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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 cozy Jun 23. 2023

아기처럼 따라 하고 취한 사람처럼 말하는 법

아침 ESL수업을 다시들은 이유들


몇 개월간 ESL수업을 쉬며 혼자서 공부를 하려다 보니

점점 꾀를 부리게 돼서  공부를 하는 상황에 나를 갖다 놓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동네 칼리지에선 매 학기 무료 ESL이 있기에, 또 서머클래스는 한 달 간이라 부담도 덜 해서 시작한 것이 벌써 한 달이 다되어   3번의 수업만이 남았다.


이번 수업은 선생님이 참 좋았다.

그전 선생님들도 물론 좋았지만 이번 선생님은 나이가 좀 있으시면서 컴퓨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시고  여러 가지 영어공부앱을 수업 중간중간 적대적소에 쓰신 덕분에 4시간이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다.

영어퀴즈 앱으로 게임하듯 하다 보니 긴장감도 있는 것이 아이들도 이 맛에 퀴즈앱으로 공부를 하나 싶었다.


아침엔 가벼운 주제들로 얘기를 나누며 수업을 시작한다.  

제일 좋아하는 반려동물이 뭔가요? 젤 좋아하는 영화가 뭐였나요? 등등,, 대답 중에 한국 드라마를 젤 좋아한다는 중년의 학생도,  오징어게임이 인생영화라고 하는 학생도 있어서 은근 기분이 좋았다.


ESL수업은 일단 부담이 적다.

멕시코, 이란 , 중국등 다양한 국적과 나이의 학생들이 모여서 고만고만한 영어실력이다 보니 못해도 덜 창피하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도 없다. 문법에 안 맞게 자유롭게 얘길 해도 끝까지 잘 들어주는 선생님이 고맙고도 대단하게 느껴진다.


수업 덕분에 아침을 좀 더 부지런히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오전 8:30 분 수업 시작 전  강아지 아침과 응가를 위한 산책, 남편 아침을 완료해야 하므로  7시 정도 일어난다.  오늘은 6시에 눈이 떠졌고 잠이 깬 김에 일어나  수업 중간 쉬는 시간에 먹을 미역국도 미리 끓여놓을 수 있었다. (쉬는 시간  후다닥 먹는 아침밥이 또 그렇게 맛있을 수 없다!)


아침 수업을 시작하며  엄마가 보내준 파우더 음료수를  한잔 마신다.

채소와 과일들을 파우더로 만든 제품인데 맛도 생각보다 맛있고  공복에 마시면 더 좋다고 해서 수업을 시작하며 책상에 가져와 마신다. 아침에 일어나 공부도 하고 건강도 챙기는 거 같아 나름 뿌듯하고 기분이 좋아진다.


사실 나에게 영어 공부라는 건 엄청나게  광범위한 일이고 미국에 살며 풀어야 할  제일 큰 숙제 같이 느껴졌다. 그래서 오히려 더 피하게 되고  '이거 공부해 봤자 얼마나 실력이 늘겠어..' 라며 아예 공부를 안 해 버리기도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그러한 행동은 나의 오만함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나는 영어를 못한다는 걸 인정하는 거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였다. 나도 모르게 영어실력의 기준치를  원어민 수준으로 측정해 놓고 그 기준에 미달이 되는 나를 창피해하며  도달하기엔 너무 높아 미리 포기해 버리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내 수준부터 디딤돌을 밟아가듯 하나씩 조금씩 해 나가면 되는 건데 덜 창피를 당하고 덜 무시를 당하고 싶어서 더 적게 말하고 더 스스로를 자책하며 어두워지게 되는 것이었다,


인도인 럭키가 한국어를 배울 때 도움이 되었던 명언이,

'언어를 배울 때는 아기처럼 따라 하고 술 취한 사람처럼 말하라.‘라고 한다.

아이들은 문법을 따지지 않고 말하고 주변사람들의 말을 따라 한다. 그러면서 문법을 익히기보다 자연스레  원어민의 표현에 집중을 하게 된다고 한다.

또한 한국인은 술만 마시면 세계 모든 언어를 유창하게 하는데 , 왜 그런가 하니  술을 마시면  문법이 틀려도 상대방 눈치를 보지 않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국어가 아닌 이상 외국어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불안한 것이 있다면  작고 만만한 걸로 쪼개서 하나씩 조지세요.'라고 한다.

부담이 큰 일일 수록 잘 개 쪼개서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성취감과 자신감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 나도 만만한 한 달짜리  여름 학기를 듣다 보니  더 긴 다음 학기 수업도 신청을 해서  아침마다 꾸준하게 영어공부를 해나 가보자란 맘이 조금씩  피어난다.

* 또  고등학교 때 그냥 외웠던 have been p.p 를  수업시간에 다시 공부하게  되며   pp가 present perfect를 의미한다는 걸 이제야 알고 괜스레 뿌듯했다.

* 오늘은 pharmacist dialogs를 가지고 말하기 테스트를 했는데 뭔 용기인지 내가 제일 먼저 해보겠다고 했다. 나름 수업에 적극성을 가져보려고 노력의 대가로 선생님의 따뜻한 칭찬을 받아서 기분이 좋았다.

내 속도에 맞춰서 꾸준하고 소소한 성취감을 느껴보고자 하는 게 지금 나의 목표이다.

영어를 배워서 뭘 해야겠다는 장대한 목표보다는

아침 일찍 차를 만드는 시간을,

선생님보다 조금 일찍 줌을 켜놓고 잠시 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시간을,

몰랐던 단어를 하나 외우는 기쁨을 ,

퀴즈 맞추기에서 제일 빨리 버튼을 누르는 재미를,

작지만 매일매일 해나가는 그 자체가 내 작은 목표들이자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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