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행사를 계획하고 준비한 건 사실 3월이었다. 외부에서 지원받은 예산으로부터 시작된 행사였기 때문이다. 전임 사서가 예산을 지원받기 위해 써둔 계획서를 나에게 맞게 다 뜯어고쳤는데, 그 과정에서 선택한 행사 중 하나가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작가와의 만남은 뭔가 도서관 행사의 정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해보고 싶었다. 내가 있던 학교가 고등학교였다면 약간 사심을 채울 수도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초등학교였기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청소년 문학이면 모를까, 아동 문학은 정말 관심 밖이었기 때문에 정보가 필요했다.
그래서 '책씨앗'이라는 사이트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학교도서관 사서라면 꼭 가입하고 둘러보면 좋겠다. 그 어느 곳보다 양질의 정보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 작가와의 만남은 출판사를 통해 진행되는데, 책씨앗에서는 자체 시스템을 갖추고 있어 편리하게 섭외할 수가 있었다.
시스템은 편했지만 사실 섭외가 쉽지는 않았다. 학교는 지급할 수 있는 강사료 기준이 빡빡한 편이었으니까. (이 돈으로 작가를 섭외하고 싶어 하는 건 양심이 없는 게 아닐까 싶은 수준이다) 그래서 미안한 말이지만 최대한 덜 유명한 작가를 찾았다. 대신 강연의 주제가 되는 책 내용을 신경 썼다. 그리고 대형 강연이 아닌 소수의 신청자를 받는 형식에 간단한(?) 체험이 포함된 프로그램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강사료 기준을 면밀히 살펴보고 원고료까지 포함하여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잡은 후 책씨앗을 통해 강연을 요청했다. 다행히 요청이 받아들여지고 외부 예산 계획서를 무사히 수정해서 제출했다. (사실 학교에서는 그 강사료도 탐탁지 않아했지만 기준을 바탕으로 겨우 설득에 성공했다) 그리고 무려 6개월 만인 9월에 진행을 한 것이다.
중간에 텀을 두고 작가님과 연락을 하긴 했다. 원고와 여러 동의서 등 사전에 받아야 할 서류가 몇 개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만들기 체험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준비물 키트를 문의하고 따로 구매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잊고 있던 가장 중요한 부분이 걸림돌이 되었다.
이전에도 살짝 언급했지만 초등학교 도서관의 이용률의 대부분은 저학년이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 행사는 만들기 체험 때문에 고학년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그래도 설마 고작 20명을 채우는 게 어려울까 싶었지만 정말 그랬다.
약간 화가 날 정도로 신청을 안 해서 거의 구걸하다시피 홍보를 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그렇게 구구절절 메신저를 보낸 건 이때가 유일했다. 다행히 담당 선생님까지 도와주셔서 겨우겨우 20명을 채웠다.
아니 작가 강연만 있으면 안 올 것 같아서 일부러 책 선물과 만들기 체험까지 넣었는데 대체 왜 그렇게 신청을 하지 않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더 쉬운 체험을 넣고 저학년 대상으로 할 걸, 후회가 됐다. 그리고 이 후회는 행사 진행 내내 더 깊어져만 갔다.
행사는 한 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30분은 강연, 1시간 30분 정도는 만들기 체험으로 진행되었는데, 역시나 문제는 만들기 체험이었다. 왜인지 신청자들이 대부분 손재주가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리고 사실 손재주를 떠나서 초등학생 수준에서는 시간 내에 완성하기가 어려운 수준의 체험이었다.
관련 경험이 있었다면 알 수 있었겠지만 나도 처음 만들어보는 거라 애들과 함께 당황해버렸다. 작가님께서 이전 강연에서는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하셨지만, 아마 대부분 손재주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체험 시간 내내 돌아다니며 애들을 도와줬지만 결국 끝나는 시간이 늦어졌다. 다행히 다음 일정이 없는 친구들이라 계획했던 걸 다 할 수는 있었다. 책을 나눠주고 작가님께 사인을 받을 수 있도록 했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기념 촬영을 해주고 사진도 나눠줬다. 도서관에 방치되어 있던 물품을 알차게 써먹었다.
오후 내내 모든 시간을 작가와의 만남에 쏟았기 때문에 도서관은 엉망이었다. 만들기 재료가 굴러다니고 아직 꽂지 못한 책이 넘쳐났다. 그런 날은 대체 왜 오전 단체 수업까지 있어서 평소보다 책이 많은 걸까.
처음으로 그 모든 걸 뒤로한 채 퇴근을 했다. 왜냐하면 행사를 마무리하고 작가님을 보내고 나니 퇴근 시간이 20분이나 지난 후였기 때문이었다. 초과 근무 수당도 못 받는 처지에 남아서 정리하고 갈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오늘 하건 내일 하건, 내가 하는 건 마찬가지니까 눈 꼭 감고 미루기로 했다. 작가와의 만남은 정말이지 들였던 노력에 비해 보람은 미미했다. 기운은 있는 대로 다 썼는데 제대로 마무리를 못해서 찝찝하기까지 했다. 대신 그만큼 다음에 또 진행하게 된다면 사전에 확인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는 확실히 깨달았다. 허탈한 마음으로 고요해진 학교를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