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글ㆍ사진 ㅣ길보경
여행을 결심하는 순간의 중심에는 어떤 테마가 존재한다. 낯선 도시를 방문하기에 앞서 특정한 대상으로부터 동기를 얻고, 특정한 주제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그 대상이란 언제나 장소에 가깝다. 내겐 건축과 디자인, 예술을 두루 탐미할 수 있는 공간인 미술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미술관은 어떤 도시의 환경이나 문화와도 긴밀히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 도시의 속살처럼 여겨진다. 어디를 가든 방문하고 싶은 미술관을 명료하게 정해 두고, 나머지는 되는대로 흘러가도록 두는 편이다. 평소 촘촘히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즉흥성을 추구하는 나의 성향이 이러한 여행의 방식에 보탬이 되는듯하다.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깊이 애호하는 사람으로서 제이유아이 하우스를 만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과도 같다. 영화 속 한 장면이 상영되는 것만 같은 경험을 안겨주었기 때문이다. 대만 타이난 중심부에 자리한 제이유아이 하우스는 일본 건축가 반 시게루가 설계한 타이난 미술관 2관과 마주 보고 있다. 지리적 위치 덕분에 세 개의 객실과 두 개의 테라스, 루프탑에서 미술관을 끊임없이 조망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방문한 타이난, 그리고 제이유아이 하우스에서 머문 특별한 시간을 기록해 본다.
제이유아이 하우스는 타이난의 서쪽 중심지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식물이 가득한 테라스를 갖춘 모던한 외관의 제이유아이 하우스는 대만의 전통적인 길고 좁은 타운하우스 사이에서 단연 돋보였다. 문을 두드리니 이곳의 호스트, 준(June)과 포니(Ponnie), 아후이(Ahui)가 해사한 미소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호텔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숙소에서는 비대면으로 체크인이 진행되기에, 주인으로부터 직접 설명을 듣는 경험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총 4층인 제이유아이 하우스를 함께 오르내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낯선 공간에 보다 쉽고 편안하게 적응할 수 있었다.
“타이난의 준준 하우스를 시작으로 2022년부터는 제이유아이 하우스도 함께 운영하게 되었어요. 이곳은 기울어진 디자인, 경사로, 나무와 콘크리트의 대비 등을 활용해 디자인했습니다. 특히 타이난 미술관 2관에 경의를 표하는 마음을 공간으로 구현하고자 했죠. 층마다 테라스를 두었고, 루프톱에서도 전망을 감상하기 좋은 구조로 설계했어요.” 호스트 준의 말처럼 일반적인 집의 규칙적인 구조를 벗어난 이곳은 독창적인 주거의 레이아웃을 갖추고 있었다.
1층에는 독특한 형태의 현관과 키친을 배치해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서 기능하도록 했다. 마치 대가족이 사는 집의 주방처럼 냉장고, 토스터기, 커피머신, 컵과 그릇 등 모자람 없이 갖추고 있었다. 무엇보다 커다랗고 길쭉한 아일랜드 겸 테이블이 요리를 하고, 식사를 준비하기에 매우 용이했다. 1층 테라스의 양옆으로는 두 개의 화장실과 세면대가 있어 주방에 머물거나 외출 직전에도 편리하게 사용했다.
계단을 올라가자 작은 서재와 테라스, 두 개의 객실이 나타났다. 서재에는 만화책과 소설집, 매거진 등이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었다. “제이유아이 하우스를 설계한 디자이너가 서적을 직접 큐레이션 했다. 대만의 지역별 먹거리를 아름답게 표현한 만화책을 꼭 읽어보세요!” 이곳을 지날 때마다 준의 말이 떠올라 틈틈이 펼쳐보았다. 설명을 직접 듣지 않았으면 몰랐을, 귀엽고 요긴한 팁이었다.
2층에서 첫 번째로 마주한 객실명은 ‘Open’. 그 이름처럼 바깥의 풍경으로부터 열린 공간이었다. 평상이 있는 테라스와 연결되어 언제라도 빛과 바람, 풍경을 느끼며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대각선에 있는 또 다른 객실의 이름은 ‘Hug’. 무게감 있는 천연 소재의 침구를 적용해, 침대에 눕는 즉시 기분 좋은 촉감을 느끼게 되는 것에서 착안해 이름 붙였다고 한다. 어두운 색조의 벽을 기본으로 콘크리트와 우드를 균형감 있게 가미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조명 외에는 별다른 물건이 없어 쾌적했다.
3층에는 영화 관람과 보드게임을 즐길 수 있는 거실이 있었다. 어디론가 빛이 흘러 고개를 들어 보니 네모나게 천창이 나 있었다. 맑은 날엔 푸른 하늘을, 흐린 날에는 유유히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자연이 가져다주는 풍요로움을 즐길 수 있을 터였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하루는 맑았고, 나머지 하루는 비가 왔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모습을 감상하던 순간 내면에 평온함이 차올랐다.
