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살면서 내 앞에 보이는 이것이, 이 현상이 그 의미의 모든 것일까? 통학하는 버스에서도, 밥을 먹다 가도 문득 그런 생각들을 하곤 했었다.
딸들이 저녁 식사를 마치고 양치를 하면, 예쁘게 잠옷으로 갈아입는다. 잠 옷을 입는 동안 나는 요가 매트와 자동차 열쇠를 챙긴다. 아이들은 “엄마 잘 다녀와” 인사하고는 침대에 퐁당퐁당 뛰어든다. 아빠랑 침대에서 책 읽는 것이 참 좋단다. 다행이다. 나는 조용히 문을 닫고 집을 나선다.
한창 수련을 마치고 마지막 온몸을 이완시키는 사바사나(이완자세)를 취한다. 담요도 한 장 덮고 매트 위에 누우면 몸의 열기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편안해지기 시작한다. 잠깐이었던 것 같은데.... 이제 발가락 손가락부터 꼼지락꼼지락 거리며 천천히 깨어나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아득하게 들린다. 몽롱한 기분이 든다. 흩어졌던 정신을 모아보는데, 딱 한 시간 중에 5분 정도 되는 시간 동안 누워있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 순간이 길게 느껴졌다. 불교 사찰의 향 냄새가 몸을 휘감고, 유난히 땀을 내고 에너지에 집중했던 만큼 몸이 노곤하고 나른하다. 오늘 수업의 마지막 찬팅을 마치고 나면 참여자들은 천천히 각자의 속도로 정신을 모아 집에 갈 준비를 한다. 대부분은 말이 없이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다음 요가 시간까지 안녕의 인사를 나눈다. 아직 완전한 현실로의 각성을 원하지 않는 이들도 있다. 내 몸에 이미 존재하는 생명의 기운을 이용해 세상의 기운과 나를 연결하는 요가 수련은 내 일상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예민한 감각이 조금씩 무뎌졌고, 일상 속에서 감정적으로 상황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상황의 본질을 빠르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생활 속에서 더 많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작은 사찰방 문을 열고 나서는데 향긋한 꽃내음이 난다. 오늘따라 유난히 짙다. 그런 나의 모습을 보고는 친구들이 살짝 어깨 끝을 쓰다듬고 간다. 나도 그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말이다.
불교 사찰 한구석 공간에서 힌두교 요가를 수련하는 이 상황도 특별하다. 사찰 바로 앞 3층 건물은 고아원으로 운영 중이었다. 아마 운영비가 필요하니 사찰 건물의 일부를 요가와 같은 외부 행사장으로 빌려주고 있는 것 같다. 도심 대형 묘지터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지만, 그 기운이 평화롭고 따뜻하다.
연습을 하면 할수록 그 자세나 호흡을 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뭐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다.
지금 수업을 이끄시는 선생님도 수련했다는 쿤달리니 강사 교육이 곧 예정되어 있다. 2주간 센터 근처에서 기거하면서 집중적으로 수련을 받는 프로그램이었는데, 다행히 남편과 시간을 맞춰 참여가 가능하게 되었다. 출산 이후 이렇게 아이들과 떨어져 보기는 처음이었다. 같은 절에서 수련하던 네 명과 나, 총 5명이 이번 수련과정에 참여하기로 한다. 버스 타고 내려가지 말고 같이 가자 합심하여 그중 한 분의 차에 타고 4시간가량 차량 이동을 한다. 이동하는 동안 끊임없는 수다에 간식이 오고 간다. 대화 중에 서로 연수에 참여한 이유를 묻는데 정신적인 스트레스나 두려움을 완화시키는 방법을 알고 싶은 사람도 있고, 이 요가를 통한 느낌들이 무엇인지 무척 궁금해서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도착한 곳은 쿠알라룸프르 페탈링자야. 도심 주변 지역으로 공단이 많고 조금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사는 지역이었다. 5명의 여인들은 근처 여인숙에 자리를 잡는데, 센터에는 새벽 네 시까지 모인다. 아직 동트기 전, 깜깜한 밤에 숙소를 나와 200m 요가 센터에 가려고 나와보니 취객들이 종종 보인다. 우리 연수생 독수리 5형제는 시간을 맞춰 같은 시간에 1층으로 내려와 그룹으로 움직이기로 한다. 서로를 돕고 응원하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었다.
