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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 지는 안식의 시간 : 하루앤하루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내 마음을 잠시

멈추어 두는


글ㆍ사진  신은지



너무 많은 것을 위해 애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 무렵 떠난 제주 여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험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여행의 거처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괜찮은 공간이 필요했다. 멍하니 시간을 보낼 때마다 자책하는 내 조급한 마음을 너그러이 받아줄 공간. 대단히 특별할 필요는 없으나 대단히 자연스럽고 편안한 공간. 


조천에 자리한 스테이 하루앤하루는 그 이름부터 여유가 느껴졌다. 하루, 그리고 하루. 조천읍의 바다를 가까이 마주한 형태였는데, 조용한 동네의 풍경과 함께 바다를 조망할 수 있는 구조가 인상적이었다. 창가에 앉아 생각을 비우며 하염없이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기대를 안고 도착한 조천의 바다는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하루앤하루는 만으로 깊이 들어와 있는 바다와 닿아 있는 모양새다. 조천 지역 자체가 제주의 동쪽에 위치해 있음에도 이곳에 면한 바다는 서쪽을 바라보고 있다. 동쪽에서 바라보는 서쪽 하늘. 바다 너머로 사라지는 노을을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매력적이다.


이곳은 메인동과 별채로 나뉘는 '돌집', 그리고 2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옥상정원집'으로 구성된다. 이번 여행의 정착지는 옥상정원집. 단정한 매스 위에 전망대 같은 공간이 겹쳐져 있다. 반드시 해가 지기 전에 입실하고 싶었고, 바람에 등 떠밀려 발길 가는 대로 조천의 바다를 거닐다가 다행히 해 질 무렵 하루앤하루에 도착했다.



안으로 들어서니 비스듬히 내려앉은 해 질 녘의 햇빛이 공간에 녹아들고 있었다. 오후 내내 해를 마주한 덕분인지 공간은 이미 따스하고 포근하게 달구어진 상태. 2층으로 이어지기 때문인지 높고 널찍한 공간감이 느껴졌으며, 발 아래 혹은 시선에 가까운 창으로 늘어지는 햇빛에 온몸이 노곤해졌다.



입구 옆에는 바로 손을 씻을 수 있도록 세면 공간이 배치되어 있었다. 작은 턴테이블 겸 스피커는 공간을 은은한 음악으로 채워준다. 옅은 분홍이 감도는 턴테이블이나 전구 모양이 돋보이는 브라켓, 조형적인 이미지의 드라이기까지, 공간에 사용된 인테리어 포인트는 전체적으로 아기자기하고 키치한 맛이 있다.



하루앤하루는 주방이 무척 아름다운 스테이다. 계란후라이나 라면 밖에 하지 않는 나조차 무언가 조리 기구를 손에 들어 요리를 하고 싶게 만들었다. 디테일이 사랑스럽다. 벽돌을 연상시키는 직사각형의 타일 벽 위에 집기가 일렬로 보기 좋게 배치되었고, 한쪽에 자리한 옷걸이에는 톡톡한 소재의 앞치마가 마련되었다. 앞치마가 있는 스테이라니. 왠지 본격적이다.



그중 가장 오래도록 머물렀던 곳은 조천의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다이닝 테이블. 세븐 체어 4개가 테이블을 둥글게 둘러싸고, 그 위로는 느슨히 내려온 둥근 펜던트 조명이 있다. 왠지 차 한 잔을 마셔야만 할 것 같다.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지만 하루앤하루에는 디카페인 드립 커피가 준비되어 짧은 홈카페 시간을 가졌다.


주방 옆으로 이어지는 거실에는 셰리프 TV와 비스듬히 기대 눕기 좋은 소파가 자리한다. 그 앞에는 어디에서 온 것일지 사연이 궁금해지는, 인더스트리얼한 부속품을 간직한 테이블이 놓여 있다. 이곳에도 긴 창이 계획돼 돌담 너머로 조천의 또 다른 풍경을 느낄 수 있었다.



높이 솟은 다락방으로 올라가듯 둥근 계단을 따라 움직이면 침실이 나타난다. 침실은 옥상정원과 바로 연결되는 구조다. 무척 개방적이지만 주변 건물이 낮아 프라이빗한 풍경을 보여준다. 