제이유아이 하우스 예약하기
거실의 맞은편으로는 넓은 테라스가 있다. 작은 원탁에 앉아 미술관을 차경 삼아 티타임을 즐기거나 독서를 하기에 제격이었다. 타이난 미술관 2관의 야외 정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마치 미술관의 정원과 이곳이 연결된 듯 하나의 공간 속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제이유아이 하우스를 바라보았는데, 생각보다는 눈에 띄지 않았다. 숙소에서 미술관을 볼 때 좀 더 극적인 공간감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가 선택한 객실은 ‘Gaze’. 나머지 두 객실과 비슷한 무드였지만, 침실과 연결된 테라스의 창문과 그 사이로 경사로가 조성되어 있어 더욱 특별한 인상을 주었다. 만일 아이가 있었다면 이곳을 미끄럼틀처럼 오르락 내리지 않았을까? 외부의 풍경을 내부로 적극 끌어들여 고립된 공간에서도 개방감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층마다 욕실과 화장실을 갖추고 있었는데, 3층에는 스파가 가능한 욕조가 딸린 샤워실이 있었다. 역시나 정직한 사각형이 아닌 욕조로 ‘기울어진 디자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듯했다.
제이유아이 하우스의 백미라면 바로 이 루프톱이다. 자연으로부터 활짝 열려 풍경을 끌어안으며, 별을 응시할 수 있는 공간. 도심 속 한복판이라는 것을 잊게 할 만큼 평화롭고 아늑했다. 캠핑용 의자부터 3단 데크로 만들어 놓은 좌석까지 다양했고, 이곳에서는 저마다의 취향에 따라 음악 감상, 요가, 그림 그리기 등 무슨 활동이든 가능했다. 낮부터 밤이 깊을 때까지 시간이 변함에 따라 변화하는 미술관과 도심 전망을 바라보며 오래도록 머물고 싶게 만들었다.
오후에는 미술관의 야외 정원이 아름답게 점등된다. 해가 떠 있던 때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보는 이를 매혹했다. 숙소에서 자연스럽게, 끊임없이 미술관을 마주하다 보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을까 싶었다. 덕분에 밤에도 경이로운 풍경을 오감으로 채집할 수 있었다. 실제로 이 미술관은 현지인들이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찾아오는 명소이기도 하다고.
밤의 테라스도 궁금한 마음에 둘러보았다. 아웃도어 조명이 있어 이곳에서도 캠핑의 분위기를 만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원래 대만이 미식으로 유명한 만큼 요리를 하지 않을 거라 예상했다. 숙소 주변에 도소월 본점 등 맛집과 야시장이 즐비했기에 더욱이 계속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공간이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제이유아이 하우스의 주방에서 커피만 마시기에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고, 간단히 장을 봐서 저녁을 준비했다. 오리 볶음밥, 샐러드와 사케를 곁들였고, 간식으로는 랍스터 맛 감자칩과 타이완 비어를 마셨다. 주방에 일렬로 놓인 크래프트 맥주병을 보니 순간 식당에 온 것 같은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우버 이츠를 활용해 인근 맛집에서 대만식 토스트인 총좌빙과 오리구이, 튀김을 시켰다. 동과 레몬차도 함께! 3층의 테라스까지 음식과 그릇을 가져가는 일이 번거로웠지만, 원래 낭만은 효율과 대척점에 있지 않은가. 일상적이지 않은 여행의 순간이기에 귀찮음을 무릅쓰고 테라스에서 식사를 즐겼다. 아침의 푸릇푸릇한 풍경 속에서 좌식으로 밥을 먹으니 산뜻하고 즐거웠다.
제이유아이 하우스는 다인원이 머물 수 있는 숙소이지만, 인원에 관계없이 단 한 팀 만을 받는다. 전체 공간을 오로지 일행과 공유하기에, ‘따로 또 같이’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셈이다. 이곳의 또 다른 좋은 점은 바로 폴라로이드 사진 출력 서비스! 체크인 혹은 체크아웃 시 1박당 한 장의 사진을 호스트가 찍어준다. 원하는 사진을 고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사진을 출력해 주는 서비스를 갖췄다. 이틀을 숙박한 우리에게는 이곳의 상징적인 공간인 루프톱과 문 앞에서 각각 한 컷씩 남기도록 해주었다.
제이유아이 하우스에서 두 밤을 지내며 어느 곳과 비교할 수 없는 독보적인 장점을 지닌 숙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스트가 직접 맞이해 주는 방식을 경험하고 나니 결국 사람의 온기와 세심한 배려가 깃들수록 그 공간도 빛을 발한다. 또 낯선 여행지의 고유성을 발견하는 것도 좋지만, 서울을 살아가는 나만의 방식을 다른 문화권의 시공간에서 누릴 때 더욱 각별한 정서를 품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타이난에서도 좋은 미술관과 달리기에 쾌적한 골목길, 숙소 바로 옆에 맛 좋은 커피를 내어주는 카페를 만나기를 기대했고, 제이유하우스에서 머무는 동안 근사한 장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곳들이 마음 속에서 불현듯 그리워지는 순간, 다시 여행을 계획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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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er 길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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