것이다.     

  어제 본 패왕별희는 너무도 잘 짜여진 각본에 의한 구성을 보여준, 93년도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매춘부 엄마에게 끌려 경극단에 입단되는 두지, 처음부터 두지의 순조롭지 않은 적응과정이 펼쳐진다. 사내아이가 계집아이로 탈바꿈되는 과정을 통해 두지의 예술가적 자아가 생성되고 두지는 경극이라는 것 자체를 마음의 신앙으로 받아들이며, 극의 뜻대로 살아간다. 이것은 예술가적 삶이다. 예술가는 예술이 추구하는 오직 나의 이상을 좇는 자이다.     

  패왕별희의 내용이 무엇인가, 초패왕 항우가 사면초가에 둘러싸여 세상을 향한 뜻이 좌절될 때 그의 애마 오추가 떠나지 못하고 결국 물에 뛰어들어 죽고 마는 것처럼, 아내 우희 역시 그의 곁을 지키며 자결한다. 경극의 사부는 그것을 인생이라고 가르친다. 사람의 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 극의 주인공 두지가 그 길에 충실한 반면(예술가의 삶), 시투는 세속적이고 평범한 배우의 삶을 산다. 시투에게 경극은 삶의 수단이자 그를 지탱하는 자존심 정도에 지나지 않지만, 두지에게는 극과 극의 내용 그 모든 것이 삶과 일치시킨다.     

  이제 이들이 겪는 시대를 보자. 영하는 1924년에서 시작해서 30년대 일제 침략기, 국민당 정부 시기, 공산당시기, 문화혁명시기를 겪는다. 온갖 시대적 풍상을 다 겪은 두 사람에게 공산당 정부는 최악의 경험을 제공한다. 소위 말해 인민 대중 앞에서의 자아비판, 인민재판이다. 그 밀폐된 광장에서 시투는 두지의 밑바닥을 까발리고, 두지 역시 반격하며 둘의 관계는 비극을 맞는다. 시투, 시투의 아내 주샨, 두지 이들 셋의 드라마가 이 밀폐된 광장에서 끝장을 본다. 이것은 햄릿에서 한 명도 남김없이 등장인물들이 모두 죽고 마는 마지막 장면보다 더 극적이다. 급기야 두지가 청나라 황실의 보검을 불에 던져 버린다. 이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시투가 어렸을 때, 패왕에게 명검이 있었다면 유방을 치고 황제가 되었을 것이고, 그러면 넌 황후가 되었을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이때부터 두지는 원대인에게 몸을 바쳐 칼을 가져다준다. 그러나 시투는 자신이 한 말의 의미는 물론이고 그런 말 자체에 대한 기억이 없다. 사람이 그런 것이다. 준사람은 기억이 없고 받은 사람은 평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 그걸 두지가 몸으로 보여주는 삶을 산다. 그것은 예술가적 삶과 일치한다.     

  두지가 칼을 불에 던진 것은, 그 사랑을 버렸다는 뜻, 그 칼을 시투의 아내 주샨이 건져낸다.     

  1976년이 된다. 이 해는 경극 2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이기도 하다. 아마도 문화혁명은 막을 내린 듯하고 경극은 부활된 듯하다. 연습 무대, 그 자리에서 두지는 패왕별희의 마지만 장면, 우미인이 자결하는 장면을 노래한다. 시투의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이 뽑혀 나가고 두지는 그 칼로 목을 찌른다. 두지가 극의 중심에서 자살하고 만 것, 극이 현실로 일어난 것이다.     

   극의 내용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는 이상적인 아름다운 이야기이지만, 그들의 실제 삶은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공격하며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과 사랑을 부정하려는 몸부림이 만나 극한 대립에 이르게 만들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극과 현실의 불일치이다.

  감독판에서, 개인과 집단, 이상(사랑)과 현실, 극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 비틀어진 사랑과 삶의 처절한 모습을 잘 보여준다.     

  어린 대역의 얼굴에서 느끼는 묘한 여성스러움에 이어지는 장국영의 연기는 빛을 발한다. 몸에 밴 그의 손짓 몸짓 하나하나, 몸부림치는 영혼을 보여주는 연기 속에 장국영은 없고, 두지만 오롯이 보이는 것은 그의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드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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