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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병난 김에 나에게 묻는다

by 세반하별

작은 동네 수제 맥줏집에 들어서면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웃음소리 한가득.

밖이 추울수록, 겨울밤이 길고 어두울수록

분위기는 더욱 무르익는다.



가게 초입 스탠딩 바에 서서

시큼한 자몽 맛이 나는 맥주를 한 입 가득 채운다.

바쁘고 다채로웠던 한 주의 피로를 날려주는 꿀맛.

이 맛에 열심히 산다.



어제 많이 마셨었나, 아닌데...

머리에서는 북소리, 뱃속에서는 기차소리.

책 속 글자 하나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고

하루를 숙취에 바칠 만큼 어제의 맥주 한잔이 가치 있는 것이었나.


하룻밤 잘 자고 나면 상쾌하던 날들은 추억이 되고,

이제는 전 날 마신 재미만큼 다음날 그 값을 치러야 한다.

어째 살면 살수록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

세상 이치에는 변함이 없고, 나는 세월 따라 더 민감하게 그 의미를 깨닫는다.



맥주 한 잔이 나에게 갖는 의미부터 시작된 생각은

이제는 술잔 옆에 물병을 둬 볼까,

안주 없이 마시는 영국 땅 서 한국식 안주빨을 세워볼까.

방법론에 까지 이르러 피식 웃음이 난다.



사람은 상황 따라 적응하기 마련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나는 한 주의 달콤함을 놓을 생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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