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자기 관리 실패담
자기 관리에 신경을 많이 쓰는 우리 집 남자.
패션 쪽으로 신경을 쓰는 것은 절대 아니고 건강관리, 탈모, 피부 등 전반적인 자신의 몸과 정신관리에 힘쓰는 스타일. 어디를 가든 내가 확인하지 않으면 나이키 반바지에 티셔츠 차림. 동네 산책은 괜찮다지만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운동복만 입다니. 나의 눈에 띌 때면 잔소리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러한 그도 아주 신경 쓰는 것이 있으니 바로 피부! 남성전용 화장품을 사준다고 해도 굳이 나의 화장품을 꼭 같이 쓰겠다는 남편. 내가 가끔 팩이라도 할 때면 폭발적인 관심과 함께 자신도 꼭 같이 팩을 얼굴 위에 올리곤 한다.
어느 날은 아끼는 영양크림을 열어보니 누군가 아주 듬뿍 퍼간 손가락의 흔적! 얼굴에 광이 나는 남편을 보니 범인 찾기는 식은 죽 먹기이다. 조금 야박할 수는 있지만 나도 살길을 찾아야 했다. 이제는 내가 아끼는 화장품이나 비싼 팩들은 남편이 잘 못 찾는 구석진 곳에 둔다. 이외에도 365일 선크림은 필수요 운전할 때면 밤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선글라스를 쓰는 모습이 참 대단하다.
매일 빠지지 않는 운동과 정리정돈, 자기 관리에도 힘쓰는 남편을 볼 때면 관리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틈틈이 유튜브에서 뭘 보는 건지 집에 강황가루, 율무가루 등 각종 좋다는 가루를 사기 시작하던 남편. 자기 관리를 위해 사는 건 그렇다 치고 일단 대량구매를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발바닥 사마귀 치료에 좋다는 율무가루는 사놓은지 1년이 다돼 가는데 1회 사용했을까. 강황가루도 물에 타먹으면 좋다고 사두고는 못 먹겠는지 냉장고 차지이다. 실패를 거듭하며 나의 잔소리 폭격에 한동안은 조용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날아온 작은 상자! 뭔가 또 느낌이 불안하다.
상자를 열어보니 바셀린 3통. 이건 또 무슨 일인가!
유튜브에 유명 피부과 의사가 바셀린을 바르고 자면 피부가 좋아진다고 했다더라. 물론 좋을 수는 있는데 일단 한통도 아닌 3통! 그리도 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바셀린이라니. 열심히 바르는 남편의 얼굴은 밤마다 불을 켤 필요도 없이 아주 빛이 났다. 며칠 동안은 진짜 좋아진 것 같다며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그래. 자신이 만족스러우면 된 거지' 생각하며 그렇게 지나간 한 주.
결국에는 탈이 났다! 건조함 보다는 지성에 가까운 남편의 피부에 바셀린이 더해지니 트러블 하나 없던 얼굴에 뾰루지가 여기저기 고개를 들었다. 그것 보라고 또 한 번 잔소리가 훅 올라오다가 너무 상심한 남편을 보니 참으로 웃픈 상황이었다. 좋다는 것은 꼭 해보고 싶은 그 마음이 어찌 보면 아이와 같달까.
자기 관리에 힘쓰는 남자와 산다는 것. 시원한 메밀국수 속 와사비의 알싸함처럼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드는 적당한 이벤트가 공존하는 삶인 것 같다.
한동안 우리 집 초인종은 잠잠할 예정이다.
*사진출처: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