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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타트업얼라이언스 Sep 09. 2019

[스얼레터#192] 또 다른 멋진 목적지가 있을테니까


  1년의 반이 훌쩍 넘은 지 한참이지만, 계절감 때문인지 이 시기가 되면 거창한 건 아니더라도 자체 마일스톤 리뷰 같은 걸 하게 됩니다. 


  제 올해 목표 중 하나는 만화방처럼 두 겹으로 진열된 복잡한 책장을 정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초에 좀 멀리 이사를 갈 뻔 하면서 갖고 있는 물건이 너무 많다는 자각도 있었고, ‘언젠가는 읽을 거라며’ 악착같이 쌓아 둔 책들에 대한 부채의식을 떨쳐보자는 의도였습니다. 활자로 쓰면 야속할 정도로 간단해 보이는 목표인데, 생각보다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습니다. ‘11년도 최신 개정판’ 같은 책들은 간단히 버렸고, 새 거나 진배없는 수험서는 필요한 분께 나눔을 해 드렸습니다. 언젠가 생각날 것 같은 소설책이나 경영서는 다시 훑었습니다. 간단한 감상 정도를 끄적여 두는 데도 꽤 많은 시간을 썼습니다. 팔리는 책들은 새 주인을 만나라고 중고서점으로, 안 팔리는 책들은 누군가 관심있을 사람이 있으려나 해서 동네 골목의 대여 서가에 보냈습니다.

 이렇게 정리한 게 올해 서른 권이 좀 넘었습니다. 이렇게 숫자로 써 놓으니 엄청 뿌듯한데, 정말 놀라운 건, 책장에 티가 하나도 안 난다는 겁니다. 큰 책장도 아닌데, 여유 없이 빽빽한 '형상보존 책장'을 면치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책이 그만큼 더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궁금한 게 생겨서 한두 권 또 주문하고, 책을 팔러 갔다 괜찮은 헌책의 할인율을 보고 또 업어옵니다. 출판사에서 서평용 책을 주시는 기분좋은 일도 종종 있었구요. 

  이런 추세라면 이번 하반기는 커녕 당분간은 서가 한 줄 걷어내는 것도 요원해 보입니다. 읽지 못한 책도 아직 많구요. 그렇다곤 해도, 이 목표는 꽤나 성공적으로 달성했다고 자평합니다. 처음의 목적과는 멀어져 버렸지만, 지금의 관심사가 반영된 새 서가라는 만족스런 결과물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빽빽하고 정신없지만, 새 책등이 많이 보여서 책장이 한결 깔끔해 보인다며 정신승리도 살포시 해 봅니다. 시작했을 때의 의도를 완전히 빗나가는 결과물을 마주해도 그걸로 만족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면, 세상을 살아내는 파이팅이 좀 부족한 실없는 자로 보이려나요.

  어쩌면 제가 원했던 건 복잡한 서가를 정리하는 게 아니라 지금의 관심사가 반영된 새 서가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도대로 목적지에 도착한 성취감은 물론 달콤하지만, 가끔은 생각지 못했던 목적지에 도달하는 우연한 행복을 누리는 것도 꽤나 근사한 경험인 것 같네요. 이래서 계속 마일스톤을 만드나 봅니다. 자, 그럼 이번 가을에는 또 어떤 계획을 세워볼까요?
  

- 또 진지하게 책장 정리를 고민하는 동은 올림 -



스얼레터 192호 다시 읽기: https://mailchi.mp/startupall/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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