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이어지는 또 다른 도전의 시간
우리는 국제결혼 가정입니다. 서울에 일로 온 남편과 만나,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어찌 이런 창조물이 나오는가 두 아이를 바라보는 부부는 매일 환희에 연속이었고, 일상의 최선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곳저곳 국경 넘나드는 이사 다니며 아이들 키우다가, 이번에는 아빠 나라 영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습니다. 연애 때부터 여행을 너무나 좋아하던 두 사람은 도보로 대륙 횡단하기 꿈을 키웠었습니다. 부부는 이번 기회에 그 꿈을 현실로 만들어보기로 합니다. 아직 아홉 살, 일곱 살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대륙 횡단 이민 여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원래 꿈은 서울역에서 평양역을 지나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영국에 가기였는데, 안타깝게도 아직 통일 전이라 노선을 조금 변경했습니다. 비행기로 몽골 울란바토르로 이동한 후 그곳에서부터 러시아 이르쿠츠쿠로 향하는 대륙 횡단 열차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러시아 내에서는 이르쿠츠크-크라스노야스크-옴스크-예카테린부르크-모스크바-상트페테르부르크. 총 6개의 도시를 3주 동안 쉬다 가다를 반복하는 여행 일정을 짰습니다.
오늘은 우랄산맥에 위치해 있는 예카테린부르크 방문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옴스크에서 저녁 기차를 타고 꼬박 달려 새벽녘 예카테린부르크에 도착했습니다. 4월 말이지만, 하얀 눈이 군데군데 쌓여있는 아직은 추운 날씨입니다. 빨리 숙소에 이 짐들을 내려놓고 아침식사할 생각에 신이 납니다. 여행 중 식사는 든든하게 먹기로 합니다. 러시아 만두 펠메니(Pelmeni) 가게에 가서 군만두, 찐만두 다양하게 시킵니다. 두툼한 만두피에 만두소 주재료는 고기가 많습니다. 기후가 춥기 때문에 엽채류는 귀하고 구황작물의 대표인 감자를 많이 먹습니다. 만두 그릇마다 사워크림이라는 발효 유제품을 한 스푼씩 올려 주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든든히 먹고 우선 숙소로 돌아가 다리 쭉 펴고 한잠 자면서 쉽니다.
우리가 이곳에 오고 싶었던 주 목적지, 핀타워로 향합니다. 이 타워는 공식적으로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를 나타내는 조형물입니다. 도보로는 방문이 어렵다고 하여 콜택시를 호텔로 부릅니다. 목적지를 설명하는데 택시 기사님이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택시 탈 때는 유난히 육감이 작동하고, 거의 그 느낌이 맞습니다.) 시외 도로로 한참 빠져나가더니 운전기사가 "아~" 외마디를 외칩니다. 그러더니 지방 도로 위에서 역주행을 시연합니다. 다른 차들이 우리 차 옆을 마구 달려 지나가고 너무 무서워 죽겠는데, 택시 기사는 씩 웃으며 오던 길에서 거의 200m를 그렇게 후진합니다. 무사함에 감사하며 차에서 내리는데, 자기 명함을 건네 줍니다. 전화하면 다시 데려다주겠다고.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파리 에펠탑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데. 생각보다 자그마하고 숲 뒤에 숨어 있어 운전기사가 놓칠 뻔하긴 했다 싶기도 합니다.
"이제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제대로 이사를 넘어가는구나"
"드디어 왔어!"
동북아 한국에서 태어난 나와 서유럽 영국에서 태어난 네가 이리 이어진 땅 끝과 끝에서부터 시작하여 만났다고 얘기하며, 부부는 기분에 취해 먼저 사진을 찍습니다. 아이들에게 지도 푯말을 보여주며 설명도 합니다. 아직 어려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학교가 바뀌고, 친구들도 바뀌는 일은 말 그대로 온 세상이 뒤바뀌는 큰 변화이지요. 아빠 엄마는 가정의 큰 변화의 시기이니 잘 지내보자 이런저런 다짐을 하고 있는데, 뭐 그것은 어른들 사정이고 아이들은 나무 숲 속에서 녹지 않은 눈을 들고 나와 이리저리 던지고 놉니다.
"자, 아시아 받아라~", "저기 유럽 너도 받아봐라~”
눈싸움에 신이 난 아이들을 보며 "지금까지의 좋은 추억들도, 앞으로 만들어 갈 날들도 다 이렇게 이어지는 거야"라고 이 아이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스스로 깨달았습니다.
다음날에는 지역 명소인 '피의 사원'에 방문합니다. 로마노프 왕조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와 그 가족들은 1918년 볼셰비키에 의해 예카테린부르크에서 처형됩니다. 한참 후 유골 발굴 작업을 통해 그 일가의 시신을 안치한 사원인데, 내부는 엄숙하고 조용한 분위기입니다. 여성들은 모두 스카프로 머리를 가리라고 하여 딸들과 저는 목도리를 머리에 대신 둘러 예를 갖춰봅니다.
방문 당시 일주일 후에 있을 러시아 승전기념일 행사 예행연습이 도로 곳곳에서 한창이었습니다. 2차 대전에서 희생된 집안 조상님 사진들을 크게 확대해서 피켓을 들고 가두 행진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지 반백년이 넘어도 전쟁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 있는 듯합니다. 시기가 그래서였는지 방문하는 식당마다 2차 대전 배경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시기로부터 3년 후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이 벌어지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자주 먹는 청어 요리를 잘하는 음식점이 있다기에 찾아가 봅니다. 절인 청어와 함께 삶은 감자, 양파의 매운맛을 빼고 얇게 저민 상큼 샐러드, 빵을 구루통처럼 바삭하게 구워내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슈퍼마켓을 가보면 청어뿐 아니라 다양한 생선들을 염장 또는 식초에 절인 제품들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호텔방에 잘 재워두고 부부는 호텔 바에서 한잔 하기로 합니다. 배도 부르고 러시아 보드카를 샷으로 마실 용기는 나지 않아, 바텐더에게 '보드카 앤 토닉'을 주문했습니다. 진정 원하는 것이 그것이냐는 듯 의심스러운 표정을 하더니 “ if you wish~” 그럽니다. 모스크바에서 만난 남편 지인들에게 들어보니 러시아인들은 보드카의 순도를 생명으로 여긴다면서 그대로 샷을 즐겨야지 다른 것을 섞어 맛을 희석시키면 보드카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네요.
이렇게 우리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식적으로 유럽 대륙에서 삶에 시작이네요. 앞으로 다가올 날들의 희망을 품고, 다음날 우리 가족은 러시아의 수도 모스크바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탑니다.
<이 이야기는 2019년 여행 이야기임을 밝히며, 어서 전쟁이 끝나고 다시 평화로운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