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정원의 풍경이 흐르는 집 : 한옥 시호일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일상 속 서서히

스며드는 여유


글ㆍ사진   길보경



여행의 미덕 중 하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생활에 만족하는지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숙소는 본래의 일상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삶을 탐구하는 가장 좋은 환경이 되어 준다. 누군가가 정성스레 꾸민 공간에 머물며 내게 맞는 집을 상상해 보는 기회인 것이다.


아파트 생활자인 나는 평소 정원이 있는 집에 대한 로망이 있다. 하나의 화분도 때마다 잘 돌보기 어려운 현실을 상기해보면 가드닝이 사실은 굉장히 고된 노동이지만. 초록의 생명이 우리에게 전하는 기쁨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사람이 식물을 돌보지만 결국 식물이 사람을 돌보는, 그 위대한 순환을 매일 경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넓고 근사한 정원이 없어도 식물을 가꿔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마음을 알 거라 생각한다. 작은 돌봄이 내 생활에 어떤 즐거움을 가져다주는지 말이다.



가을의 초입에 만난 한옥 시호일은 오래도록 꿈꿔 왔던, 정원이 있는 집이다. 강릉중앙시장 인근에 자리한 이곳은 '여기 이 좋은 날'이란 뜻처럼 정원의 풀향기 속에서 여유를 느끼고 좋은 순간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만든 숙소이다. 스튜디오 시호일의 세 번째 프로젝트로 1970년대에 지은 고옥을 현대식 주거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사방이 정원으로 둘러싸인 한옥 시호일에서는 자연과 일상이 자연스레 연결된다. 침실과 거실, 주방 그리고 욕실에서까지 창밖으로 아름다운 꽃과 나무가 보였다. 물론 실내에도 각종 식물이 놓여 있어 초록의 기운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었다.



바깥의 정원이 자아내는 풍경에 시선을 빼앗기다가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세월의 결이 느껴지는 한옥의 기둥과 보, 주춧돌이 고아한 매력을 뽐내는 가운데 공간을 채우는 가구와 소품, 아트피스가 공간의 모던함을 극대화한다. 윤형근의 회화를 비롯해 동양적 미감을 품은 그림과 달항아리, 도자기 화분이 유럽의 디자이너가 만든 조명과 조화를 이루며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했다.



각 공간마다 호스트의 탁월한 안목과 세심한 배려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숙소 이용법과 주변의 여행 코스 추천 등을 담은 안내문과 웰컴 드링크로 준비한 오죽잎차, 귤피로 만든 입욕제 등 게스트에게 최적의 쉼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 곳곳에 자리한 스튜디오 시호일에서 자체 제작한 패브릭 제품 등을 경험해볼 수 있었다.



우리 가족은 집안을 살펴본 후에 다시 거실로 모였다. 아무래도 모두가 함께 있기 가장 좋은 공간은 주방과 연결된 거실이었다. 기념으로 사진을 찍고 나자 피곤이 몰려왔다. 이른 오전부터 분주히 움직인 우리는 잠시 각자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언니와 나는 정원으로 나와 차를 마셨다. 여름을 넘어 가을로 가는 길목이라 앞마당과 뒷마당에 단풍이 예쁘게 물들고, 감나무에 열린 감이 다홍색으로 익어가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과 과실수가 있는 정원에 둘러앉아 차 한잔을 나누며 한옥을 바라볼 수 있도록 낮은 돌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다.


때마침 비가 내려 처마에서 뚝뚝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행 중 비가 오는 순간이 이토록 반가웠던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초록빛 풍경을 차경으로 삼아 향긋한 오죽잎차와 함께 오롯한 쉼을 누렸다.



저녁 시간이 가까워 지자 식사 당번을 정했다. 이 지역의 유서 깊은 전통시장인 강릉중앙시장이 지척에 있으므로 시장에서 먹거리를 사 오기로 했다. 아빠와 언니가 다녀오는 동안 엄마와 나는 좀 더 쉬다가 식탁을 정돈하기로 했다.


피로를 회복하기 위한 또 다른 좋은 방법은 목욕이 아니던가. 욕실에 마련된 실내 스파를 이용해 반신욕을 즐겼다. 욕실용 스툴에 읽고 싶은 책까지 골라 두니 완벽했다. 숙소에 비치된 책 <정원가의 열두 달>과 잡지 킨포크의 <가든>도 ‘정원을 들인 삶’ 즐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전 세계의 정원을 글과 사진으로 만나니, 한옥 시호일의 공간적 특성이 더욱 감각적으로 다가오는 듯했다.


(귤피 입욕제를 여러 번 사용하고자 천주머니에서 일부를 꺼내어 사용했지만, 추후에 청소하기 번거로우니 한 번에 사용할 것을 권한다.)



시장에서 사 온 도다리, 쥐치회와 오징어 순대 그리고 과일로 저녁 상을 차렸다. 주방에 마련된 그릇에 음식을 담으니 더욱 먹음직해 보였다. 강릉의 와인숍 민트(MEENT)에서 산 내추럴 와인 '나뚜랄멘떼 비오 네로다볼라'과 집에서 가져온 와인 '섹슈얼 초콜릿'을 곁들이니 아주 완벽한 저녁이 되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 같이 예능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술과 대화를 좋아하는 우리 가족답게 저녁 내내 행복한 음주의 시간을 보냈다. 한 집에서 오래간 지내며 서로에게 익숙한 가족들일지라도, 여행을 떠났을 때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있다. 평소라면 가까이 들여다보지 않았을 표정이 보인다. 근사한 공간을 마주 했을 때 보이는 호기심 어린 눈빛, 천진한 미소 그러다 문득 읽게 되는 낯선 얼굴.


그저 가족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여행이지만 이렇게 문득 새롭게 다가오는 얼굴을 보면 알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온다. 나의 버팀목이자 보물 같은 존재인 가족들과 서로의 깊은 곳까지 살피며 많은 시간을 나눌 수 있기를 바란다.  



다음 날 아침에는 엄마가 내려주신 커피와 시장에서 사 온 신선한 과일을 넣은 요거트, 삶은 계란 등을 먹었다. 요리가 가능한 시설은 아니었지만 토스터기와 전기 포트 등이 있어 간단히 아침을 꾸리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한옥 시호일에서 머무는 동안 훗날 나의 집에는 작은 정원을 만들어야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어쩌면 자연과 생명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사랑을 뜻하는 바이오필리아적 소망이 아닐까 싶다. 내가 꿈꾸는 일상에는 매일 흙을 만지고, 식물을 보듬는 나만의 정원이 그려진다. 숙소에서 읽은 카렐 차페크의 <정원가의 열두달> 속 한 구절로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당신에게 마음 한편에 숨어 있는, 혹은 숨 쉬고 있는 정원가의 꿈이 닿기를 바라며.


“인간은 손바닥만 한 정원이라도 가져야 한다. 우리가 무엇을 딛고 있는지 알기 위해선 작은 화단 하나는 가꾸며 살아야 한다.” - 카렐 차페크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한옥 시호일 예약하기




에디토리얼 / 제휴문의

media@stayfolio.com



                    



매거진의 이전글 정성이 가득 담긴 공간  : 이리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