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서 만난 한 사업가에게서 미얀마의 미래를 봤다
혁명가이자 자선사업에 진심이었던 사업가 페니
“대부분의 미얀마 지식인들은 고국을 떠나. 미얀마 정치에 희망이 없거든. 정치는 일부 정치가들이 서로 대대손손 물려주는 철밥통 일 뿐이야.”
“난 내가 미얀마 사람인 것이 자랑스럽지만, 내가 국적을 밝히는 순간 사람들이 나를 평가하는 시선이 달라지는 것을 느껴. 난 일로만 평가받고 싶거든.”
매일 무릎 튀어나온 트레이닝 복 차림에 여자아이 둘을 들고 업고 등교하는 한 아이 엄마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남편의 일 때문에 말레이시아에서는 전업주부로 생활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싱가포르 금융중심가에서 일하던 열혈 워킹맘으로 일 년간 육아 휴직 중이었습니다. 평소에 친절한 듯하지만, 자신의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들끼리 자주 어울리다 보니 서로 친해졌고, 육아 휴직 1년을 거의 마치고 싱가포르로 돌아가기 직전 환송 모임에서야 자기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독일 사람이었고, 싱가포르 근무가 끝나면 아이들과 독일로 이주해 살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내 인생에 처음 만난 미얀마인이었기에 그녀의 말은 곧 내가 가진 미얀마에 대한 지식 전부였습니다.
2016년 가을, 우리는 아이들 방학을 이용해 미얀마 바간으로 향했습니다. 미얀마 중부 이라와디(Irrawwady) 동쪽 연변에 위치한 불교 유적 도시가 있습니다. 유네스코 지정 유적지라 꼭 한번 둘러보고 싶었던 곳이었습니다. 이것은 어른들 희망이었고, 아직 어린아이들을 위한 코끼리 야생 사파리도 계획해 봅니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을 만끽할 여정에 가족 모두 신이 났습니다. 여행의 재미와 함께 무더운 날씨, 유명 여행지에서는 항상 겪게 되는 많은 인파로 인한 피곤함은 덤이었지요. 코끼리 야생 사파리에서는 우리 지프차에 성내던 코끼리가 있었어요. 시동도 끄고 죽은 듯 가만히 있으면서 그 화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습니다. 여행이 거의 마무리돼 갈 무렵,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아이들과 어떤 재미난 경험을 해볼까 고민하다가 지역 요리 교실에 방문하기로 합니다.
요리 쿠킹 클래스 등록할 때 바간 시내에서 '페니'라는 여성을 만나기로 약속을 합니다. 약속 시간이 되자 저 멀리서 조그만 스쿠터를 타고 한 여인이 나타납니다. 나무 진액을 얼굴에 바르는 전통에 따라 타나카(Thanaka)를 양볼에 잔뜩 묻힌 채 꽃 같은 미소로 우리를 반겨줍니다. 미얀마 길거리에서 흔히 만나는 인심 좋은 아주머니 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따로 툭툭(Tuktuk)를 타고 그녀의 스쿠터를 따라나서는데, 제법 깊은 시골마을로 들어가기에 조금씩 걱정이 되기 시작합니다. 이제 그만 돌아가자 해야 하나 싶을 즈음, 그녀의 집에 도착합니다. 미얀마는 경제적으로 많이 낙후되어 있기에 과연 사람이 사는 곳인가 의심스러운 집들도 많지만, 그녀의 집은 기왓장을 올린 번듯한 집이었습니다.