침대의 양옆과 앞 모두 창을 내 이 동네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하게 하는데, 침대에 기대 발 언저리로 슬쩍 시선을 내리면 노을과 같은 눈높이로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수평선을 따르듯 좌우로 길게 난 창이 조천의 바다를 그림처럼 담아냈다.



옥상정원이라는 이름을 공중정원이라고도 부르고 싶다. 단순히 2층에 배치한 작은 테라스를 기대했으나 이곳에는 말 그대로의 정원이 펼쳐졌다. 난간이 아니라 돌담의 형태를 하고 있고, 바닥에는 동네를 거닐다 발견할 법한 자갈 같은 것들이 깔려 있다. 돌담을 따라서는 크고 작은 나무와 꽃, 허브 등의 식물이 이어진다. 


2층으로 솟은 공간에서 돌담을 바라보니 감상이 묘하다. 아주 높다란 언덕에 머무는 느낌, 혹은 나만의 공중정원에 누워 있는 느낌. 돌담에 기대 반짝이는 바다를 하염없이 눈에 담았다.



간단히 저녁을 챙기고 어스름한 하루앤하루를 만끽했다. 1층 거실 맞은편에는 나무 데크가 깔린 테라스가 있다. 투박한 질감의 목재로 엮어 만든 낮은 의자와 테이블은 캠핑 분위기를 내기 충분했다. 테이블에는 작은 가스레인지가 내장돼, 저녁 공기가 제법 차가워진 지금 몸을 웅크려 앉고 뜨끈한 라면을 끓여 먹기 최적의 공간이었다. 알전구에 불을 켜니 아련한 연말 분위기가 더해진다.


하루앤하루는 공간 곳곳이 제 나름의 방식으로 자연에 열려 있고, 그 영역마다 수행하는 역할이나 느껴지는 분위기가 다르다. 힌 공간에서 이렇게 다채로운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노을을 닮은 듯 노랗게 물든 조명 아래 하루를 천천히 마무리했다. 테이블과 의자가 편안하고 조명이 아름다우니, 와식 생활을 선호하는 나도 차분히 앉아 있게 된다. 


낮에는 온화했던 조천의 바다가 밤이 되니 사나워지기 시작했다. 땅을 내려치는 듯한 파도 소리와 바스락거리다 못해 무언가를 찢을 것 처럼 날카로워진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나는 아주 안전하고 편안하다. 나는 이곳에 있다. 가로등 불빛에 비치는 나무의 그림자가 현란하게 휘청이는 것을 바라보며 이 소란한 적막에 철없이 즐거워했다.



잠에 빠져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눈을 뜨기까지는 찰나였다. 잠에서 깨어나자마자 하루가 지나버린 것에 아쉬워했다. 바스락거리는 보송한 이불의 감촉을 느끼며 오래도록 침대에 누워 있었다. 아침에 마주한 조천의 풍경은 평화롭다. 정원에서 흔들리는 작은 식물의 움직임이나 저 멀리 떨어진 어촌 마을의 모습을 지켜봤다. 시간이 멈췄으면 했으나 멈추는 일은 없었고, 체크아웃 시간은 애달프지만 오전 11시였다.



어제 사두었던 빵을 꺼내 따듯한 커피와 함께 아침 식사를 차렸다. 제주도에 왔으니 빵도 제주다운 빵을 먹고 싶어, 톳으로 만든 크림이 든 크로와상을 골랐다. 입맛을 돋우는 성공적인 식사 시간. 이제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겠다.



여행에서 기대하는 것이 특별할 때도 평범할 때도 있다. 감각을 자극할 새로운 경험을 기대하며 떠나는 여행이 있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험을 이루고자 떠나는 여행이 있다. 결국 어떤 여행이든 마음을 환기하고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함이겠으나 여행의 끝에 당도하기까지의 과정은 무척 다르겠다.


하루앤하루는 늘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 사람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단호히 말해 주었다. 조천이라는 동네 구석구석을 한 자리에 앉아서도 충분히 여행할 수 있고,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은 이토록 다채로울 수가 없다. 나를 게으르게 만드는 집. 하릴없이 뒹굴거림에 도리어 뿌듯함을 느끼게 만드는 집. 그리고 나를 여행하게 만드는 집. 제주도에서 만난 안식의 공간 하루앤하루는 일상에 작고 푸르른 가지를 내어 나의 하루를 숨쉬게 했다.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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