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학교에서 근무하면 결코 피할 수 없는 일에 관한 이야기다. 참고로 말하자면 도서관 업무와는 정말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 사서라면 한 번쯤 비슷한 경험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건의 발단은 가을에 진행된 학교 축제였다. 학교 전체적으로 직업 관련 부스를 마련해서 학생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형식이었다.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땐, 올 게 왔다고 생각했다. 도서관의 공간을 내줘야 하는 건 내 학창 시절을 생각해봐도 당연했다. 개인적으로는 도서관에서 직접 진행하고 싶었지만, 도서부도 없는 초등학교니까 어쩔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연 도서관에서 뭘 할까? 싶었는데, 배치도를 받아보니 '웃음치료사'였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역대급 시끄러운 도서관이 되겠구나'였다. 그다음엔 생각보다 전문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땐 그게 정확히 뭔지 몰랐으니까.
그러다 문득 걱정이 생겼다. 공간을 내어주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진행을 해야 하는 걸까? 그걸 바란다면 이게 무슨 경우 없는 경우인가 싶었다. 물론 어차피 하라면 해야 하지만, 도서관 업무만으로도 정말 바쁜 때라 내키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관련 설명을 위해 축제 담당 교사가 도서관에 찾아왔다.
"배치표 보셨죠? 도서관에서는 웃음치료사 부스가 진행될 거예요."
"아, 네. 그 혹시 제가 따로 준비하거나 할 일이 있을까요?"
최대한 하기 싫은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정말 숨겨졌을지는 알 수 없었다.
"아뇨. 당일에 학부모님들께서 봉사 와주실 거라서 사서 선생님은 하실 일 없을 겁니다."
그 말이 더 불길하게 느껴졌던 건, 내가 부정적인 사람이라서였을까? 아니, 나는 그저 경험을 통해 쌓은 빅데이터가 주는 쎄한 느낌을 캐치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축제 당일, 내 불길한 예감은 현실이 됐다.
고요한, 폭풍 전야의 아침이었다. 피곤해서 모닝커피를 만들어 오려는데 누군가 도서관에 들어왔다. 잠시 멈칫했지만, 곧 이 사람이 오늘 부스의 강사라는 걸 깨달았다. 생각보다 너무 어려 보여서 의아했지만, 일단 인사를 나누고 커피 한 잔 하겠냐는 빈말을 던졌다.
그리고 잠시 후 나는 커피 두 잔을 들고 도서관에 돌아왔다. 그 와중에 종이컵도 없어서 근처 특별실에서 빌려왔다. 커피를 주고는 딱히 할 말이 없어서 준비하시면 된다고 하고 자리에 앉아 일을 했다. 그 사람이 서가에 가서 뭔가를 하는 것 같았지만, 오늘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임을 알기 때문에 급한 일을 처리하는 게 우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학부모님 두 분이 오셨다. 아는 얼굴이었다. 도서 도우미도 가끔 하시던 분들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내 기억에 이상했던 경우는 없어서 안심이었다. 방학이 길어서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봉사자분들과 함께했던 때를 말이다. 그분들에게 뭘 바라면 안 된다는 사실도.
9시가 되자 축제가 시작된 건지 몇몇 학생들이 오기 시작했다. 약간 스탬프 투어처럼 도장을 받아야 하는 모양이었다. 학부모님 중 한 분이 그 일을 맡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웃음치료사가 뭔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모르고 있었기에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잠시 후 체험이 시작됐고, 나는 내내 헛웃음을 참았다. 웃음치료사는 바로 레크리에이션 강사였다. 내가 생각했던 진지한 치료의 개념보다는 아재 개그나 농담 식의 이야기로 프로그램을 채웠다. 학생들은 즐거워보였다. 아마 초등학생 수준에 맞춰 준비한 것 같았다.
그건 솔직히 내가 상관할 부분은 아니었다. 문제는 진행 방식이었다. 5~10명의 학생이 모이면 시작을 하는데 중간에 껴서 하기가 애매한 프로그램이었다. 그래서 자꾸만 학생들이 들어왔다가 나가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펼쳐졌다. 하지만 그 누구도 해결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안 한 건지 못 한 건지는 모르겠다)
그 와중에 혼자 앉아서 고고하게 내 업무를 하고 있기란 쉽지 않았다. 어차피 집중도 안 되는데 그냥 내가 나서서 정리를 했다. 일단 강사에게 한 타임당 몇 분 정도 하는지 물어봤다. 그조차 명확하지 않은지 우물쭈물했다. 솔직히 정말 뭐지 싶었다. 약 15분 정도 하는 걸로 마무리하고 입구 쪽에 자리를 잡았다. 체험 중간에 애들이 들어올 때마다 안내를 했다. 그래도 문 열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흐름이 깨지는 건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밖으로 나갔다. 복도에 서서 애들이 올 때마다 설명을 했다. 이미 시작해서 진행 중이고 다음 타임은 N분 후에 시작될 거니까 그때 맞춰서 오든, 여기서 기다리든 원하는 대로 하면 된다고. 그러자 드디어 어수선했던 상황이 정리되고 제대로 진행할 수가 있었다.
예상대로 나는 하루 종일 아무 일도 못하고 그냥 복도에서 애들과 떠들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만큼은 사서가 아니라 일일 행사 진행 요원이었다. 애초에 믿지도 않았지만, 속으로 몇 번이고 '내가 할 일 없을 거라며!!!' 를 외쳤다.
게다가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강사가 서가에 글씨를 적은 쪽지를 숨겨두고 찾는 활동을 했었는데, 남은 쪽지를 전혀 회수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했다. 얼마나 꽁꽁 숨겨놨는지, 덕분에 연말까지도 책 정리를 하다가 그 쪽지를 발견할 수 있었고, 그때마다 혈압이 오르는 건 덤이었다.
학교에서 일을 하게 되면 이런 일이 수두룩하다. 다른 학교 사서분은 체육대회날 달리기 결승선 잡고 있는 역할을 요구받았다고 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학교에 소속된 직원인 이상, 관리자가 시킨다면 방법이 없다.
그건 당연히 알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체계를 갖추고 할 수는 없었을까? 어수선한 진행과 미흡한 뒷처리로 인해 내겐 더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버렸다. 또 축제 담당 교사가 아주 단호하게 할 일 없을 거라고 얘기하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지 어이가 없진 않았을 것이다. 정말 그 사람은 뭘 믿고 확신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