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과학 잡설

도로 위, 유리 알갱이가 중요한 이유

언제 어디서나 차선을 잘 보여야 한다.

by 허준영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에 운전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밤이라면 말이다. 앞 유리창을 쉴 새 없이 때려대며 시야 확보를 방해하는 빗줄기는 운전자를 움찔하게 만든다. 그리고 더욱 난감한 것은 도로 위의 차선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차들이 시속 100km/h가 넘는 속도로 달리는 상황에서 갑자기 차선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면 어떨까? 필자와 같이 담이 작은 사람이라면 떠리는 손으로 비상등을 켜고 속도를 절반으로 줄일 것이다. 차선이 없다면 옆 차와 간격을 맞추고 안전하게 운행을 하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 세계 최고의 카레이서라고 할지라도 속도를 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차선과 신호는 우리가 만들어 낸 효율적인 시스템이다. 차선을 그려 놓음으로써 더 많은 자동차들이 효율적으로 도로를 달릴 수 있게 되었고, 평균 운행 속도도 높아졌다. 자기 차선을 지키며 규정 속도를 준수하면 안전하게 운행할 수 있기 때문에 운전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차선은 언제나 잘 보여야 한다.


먼저 극복해야 하는 것은 어둠이었다. 낮 시간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어둠이 내린 밤이 되면 차선이 잘 보이지 않게 된다. 그래서 활용한 것이 유리다. 차선에는 작은 유리알을 포함되어 있다. 야간에 자동차 전조등의 불빛을 반사해 차선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다. 차선용 도료에 유리알이 포함되어 있거나, 차선을 그리면서 그 위에 유리알을 살포하는 방식으로 차선을 반사율을 높인다. 가끔 차선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 분들을 보면 빗자루를 들고 계신 분들이 꼭 계신데, 그분들이 하는 역할은 살포된 유리알이 차선 위에 잘 자리 잡도록 쓸어주는 역할이다.


hrseries.png 차선에 도포되는 유리알(사진 출처 : http://esung.co.kr/pro/pro02.htm)


그러나 한번 칠하면 오랫동안 그 기능이 유지되진 못한다. 자동차들이 계속 밟고 지나가며 페인트도 유리알도 마모되거나 떨어져 나가기 때문에 영구적으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차선을 주기적으로 다시 도색을 하는데에는 지저분해 보인다는 심미적 이유가 아닌 안전과 직결되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다.


자! 어두운 밤에도 차선이 잘 보이도록 하는 데는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한 가지 극복해야 할 것이 남아있다. 비가 내려서 노면이 물기에 젖으면 상황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아쉽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많은 도로의 차선은 비만 오면 잘 보이지 않는다.


james-zwadlo-5RRseu8n_5s-unsplash.jpg 비에 젖은 도로의 차선은 잘 보이지 않는다. 특히 밤에는 더 하다.(사진 출처 : James Zwadlo on Unsplash)


사실 비가 올 때도 차선을 잘 보이게 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가지가 있다. 야광용 도료를 사용하는 방법, 차선을 두껍고 올록볼록하게 칠해서 방법도 있다. 차선에 아예 빛을 내는 LED 조명장치나 물리적인 반사 장치 같은 것을 설치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고급 도료를 쓰거나, 유리알을 우천용 유리알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사실 여기부터는 규정과 예산이 문제가 된다. 도로의 노면 표시 반사율에 대한 기준이 있다. 젖은 노면에 대한 기준은 2019년 6월 개정된 도로교통법 시행규칙부터 포함하고 있다. 그 전에는 사실상 비가 오는 날의 반사율에 대한 기준이 없었다. 기준이 없으면 할 수 있어도 하지 않는다. 늘 그렇듯 돈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비가 와도 차선을 잘 보이게 하는 방법은 이미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러려면 돈이 많이 드는 문제가 있다. 고급 도료를 사용하는 것 만으로도 어느정도 해결은 가능하다.


일반적인 형태의 차선을 설치하고 유지하는 것은 모두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비가 오는 상황에서도 잘 보이는 차선을 설치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되지 않았다. 어쩌면 일부 세금이 오르거나 고속도로 통행료가 늘어나야 할지 모른다.


도로공사나 일부 지자체에서는 추가로 예산을 더 편성해 시범적으로 차선 시인성을 높이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는데 그 효용성에 공감하고 모두가 합의에 이르기 까지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지 모르겠다. 통행료를 조금 더 내더라도 조금 더 안전한 도로를 달리자고 모두가 합의하는 건 어떨까?


물론 조금 더 저렴한 비용으로 비 오는 밤에도 잘 보이는 차선을 그릴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는 것이 최고의 시나리오겠지만 말이다.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는 굉장히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니, 기대해 보기로 하자.



(표지 사진 : Wokandapix by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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