오늘의 요리는 미얀마식 닭구이와 지역 채소로 만든 샐러드입니다. 어린 두 딸이 조막만 한 손으로 닭 손질부터 양념을 순서에 따라 배합하고 화롯불에 그 양념 고기를 굽는 전 과정을 함께 합니다. 우리가 특별히 한가한 때에 온 것인지 오늘의 요리 클래스에는 우리 가족 세 사람뿐, 지쳐있던 우리 모녀들에게 조용하니 안성맞춤인 프라이빗 요리 클래스였습니다. 음식 조리를 마무리하고 그녀의 마당에 준비된 예쁘게 차려진 식탁에서 만든 음식을 나눠 먹는데, 꿀맛입니다. 아담한 그녀의 정원에는 여러 가지 채소들이 길러지고 있었고, 알록달록한 등이 처마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서 이색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식사 후 미얀마식 디저트를 기다리는 동안 페니는 요리 클래스가 진행됐던 집 앞마당 옆 작은 공간으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아이들 보기 좋은 책들도 있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이곳에는 미얀마어 그리고 영어로 된 책들이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개인 책방이라기에는 규모가 큽니다. 동화책부터 어른 소설까지 장르도 다양하게 방 한가득 비치되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지역 주민들을 위한 무료 책방이었습니다. 책의 상태가 분명 어딘가에서 중고서적으로 넘겨받은 듯했습니다. 달콤한 디저트와 함께 다시 돌아온 페니는, 쿠킹클래스를 운영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 이곳에는 돈이 없어 학교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는 글을 읽을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가혹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여행객들에게 우리 문화를 알리고 버는 돈으로, 나는 매달 새로운 책들을 사다가 이곳을 가득 채운답니다.”
그러고 보니 바간 시내에서 이런 비슷한 책방을 본 기억이 납니다. 주로 미얀마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운영하던 무료 학당이었는데, 기부금 모금을 하는 팸플릿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교육을 통해 사람들이 문맹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민간단체나 개인이 애쓰는 모습에서, 미얀마 공교육의 실태가 궁금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숙소로 돌아와 그녀의 SNS를 살펴보니 부족한 식재료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 지역 밭 일구기 캠페인을 하는 선봉대장이기도 했고, 가난한 미얀마 불교 스님들에게 공양미를 기부하는 천사이기도 했습니다.
방문해 주어서 감사하다고 작별 인사를 나누는 그녀가 불과 몇 시간 전과는 다르게 큰 거인으로 보입니다. 나는 페니에게 "당신의 비전을 응원합니다. 존경합니다."라는 인사말과 함께 수업료 이외에 기부금의 형태로 달러를 좀 더 쥐어 드립니다. 그 인연으로 가끔 DM을 나누면서 책을 좀 더 보낼까 물어보니 현금이 아무래도 가장 효과적인 도움인 것 같아 몇 번 더 기부금을 보내고, 그 돈으로 산 책 사진들을 찍어 나누는 인연을 이어왔었습니다.
TV에서 미얀마 군부 정권의 민간인 탄압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합니다. 군사 정부가 평화 시위를 하는 많은 민간인을 학살했고, 그 이후로도 혼란은 계속되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그녀에게 연락을 해보지만 아무 답신이 없었습니다. 가난하지만, 외지인에 따뜻했고 마음이 여유로웠던 현지인들이 생각나 걱정이 되는 참이었습니다.
첫 DM을 보낸 후 3개월 정도 지난 어느 날, 페니로부터 반가운 답신을 받습니다. 안전하게 지내고 있다고. 하지만 외출 등에 제한이 많고 여행객들이 들어올 수 없으니 요리 수업은 잠정 중단이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살아 있으면 좋은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만, 이전에도 팍팍했던 살림살이가 더 힘들어졌을 현지 분들 생각하니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안전만 하다면 그녀는 그 어떤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을 계속해나가고 있을 거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내가 페니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 ”답 없는 고국을 떠나 해외에서 살 길을 찾을 수도 있을 텐데”, ”주위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사업을 하는 마음은 얼마나 큰 그릇일까”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사회 체제에도 굴복하지 않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공동체와 함께 그 비전을 나누는 그녀는 정말 보석 같은 존재구나. 부디 무탈하게 잘 살아주기를... 주어진 안전한 삶 만으로도 우리는 감사할 일이 너무나 많다. 그녀에게서 들려온 소식을 가지고 짝꿍과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눕니다.
저에게는 꽃 같은 미소로 푸근하게 이방인을 반겨 주시던 요리 선생님 페니가 누구보다 위대한 사업가입니다. 확실한 비전이 있고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기에 사업의 확장성과 의미가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만나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