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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 문화가 낯설지 않아요

엄마가 남겨주신 유산 그리고 성탄절의 의미

by 세반하별

“얘들아, 어서 준비해야지 곧 출발할 시간이야.” 매년 크리스마스이브날 밤이면 엄마와 두 딸들은 성당으로 외출 준비를 합니다. 깨끗이 샤워를 하고 이쁘장한 붉은 원피스에 코트를 하나씩 걸쳐 입고는 목도리까지 야무지게 동여매고 집을 나섭니다. 성당에는 항상 단정하게 하고 가는 것이라고 엄마가 말씀하셨거든요. 불교신자이신 아빠는 늘 그런 우리를 배웅하셨지요.


엄마는 천주교 모태신앙이셨습니다. 독실한 불교 집안에 시집와서 장손 며느리로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셨습니다. 석가탄신일에는 어린 우리들을 절에 데려가셨었고, 집안 제삿날이면 절에 모셔둔 집안 조상님들 위패에 정성 들여 절 올리시고는 하셨지요. 더불어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 또한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큰 딸인 내가 성당 부속 유치원에 다녔던 것을 보면 자신의 신념 또한 굳건히 지키셨던 분이었습니다. 모르긴 몰라도 깐깐하셨던 우리 친할머니가 그런 며느리에게 한마디 안 하셨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집에서 성당까지는 30여 분. 12월 겨울 날씨는 제법 쌀쌀했습니다. 나랑 두 살 어린 동생은 엄마 손을 양쪽에서 잡고 캐럴을 부르면서 걷고는 했습니다. 너무 춥다 싶으면 가끔 중간에 구멍가게에 들러 찐빵이나 따뜻한 꿀물을 사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가 다니던 성당은 도심 한복판 서울역 근처였음에도 불구하고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가는 길은 깜깜했던 기억입니다. 언덕을 올라 성당에 도착하면 은은하게 울리는 성가대의 노랫소리와 따뜻한 주황 불빛이 성당 본관에서 새어 나오는데 그렇게 포근해 보일 수가 없었습니다. 말구유에 누워있는 아기 예수, 그 작은 아기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춥고 어두운 길을 따라 도착한 성당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마법이 시작되는 곳이었습니다. 함께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고 축일 미사를 마치고 나서면 엄마는 그러셨어요. “정말 메리 크리스마스!” 자정이 넘었으니 이제는 이브가 아닌 성탄절 당일이었던 게지요. 다른 신도분들과 따뜻한 인사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우린 이웃과 나눈 사랑의 마음을 가득 담고 있었습니다.


열두 살 즈음, 짧은 머리에 선 머슴 같았던 나는 하얀 미사보에 촛불을 들고 세례식 단체 사진을 찍은 기억이 납니다. 엄마는 나에게 천주교인으로 종교적 소양을 심어주려 노력하셨습니다. 하지만 '목마른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고 했던 가요. 외고 입시 즈음해서 저는 성당 미사 참여를 등한시하기 시작합니다. 말 그대로 무늬만 신자인 나일론 신자가 되지요. 엄마는 몇 번 미사 참여하라고 권유 말씀을 하셨지만, 그렇게 내가 냉담자가 되어도 별말씀은 없으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영국 땅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의 크리스마스는 소비문화에 잠식된 듯 많은 선물을 사고, 포장하고, 손카드 달고 보통 일이 아닙니다. 대한민국 며느리들에게 제사 문화를 바꾸려면 시부모님의 용단이 필요한 것과 비슷한 경우일까요. 나의 시댁은 코비드 락다운이 있던 해부터 시어머님의 선언에 따라 성인 가족들은 마니토처럼 비밀 산타를 한 명씩 연결해서 그 사람에게만 선물을 하는 것으로 시스템이 바뀌었습니다. 아이들은 예전처럼 모두에게서 선물을 받을 수 있지만 말이지요. 성탄절 준비가 훨씬 간단해졌습니다. 선물 증정식이 간소화되니 크리스마스이브날 가족들은 부담 없이 서로에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선물 나누기 대신 미사 참여 후 팬터마임 공연을 보러 가기도 하고, 함께 모여 추억 쌓는 그 시간이 더 편안해졌습니다.


우리 부부 사이에 큰 딸이 태어나고 잠시 세례 얘기가 나왔지만, 남편은 아이가 스스로 종교를 선택하면 모를까 모태신앙을 주고 싶지 않다고 합니다.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기에 엄마인 나도 동의하게 되었지요. 큰 아이가 영국 국교회 부속학교를 다니다 보니 학교 교과 과정에 채플이 있습니다. 제가 천주교인이라고 했더니 아이가 반색을 하며 학교 채플에서 만난 신부님 얘기를 합니다. “그럼 우리 같이 성당에 가볼까?”


예전 엄마한테 배운 대로 일요일 아침이면 샤워를 하고 단정한 옷을 찾아 입습니다. 성당으로 향할 때면 오늘은 무엇을 위해 기도할까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가끔은 “예쁜 하늘을 위해 기도하자” 하기도 해요. 오며 가며 나누는 딸과의 소박한 대화들이 참 좋습니다. 큰 딸은 다음 달 세례식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세례 받던 나이와 꼭 비슷한 나이입니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서 생활하다 보면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관용구를 만나고는 합니다.

어느 날, 한 기사를 읽습니다. 블랙 프라이데이 세일이 조사해 보니 대부분 정가 판매이지 특별히 할인한 가격이 아니더라는 내용이었는데, “Black Friday should be taken with a pinch of salt”라는 문구가 나옵니다. '소금 한 꼬집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갸우뚱하던 나는 그 뜻을 찾아봅니다. 성서에서 '소금'은 예수가 사람들과 나누는 '믿음', '정화'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저 문구는 “블랙 프라이데이(할인가격)를 너무 믿지 말라”라는 뜻이었지요. 이렇듯 영국의 언어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성경을 알아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엄마는 제가 후에 영국 문화 속에서 살게 될 줄 아셨을까요? 아마도 우연이겠지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친정 엄마는 가톨릭을 통해 제게 영국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정서적 토양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더불어 딸과의 좋은 추억을 쌓아가는 대를 잇는 문화도 만들어주셨지요.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귀한 시간으로 보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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