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남의 빨래 루틴
옷에 국물 한 방울이라도 튀면 바로 화장실로 잽싸게 달려가는 그.
평소에 밝은 옷 대신 어두운 옷을 즐겨 입는 이유이기도 하다. 퇴근 후 먼지부터 제거하고 꼼꼼한 절차 후에야 빨래통에 들어갈 수 있는 그의 옷가지. 아주 번거로워 보이는 빨래 루틴에 불만도 많지만 유난히 보풀도 적고 상태 좋은 남편의 옷들을 보면 내심 그의 빨래법이 탐난다.
청소중독 남편의 빨래 루틴
이물질은 미리 제거 후 빨래하기
작은 이물이나 먼지 등을 열심히 제거한 후 튼튼한 빨래 주머니에 크기 및 색깔별로 넣는다. 셔츠를 입고 간 날에는 옷깃을 세제로 문질문질 한 후에 빨래통 투입. 때로는 세제 + 과탄산소다를 추가해 아이보리의 길을 걷는 옷들의 본래 색을 되찾아 준다. 세제 투입 시 조금이라도 흘러내린 세제의 흔적들 제거도 필수.
건조기 대신 빨래 건조대에 말리기
건조기의 신세계 속에서 신문물을 거부하 듯 양말조차 자연 건조를 선택하는 남편. 편리함의 세계를 왜 거부한단 말인가. 속옷이나 니트류 등 줄어들 위험이 있는 옷들은 건조기를 돌리지 않겠지만 양말조차 거부하는 그의 행동이 참 별스럽다. 뽀송하게 마른 느낌이 좋아 나와 아이들의 옷은 건조기가 필수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내 양말들은 보풀 투성이. 남편의 빨래 건조법을 따라야 하는 걸까. 더불어 런닝을 제외한 모든 옷은 절대 옷걸이에 걸지 않고 건조시키는 것이 그의 철칙이다.
겨울 철 패딩 세탁의 신세계
보통은 겨울 내 패딩을 입고 드라이클리닝에 맡기지만 특히 아이들 패딩점퍼의 얼룩들은 참아주기 힘들다. 매번 드라이클리닝을 할 수도 없으니 손세탁 가능 여부를 확인 후 남편의 손빨래 시작. 욕조에 물을 받아 세탁 후 세탁기의 힘을 빌어 약한 헹굼 코스로 마무리한다. 건조대 위에 눕혀둔 홀쭉해진 패딩은 시간이 지나도 돌아올 기미가 안보였다. 실패인가 싶을 때쯤 알게 된 건조기의 패딩 리프레쉬 기능. 그런데 구입한 지 5년이 된 구 모델은 없는 기능이라니 또 한 번 절망한다.
옷걸이로 열심히 두드리며 분풀이하던 중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찾아낸 기쁨의 소식. 구모델도 어플을 깔아 리프레쉬 기능을 받으면 죽었던 패딩도 살릴 수 있었다! 마법처럼 부풀어 오른 패딩에 아이처럼 기뻐하던 남편. 올 겨울은 이 방법을 애용할 듯싶다.
각 잡아 빨래 개어 마무리
남편의 특기는 빨래 개기. 양말목이 늘어난다며 조심스럽게 접어내고 수건이며 옷이며 매장에서 파는 듯 가지런히 잘 정리한다. 언젠가 혼자 유튜브 영상을 보고 있길래 잔소리 장전하고 다가갔더니 매장에서 옷 접는 법 영상 시청 중이었다. 이 사람 청소와 정리에 진심이구나. 잘하는 일이니 많이 칭찬해 주자.
빨래를 정리하며 노후 준비에 관심이 많은 남편과 대화 중이었다.
"우리 나중에 뭐 하면서 살지? 나 진짜 청소 업체라도 차릴까..."
"사업은 무슨.. 아! 오빠는 청소를 잘하고 나는 집 꾸미기 좋아하니까... 우리 스테이 해보는 거 어때!"
갑자기 그려본 우리의 노후. 우리 가족이 사랑하는 제주에서 스테이 공간을 운영해 보는 것이다!
패딩턴 영화에서 나오는 탐나는 파스텔 톤 부엌도 꾸며보고 카모메 식당처럼 정감 가는 따스한 음식도 대접하고 싶다. 남편의 깔끔함에 숙소 청결은 의심할 게 없으며 나 또한 집 꾸미기와 공간 만들기에 진심이니 상상만으로도 즐겁다.
20대 시절 돈만 모으면 떠나던 유럽 배낭여행. 유명한 관광지도 많이 가봤건만 할머니가 운영하시던 따스한 공간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더 생생하다. 세월의 경험을 무기 삼아 공간과 대화 식사 등 모든 것의 지혜를 나눌 수 있는 따스한 공간을 운영해 보고 싶다는 꿈을 꿔본다.
살아가는 방식에 잘하는 것을 더 하고 그것을 지속해 가다 보면 나의 삶이 될 것이다. 남편에게 청소를 더 열심히 하도록 응원해 줘야 하나. 고민이다.
*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