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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준영 Aug 22. 2022

회식의 추억

직장생활 돌아보기, 퇴사 소감문 06

  확실히 회식이 줄긴 했다. 코로나 19 이후 최근 몇 년간 저녁에 회사 동료들과 술자리를 가져본 일은 손에 꼽는다. 그중 공식적인 회식 자리는 얼마 전에 내가 퇴직하면서 부서원들과 함께 한 것이 유일하다. 앞으로 코로나 19가 종식된다고 해도(post가 아니라 with가 될 가능성이 더 크겠지만) 과거와 같은 회식 문화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회식은 직장생활에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이제 그게 아니라는 게 밝혀졌다. 직장에 따라 다르지만 많은 회사는 회식을 하지 않아도, 반드시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하지 않아도 업무는 잘 돌아갔다. 이제 모두 알아버린 것이다.


  필자는 회식 자리를 좋아하진 않는다. 특히 어렵거나 꺼려지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이 함께 하는 자리라면 더더욱 부담스럽다. 윗 분들 성향을 잘 맞춰드리는 성격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지도 못하는지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맘이 편치 않은 자리기 때문이다. 특히 한 때 전 직원 회식 때 꼭 경영진과 소통이라는 핑계로 몇 명을 윗분들 옆자리로 배치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럴 때는 술을 잘하지 못하는 몸도 몸이지만 정말 심적으로 피곤했다.


  하지만 조금 아쉽기도 하다. 맘에 맞는 사람들끼리 갖는 소규모 회식이나 번개는 늘 즐거웠기 때문이다. 괜찮은 동료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지만 그들과 함께 회사 욕도 하고 불편한 사람, 꼴 보기 싫은 사람들 험담을 하는 그 시간이 직장 생활의 즐거움 중 하나였다. 모두가 사명감에 불탔던 신입 사원 시절에는 술잔을 앞에 놓고 오랜 시간 업무를 조금 더 잘하기 위한 토론을 하기도 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면 즐겁기 마련이다. (Photo by Kelsey Chance on Unsplash)


  선배나 부서장에게 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해야 할 때도 술의 기운을 빌릴 수 있는 경우도 있다. 직장 분위기가 건의사항이나 직장 생활의 어려움을 편한 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라면 회식은 그런 애로사항을 해결하는 통로로 쓸 수 있다는 말이다.


  회식을 적절히 잘 활용하는 동료 팀장도 있었다. 아무래도 부서장과 부서원이라면 쌓인 게 없을 수 없다. 그 팀장은 부서원들이 자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를 잘 파악한다. 그리고 그 직원이 폭발하기 전에 회식을 통해 기분을 풀어주고 격려를 한다. 자신에 대한 불만을 다 들어주는 것이다. 현실은 변하지 않아도 말이라도 한번 하고 나면 기분이 풀어지기 마련이다.


  물론 회식의 부정적인 면도 분명히 있다. 평소에 말하지 못하는 불합리함과 어려운 점을 쏟아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음해와 모함이 일어나기도 한다. 더욱이 회사에서 일어나는 불미스러운 사건들(쌍욕, 주먹다짐, 음주운전, 성폭력 등등)은 회식과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2차 3차까지 이어지며 과해지면 문제가 되기 마련이다.


회식이 과하면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Photo by Nik Shuliahin �� on Unsplash)


  회식 자리에서 뭔가 중요한 것이 결정되거나 발표가 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쉽게 빠지기도 찜찜하다. 과거에는 회식도 업무의 연장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산재와 관련한 법원의 판단도 그렇다. 하지만 이런 인식도 변화가 있다. MZ 세대의 회식에 대한 인식은 다르다.


  코로나19 이전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후배 직원과 다음과 같은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나    : 오늘 회식인 거 알고 있지?

후배 : 팀장님. 근무 시간 6시까지인데, 회식을 꼭 가야 되는 거예요?

나    :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야.

후배 : 근무 시간 이후인데 어떻게 업무의 연장이에요? 그럼 시간 외 근무 수당 신청해도 돼요?

나.   : 아... 그건....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회식을 원하는 젊은 직원도 적지 않다. 조금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은 회식에 호의적이다. 다만 전반적인 분위기가 바뀐 것은 분명하다. 회식을 업무에 중요한 축으로 활용하는 것보다는 팀워크 강화 차원으로만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고깃집이나 횟집에서 시작해서 호프집과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회식의 코스도 변화가 있다. 일단 1차에서 마무리가 되는 게 대세고 음식도 이탈리아 레스토랑이나 마라탕과 같이 젊은 이들 취향으로 바뀌고 있다. 심지어 음식은 간단히 때우고 야구장, 볼링장에서 회식을 한다는 말을 들은 본 게 이미 몇 년 전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더 나아지고 회식이 잦아지더라도 3차 4차까지 이어지며 과음을 조장하는 회식은 하지 않아야 한다. 앞에 언급한 부작용을 줄이는 유일한 길이다.



  마지막으로 개인적인 의견이긴 하지만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회식은 정말 질색이다. 도대체 가사는 왜 바꿔 부르는 건지. 사랑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 누구 이야기냐고? 바로 당신 말이다. 당신!




(표지 Photo by Haley Truong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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