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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속에 살아보니 평범한 일상이 감사할 일로 가득하다

몽골의 유려한 자연 속에서 배우는 인간의 삶 그리고 문명의 이기

by 세반하별

새벽 두 시. 밤새 게르 방 한가운데 있는 난방 난롯불이 꺼질세라 주어진 말린 말똥을 불쏘시개로, 검은 숯을 꺼트리지 않기 위해 천천히 번갈아 넣으며 남편과 내가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다 깜빡 잠이 든 참이었습니다.


“엄마, 나 쉬 할래~!” 엄마와 아이는 침낭에서 나와 겹겹이 옷을 덧대어 입습니다. 우리가 묵는 게르에서 200m 정도 지점에 큰 통을 땅에 파묻어 만들어 놓은 화장실 모습의 가건물이 있습니다. 가는 길에 샛물도 있음을 낮 시간에 봐두었기에 야밤에 혹시 넘어지면 무릎이라도 깨질 새라 엄마는 손전등을 손에 꼭 쥐고 아이와 방문을 나섭니다. 4월 중순이지만, 몽골 사막은 바람이 많이 불고 제법 춥습니다. 비몽사몽인 아이를 데리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왔는데, 온 세상이 쏟아질 듯한 별들로 가득합니다. 잠깐 넋을 놓았었나 봐요. 아이가 소매를 이끕니다. “엄마 나 바지에 쉬할 것 같아” 우리는 서둘러 종종걸음으로 엉성하게 세워둔 판잣집 모양의 화장실에 도착합니다. 옛날 시골에 가면 이런 변소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관광 가이드분의 말씀에 따르면 우리 가족이 그 여행사의 올해 첫 해외여행객이라고 합니다. 그나마 첫 손님이라 냄새가 참을만해서 다행이다 싶습니다. 어린아이가 혹여나 발을 헛디뎌 빠지기라도 할까 봐 조마조마. 입으로 손전등을 물고 아이 팔꿈치쯤을 꼭 잡고 스쿼드 모양새를 취합니다. 아이도 참느라 애썼었는지 소변을 보고 나니 세상 평온한 표정이 됩니다. 다시 200m 거리 우리가 기거하는 게르로 향하는 길. 그제야 별도 보이고 땅도 보이는지 아이가 한참 조잘거립니다. “엄마 저 별이 제일 반짝 거린다, 그렇지?” 그렇게 나가기 싫던 새벽 2시, 아이와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쏟아질듯한 별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익숙해지니 달빛 만으로도 주위가 환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도시인들은 자연의 넓은 베풂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때가 참 많구나 싶습니다.



다음 날 아침 여럿 목동들의 말 몰이, 염소 몰이 소리가 들립니다. 이곳은 서너 가족이 함께 머물면서 공동체 생활을 하는 중에 옆에 작은 게르 한 동을 더 지어 관광객을 받아 부수입을 만드는 몽골 스타일의 공간 임대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위치는 사막 어디쯤이었고, 말 십여 마리, 양 20-30 여마리 정도의 가축을 키우는 제법 부유한 유목민의 숙소였습니다. 이런 환경에서는 아들이 많으면 좋겠구나 싶습니다. 옛날 역사책에서 보던 시절로 시간 여행을 온 것 같기도 합니다.



낯선 소리에 나와보니 아무래도 말들 중 한 마리가 반항 중인 것 같습니다. 십여 마리의 말들이 목동의 지시에 따라 한 방향으로 줄지어 나가야 하는데, 그중 어리고 힘이 좋은 말 한 마리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서너 명의 장정들이 손에 두툼한 끈들을 쥐고 쫓기 시작합니다. 그 끈으로 목 끈을 만들어 잡아채려는 계획이었습니다. 몇 바퀴를 끊임없이 뜁니다. 이 도망가려는 말의 힘이 대단히 좋습니다. 몇몇 장정 분들이 시도해 보지만 턱도 없습니다. 조금 있다 보니 중년 나이의 한 분이 나서십니다. 그 외양에서 벌써 오랜 숙련가의 포스가 느껴집니다. 몇 분은 울타리처럼 원형을 만들어 더 멀리 도망가지 못하게 막고 고수가 다른 말에 올라타고 도망가려는 말을 쫓습니다. 계속 둥글게 둥글게 원형으로 뛰도록 유도하더니 손에 든 목 끈을 던집니다. 아깝게도 가까이였지만 첫 번째 시도는 실패, 놓치고 맙니다. 다시 행렬을 맞추고 숙련가의 두 번째 시도가 시작됩니다. 덜컥... 목 끈이 정확히 달리는 말에 걸립니다. 그때부터는 거의 모든 장정이 달려들어 힘으로 그 말을 이겨보려 애씁니다. 수십 바퀴를 이미 돌고 나서 힘이 빠져서였을까요. 이쯤에서는 손을 들어야 신상에 좋다는 것을 이미 알아서였을까요. 기세등등하던 그 말은 예상외로 순순히 장정들을 받아들입니다.



아이들과 말타기, 낙타 타기 체험도 하고 양털 깎기도 해 봅니다. 놀러 나갔던 양 떼가 게르로 돌아오는데, 새끼 양들도 많습니다. 나의 어린 두 딸은 게르 앞에 쪼그리고 앉아 그 새끼들 이름을 하나씩 지어줍니다.

“저기 하얗고 작은 애는 눈송이, 저기 까만 점 있는 애는 참깨, 저 갈색 무늬 있는 애는 크로켓이라고 부르자.”

