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없다.
최근 우연히 아이브 원영이 출연한 인터뷰 예능을 몇 개 보게 되었다.
단순히 무한 긍정을 외치는 듯했던 그녀의 "럭키비키"라는 말에는 사실,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녀가 했던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이랬다.
"‘사상이나 철학도 없다’라는 ‘버린다’는 말이 있어.
‘나의 생각은 이러하다’라고 단단히 마음먹는 순간부터
그 집착이 고통을 낳는다고 하거든.
우리가 아까 이야기 나눈 것처럼,
‘나는 원래 이 시간에 먹어야 하는데’, ‘나는 원래 이건 이건데’라는 생각이
사실은 원래부터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
어떤 일이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흘러도 화낼 일이 없어지는 거야."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이런 의미로 받아들였다.
내가 가진 신념을 입 밖으로 꺼내어 그것을 분명히 밝히는 순간,
그 신념과 나는 하나로 단단히 굳어버린다.
그런데 단단하다는 것은 곧, 유연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유연하지 못한 사람은 결국, 상황이 내 뜻대로 움직일 때를 더 선호하게 된다.
그리고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흘러가면 쉽게 화를 내게 된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래서 더 이 말이 신경 쓰였는지도 모르겠다.
특히 요즘 들어, 이 부분을 더욱 실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면서 가장 자주 화를 내는 대상은 부모님, 친한 친구, 연인처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 이유는, 우리 뇌에는 ‘나’를 인지하는 영역과 ‘타인’을 인지하는 영역이 따로 존재하는데,
나와 가까운 사람일수록 그 인지 영역이 나에 더 가깝게 저장되기 때문이다.
즉, 뇌가 그들을 ‘나’와 비슷한 존재로 인식하면서,
나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이 커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면 불편하고, 결국 화를 내게 되는 것이다.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내가 주변 사람들을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내성적이고, 의심이 많은 성격이다.
그래서 내 곁에는 가볍게 아는 사이가 아니라,
오랜 시간 신뢰할 수 있다고 판단한 사람들만 두었다.
이 말은 곧, 내 뇌에서 그들을 ‘나와 같은 영역’에 저장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이 바로, 원영이 말했던 “원래는 없다”라는 개념에 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 ‘이건 이래야 해’라는 생각들은 사실,
내가 스스로 만들어놓은 기준일 뿐, 원래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다.
그걸 인정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기준에 얽매이지 않게 된다.
가까운 사람이 내 기대와 다르게 행동할 때도,
‘원래는 없던 기준이었지’라고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통제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관계 속에서 오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도 줄어든다.
결국, 무한 긍정이란
모든 걸 좋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을 때 오는 자유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