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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별 Nov 30. 2020

내 살 길은 내가 찾는다

근로 없으면 장서점검, 폐기 못합니다.


3월 초에 1년 치 운영계획서를 작성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이거 혼자서는 절대 못한다.'였다. 다른 건 꾸역꾸역 스스로를 갈아가며 한다고 쳐도, 2만 원이 넘는 책을 하나하나 스캔해야 하는 장서점검과 책을 버리는 과정인 폐기 작업이 문제였다. 해마다 한 번은 꼭 해야 하는데, 혼자 한다면 과연 며칠이나 걸릴지 상상만으로도 아찔했다.




중고등학교였다면 도서부를 선발해서 활용할 수 있지만 초등학교에는 그런 제도가 거의 없다. 그리고 차마 그런 걸 시키기가 미안할 정도로 초등학생은 정말 어리다. 사실 못 미덥기도 하고. 그렇다고 학부모 도서도우미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는 불편한 마음이 앞섰다.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면, 남은 방법은 두 가지였다. 그냥 혼자 하거나, 새로운 방법을 찾거나.


그래서 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바로 방학 동안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국가근로장학생을 배정받는 방법이었다. 내게 그리 호의적이지는 않은 학교를 상대로, 조금 무모한 도전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주변 반응도 마찬가지였고. 그래도 시도는 해봐야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아 그러기로 했다.


"...그래서 근로장학생을 배정받으면 어떨까 싶은데요."

"음, 그러세요."


이 다섯 글자를 듣기 위해 나는 도서관에 근로장학생이 필요한 이유를 자세한 업무 설명까지 곁들여 설명했다. 그리고 이 일이 학교에 피해를 줄 일은 절대 없으며, 꽤 많은 공공기관에서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고,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귀찮은 것들은 내가 다 맡아서 하겠다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공손하게 전했다.


반기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결과가 성공적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그러지 않았으면 이번에도 표정관리를 못했으리라. 허락을 받고 도서관에 돌아오자마자 기쁜 마음으로 신청 준비를 시작했다.


국가근로장학생 신청 과정은 꽤 까다로웠다. 아마 내가 있던 학교는 아예 등록조차 되어있지 않아 더 그랬을 것이다. 게다가 나는 학교의 정식 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담당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래도 흔쾌히 도와주신 덕분에 조금은 수월하게 신청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장학재단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으니 관심 있다면 참고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내가 신청한 것은 방학 중 근로였기 때문에 대학생 방학 일정에 맞게 6월 말부터 8월까지만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학기 중 근로도 배정받을 수 있지만 그건 연초에 인근 대학교에 직접 신청을 해야 진행이 가능하다고 해서 아쉽게도 나는 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가장 바쁠 시기에 근로장학생을 받을 수 있게 되어 정말 다행이었다. 덕분에 장서점검과 폐기를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훗날 이 일은 내가 이곳에서 했던 중 가장 잘한 일로 기억된다. "근로 없으면 장서점검, 폐기 못합니다."라는 말은 내뱉을 땐 과장 섞인 으름장이었지만, 지나고 보니 사실 그 자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근로가 없었다면, 정말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좀 더 시간이 지난 후의 일이니 천천히 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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