양 새끼들이랑 내 새끼들이랑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그리 예쁠 수가 없습니다. 어미 양들도 뭐 그러려니 자기 일에 바빠 사람과 노는 새끼들 신경도 쓰지 않는 눈치입니다.


우리 여행에는 가이드 두 분이 동행을 했는데, 사막 운전을 맡아주신 중년 남자분과 기껏해야 이제 막 성인이 되었을 법한 어린 여자분이 함께였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굉장히 긴 몽골 이름이었는데, 줄여서 안나로 불러달라고 하더군요, 안나는 아이들의 큰 언니처럼 살뜰하게 놀아주고 챙겨 주었습니다. 말 타기, 낙타 타기, 양털 깎기 말 그대로 목동이 하는 일을 따라 하는 체험을 하루하루 마치고 나면 안나가 고기소랑 만두피를 준비해서 숙소인 게르에 옵니다. 오늘은 몽골식 만두를 만드는 날. 유목 문화이다 보니 고기를 많이 먹습니다. 소고기 다짐 육에 소금 간을 살짝 하고 밀가루 반죽으로 두툼하게 밀어낸 만두피에 고기소를 넣어 빚습니다. 기사분이셨던 남자분은 한국에서 5년 정도 살면서 외화벌이를 하셨었다고 해요. 만두 빚는 모양이 한국이랑은 좀 다르다면서 자상하게 설명해 주십니다. 손 만두를 기름에 튀기듯 구워 먹고는 게임을 하기로 합니다. 동물의 등뼈에 색깔을 입혀 알록달록한 공깃돌을 만들고 우리나라 격자 문양 테이블보 모양의 고운 색감의 가죽 매트 위로 사방치기 하듯이 노는 게임이었습니다. 안나는 이렇게 관광 가이드 하면서 돈을 모아 헝가리로 유학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영미 사회에 익숙한 나는 “왜 헝가리인가” 궁금했습니다. 안나는 러시아 유학은 돈이 많이 들고 헝가리가 유럽 쪽 유학지로 인기라고 하네요. 몽골은 공산사회는 아니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동구권과 가까운 나라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나니 아이들이 이제 피곤한가 봅니다. 안 나와 아저씨와는 내일을 기약하며 인사를 나눕니다.


이제 양치 시간. 우리에게 주어진 물은 4인 가족인데 하룻 동안 팻트병 두 개입니다. 이 물로 손도 닦고 양치도 하고 마신 컵도 씻어야 하니 처음에는 많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둘째 날이라고 오늘은 엄마도 아이들도 알아서 살짝 적신 칫솔에 아주 작은 양의 치약을 짜 놓고는 열심히 거품을 냅니다. 주어진 물은 인당 딱 컵 한 잔 양인데, 물 한 모금으로 헹구더니 나머지는 컵을 문질러 닦고 그 물로 손을 씻습니다. 3박 4일 일정이었는데, 이미 하룻밤 지난 후부터 아이들이 꾀죄죄 현지화를 완료합니다. 모래바람도 크게 한몫했습니다. 안나에게 물으니 원래 유목민들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샤워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떠나는 날, 게르 주인댁에 말 한 마리가 출산을 했고 아기 양도 두 마리 더 태어났습니다. 밤에 난로에 태울 숯을 더 달라고 주인집 게르 문을 노크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숯을 더 얹어주시던 그 아주머니에게 그런 화사한 웃는 모습이 있을 줄을 몰랐습니다. 유목민에게 가축은 재산이니까요. 부자가 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 맞나 봅니다.



사막에서 보는 일출도 일몰도 그 광경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끝없는 사막 저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무념무상, 세상에 걱정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잊지 못할 3박 4일 일정을 마치고 울란바토르 시내 우리가 묵을 호텔방에 들어섭니다. 뜨거운 물에 샤워를 하는데, 뭉쳤던 근육이 풀리고 좋습니다. 무엇보다 주어진 물이 얼마나 남았는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니 야호 소리가 절로 나옵니다. 수도꼭지 틀면 콸콸 나오는 수돗물, 집 안에 갈 수 있는 화장실이 있음도 다시금 얼마나 감사한지요. 처음 세상에 도시 상하수도 시스템을 만드신 분들은 인류의 삶의 질을 높이는데 혁혁한 공을 세우신 위인들이십니다. 오래간만에 좋아하는 TV 만화 프로그램 보면서 신난 딸들을 보고 있으니, 불과 몇 시간 전 게르에서의 생활은 아득히 먼 기억처럼 느껴집니다. 실컷 문명의 이기를 즐기고는 이제 침대에 누워 봅니다. 뽀송뽀송한 이불에 자동적으로 맞춰진 알맞은 실내 온도. 불쏘시개로 난롯불 피우지 않아도 되다니요. 일상에서 감사할 일이 이렇게나 많았는지 이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다들 피곤했는지 도란도란 얘기하다 말고 하나 둘 잠이 듭니다. 침대에 누워 호텔방 천장을 보는데, 그 새벽 2시 쏟아질 듯 별빛 가득했던 그 하늘이 생각납니다.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한 생명체로 살고 있는 나를, 항상 그런 자연이 품어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잊고 살고 있었습니다. 인류가 하나씩 만들어 발전시킨 문명의 이기를 일상에서 마음껏 누리고 살고 있었음을 잊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생각하던 평범한 일상이 그저 감사해지는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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