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소감문, 직장생활 돌아보기 01
내가 처음으로 직장이라는 것을 갖고 사무실과 비슷한 공간에 매일 출근을 하게 된 것은 2006년의 일이다. 학습용 교재를 만드는 출판사였는데, 내가 그곳을 다니게 된 계기는 순전히 우연이었다. 대학 졸업장을 받은 이후에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내가 그나마 한 일이 취업 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한 것이었는데 우연히 그 이력서를 본 어느 불쌍한 출판사 대표님이 나에게 전화를 하셨다. 그곳에서 1년이 안 되는 시간을 보냈다. 그래도 여러 가지 배려를 해 줬는데 1년도 안돼서 퇴사한다고 했으니 그 대표님 입장에서는 약간 어이가 없으셨을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퇴사한 직장은 나의 두 번째 직장이다. 13년의 시간을 보냈던 그 직장을 다니게 된 계기도 비슷하다.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고 하릴없이 지내던 중에 전화가 왔다. 대학 선배였다. 그리고 그 선배의 한마디가 나의 두 번째 직장을 결정했다.
'야, 우리 회사 이번에 인턴 뽑는 데 한번 넣어 봐!'
과학 분야의 공공기관인 그곳은 내 전공, 관심사와 비교적 잘 맞는 곳이었기에 큰 고민 없이 지원했다. 운이 좋게도 지원자가 많지 않았다. 결국 운빨 하나로 두 번째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라는 존재가 늘 그렇듯, 내가 가진 시간의 대부분을 빼앗아 가 버렸다. 거기에는 딱히 불만이 있는 건 아니다.
내가 어쩌다 들어간 직장이라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 전공이나 관심사에 맞는 곳이긴 했지만 단언컨대 선배가 그 회사에 대해 말해주기 전까지는 그런 회사가 있는 줄도 몰랐다. 조금 정확히 말하자면 언젠가 들어본 적은 있는듯한 이름이었지만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회사인지는 몰랐다.
사실 누구나 알만한, 삼성, 현대차와 같은 대기업이 아닌 이상 자신이 입사한 회사를 입사 전에도 잘 알고 있던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물론 면접을 보기 전에는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지면서 열심히 공부하긴 했다. 첫 직장 생활 이후 2년 동안 대학원에서 보낸 시간이 나를 조금은 철이 들게 했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학창 시절부터 특정 회사를 염두에 두고 그 회사에 반드시 입사할 거라 다짐을 하고 충실히 준비해서 그 회사에 당당히 입사한 준비된 직장인들일까?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삼성전자에 입사할 거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내 주변에서 그렇게 말하고 실천한 사람은 아직 보지 못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보통은 자신의 직장은 그렇게 결정되지 않는다. 한 동안, 때로는 몇 년간 취업 준비에 시간을 올인하고 수십 군데의 회사에 지원서를 넣고 그중에 합격한 회사가 결국 나의 직장이 되는 구조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소속되어 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매일 찾아가는 나의 직장은 결국 누구에게나 어쩌다 다니게 된 직장이 아닐까? 그 회사 오너의 2세가 아니라면 말이다.
직업과 관련해서 꿈을 갖고 그것을 쟁취하는 사람들은 있다. 의사가 될 거라든가, 공무원이 될 거라고 다짐하고 결국 이루어낸 친구들 말이다. 내 친구 중에는 어렸을 적부터 꿈이 교사였고, 결국 그 꿈을 이룬 친구도 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자신의 직장은 어쩌다가 결정될 확률이 여전히 높다. 의사가 되었다고 해도 자신을 스카우트하는 또는 받아주는 병원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것이고, 공무원, 교사가 되었다고 해도 스스로 자신의 첫 근무지를 결정할 수는 없다. 당연히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곳이 첫 근무지가 되지는 않는다.
결국 우리 중 대다수는 어쩌다가 '바로 이' 직장을 다니게 된 것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어쩌다 다니게 된 직장이라고 소중하지 않은 건 아니다.
(Photo by Abbe Sublett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