쿤달리니 요가는 여러 요가 방식 중 하나로 정신적 수양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정신 수양을 위한 아사나(요가동작)들을 행한다. 파키스탄 출신의 구루였던 요기 바잔이 미국 뉴 멕시코에서 마약과 절도, 노숙 등으로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을 요가 수련을 통해 갱생시키면서 유명해졌다. 호흡을 통해 신경 호르몬을 안정시키고, 절도 있는 생활과 식이요법은 육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도록 한다. 면사로 된 흰 옷을 주로 입고, 자연의 기운과 나를 잇는 연습을 끊임없이 수련한다.
몸의 코어 기운을 살려 수련하는 쿤달리니 요가는 정신을 맑게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경건한 상태로 수업에 임해야 했다. 음식은 위에 부담을 주지 않는 채식 위주. 유일하게 무제한으로 허용되는 것은 물뿐. 몸 안에서 생기는 열기 덕분에 물을 정말 많이 마시게 되고 덕분에 강의장 화장실은 불이 나게 바쁘다. 총 참여 인원이 30여 명이었는데 좌식으로 일반 요가 매트에 양털 매트를 덧대어 앉아 이론 강의와 실습을 병행하며 수업이 진행됐다. 쉬는 시간에 잠깐 나갔다가 강의실에 돌아와 보면 재해 대피소가 이 비슷한 모습이겠지 싶었다. 하지만 수업 내용은 자연의 섭리와 그 속의 나를 주제로 하는 내용이었고 그 논리의 확장성은 어마어마했다.
하루는 일어나 보니 목과 등에 붉은 두드러기가 올라 있었다. 수업 시작 전에 강사님에게 약국을 물어 연고를 사러 가려했더니, Ayulveda(고대 인도 의학에 뿌리를 둠) 선생님이 자신의 처치실로 부른다. 카레에 주로 쓰는 강황(Tumeric)과 몇 가지 허브를 절구에 넣어 찧어 섞기 시작한다. 그리고는 두드러기 부분에 골고루 펴 바르더니 30분간 그대로 있으라고 한다. 시간이 지나 미온수로 깨끗이 닦아내니 붉은 기운이 모두 사라지고 살짝 울퉁불퉁 부은 자국만 남아 있다.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약국으로 쫓아가 화학품으로 모든 균을 다스리던 나에게는 이 또한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새벽 4시 30분부터 시작되는 아침 명상은 반복되는 리듬을 타고 그날 주어진 명상 기도를 하는 것이었는데, 30분 이상 그룹 인원들과 함께 같은 구절들을 낭송한다. 동트기 전 새벽녘의 기운과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목소리의 힘이 합쳐지면서 묘한 시너지를 발휘한다. 끝내고 나면 이것이 기도였는지 나의 내면의 소리인지 구분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자기 암시, 자기 확언의 한 형태로 이해하고 있다.
나는 그 연수 이후로도 다양한 방법의 요가수련을 지속하게 되었다. 이후 몸에 열을 내고 신체의 균형에 집중하는 하타 빈야사 요가 강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요가 강의를 시작하기에 이른다. 계속 귀한 구루들을 찾아다녔고 새로운 요가 수련생들을 만났다. 요가의 기본자세와 주의 사항들을 매뉴얼로 강의를 들을 수 있지만, 그 방법을 연마해서 행하는 수행은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깨우침을 듣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
잘 산다는 의미가 뭘까. 나를 가꾸어 내적 에너지를 가다듬고, 그 힘으로 세상을 느끼고 배우고 사랑할 수 있으면 잘 사는 것 같다. 나를 단련하는 좋은 방법을 만나 반갑고, 알게 되어 소중한, 평생 함께할 놀이 중 하나가 나에게는 요가수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