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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심을 푸는 곳 : 해우

스테이폴리오 '트래블'은 작가와 함께 폭넓은 스테이 경험을 소개하는 콘텐츠입니다.



그 이름부터
몹시 서정적인


글ㆍ사진 ㅣ 고서우



일순간 해가 비췄다 이내 숨어버린 날이었다. 이날 아침, 아직 침대에 누워 있는 내 배 위로 긴 햇살이 떨어지길래 팔을 뻗어 커튼을 젖히며, 반가운 미소를 하늘에 지어 보였다.


조천읍 대흘리에 위치한 스테이 '해우'. 이 스테이의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땐, 그 이름의 어감부터 몹시 서정적이라 여겨졌다. 그리고 그 뜻이 궁금해서 몇 줄 읽어보니, ‘근심을 푸는 곳’이라 하여, 문득 한자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왜 그 순간 그 부분에서 ‘설마’라는 생각을 했는지. 멋쩍게도 우리가 아는 ‘해우소(解憂所)’와 한자 역시 동일했다.



나는 가톨릭 신자이지만, 때때로 불교에서 파생된 어원이 참 좋기도 하다. 이유도 없이 아무 날도 아닌 날에 사찰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서까래가 비를 머금었다 내뿜는 듯한 냄새가 나는 사찰 계단을 올라가다 보면, 사찰에서 틀어주는 불교 경전을 들어볼 수 있다.


여태 일부러 듣고자 들었던 적은 없었지만, 가만히 이끼 낀 돌담에 엉덩이 좀 걸치고 앉아있으면 자연스럽게 경전이 내게 해주는 말들이 참으로 ‘맞는 소리’ 같아 좋았다. 그래서일까. 불교에서 파생된 어원들은 일상 곳곳에 위치하기에 알맞을 때가 꽤 많다. 오늘만 해도 친구에게 웃으며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으니까.



아침 날씨가 그렇게 좋더니, 스테이 ‘해우’로 가기 위해 부지런을 떨 무렵부터는 몹시 흐렸다. 이러면 안 되지만, 하늘을 흠씬 혼내주고 싶어졌었다. “아, 자연광이 없으면 안 되는데. 자연광은 최고의 재료인데. 왜 하필 오늘이냐고!” 도착해서 주섬주섬 거리면서도 친구를 쳐다보며 아쉬움만 잔뜩 토로했었다.



처음 ‘해우’의 문을 열었을 때 공간이 매우 예쁘니, 그 아쉬움은 당연히 더 짙어질 수밖에 없었다. 혹시 내일은 날씨가 좋지 않을까 기대하며 자꾸 주어진 상황을 밀어두려 했었다. 이내 “도와주는 게 없다고 못 찍으면, 그냥 그게 내 한계야.” 체념 닮은 인정을 하면서 바깥 하늘은 애초에 없는 척 외면하고 내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심통이 난 어린애처럼 툴툴거리느라 보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하기 시작하자, 들어올 때 느꼈던 포근함은 한층 배가 되어 우리 주변을 돌기 시작했다. 어디쯤 가서 서나 저 창밖에 차갑고 침침한 기운은 전혀 느껴지지 않도록 포근했다.


오히려 흐린 날 와서 찻상에 앉아 차를 내려 마시고, 자쿠지에 어깨까지 들어가 서로를 바라보면 좋을 분위기였다.



단차로 분리된 공간은 각자가 어디에서 무얼 하든 하나로 일체된 느낌을 주면서도 서로의 시간을 지장 받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그야말로 ‘따로 또 같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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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선, 자쿠지에 물을 틀어두는 것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리고 태블릿PC로 제어할 수 있게 된 커튼을 적당히 여닫아보고, 조명의 조도를 만졌다. 그 어떤 곳에서보다 편안히 공간의 분위기를 다뤄보고 있자니, 흐린 날씨를 보던 그 근심은 흐지부지 끝나갔다.



사진을 찍어보면서는 점점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결코 내가 능숙해서가 아니라, 이 자체로도 충분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아마 이런 곳은 여러 번 만나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만큼.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으니, 배꼽시계도 늦게 울었다. 사람 손길이 많이 닿지 않은 광활한 숲, 그 곁이니 역시 배달은 ‘텅’이었다.


가까운 함덕으로 나가, 적당한 밥을 먹고 다시 돌아오며 마을 어귀를 만났을 때는 ‘근방이 저렇게나 시끄러운데, 참으로 갑작스러운 고요함이다.’ 싶었다.



아까 적당히 받아놓은 자쿠지에 퐁당 들어가기 위해 스파클링 와인을 두 잔 따랐다. 내 두 손에 물이 적셔지기 전에 사진도 많이 찍어두었다. 거기서부터 자쿠지 타임이었다. 실수로 잔을 쳐서, 물속으로 몽땅 빠져버렸을 때조차 즐거웠다.



근심을 푸는 곳 ‘해우’. 도착하기도 전에 하늘을 바라보며 근심했던 시간이, 이 안에서 툭 던져진 휴지처럼 풀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나는 종종 마주 오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근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쉽게 불안해하고, 짙은 우울감에 미간을 좁힐 때가 많다. 아마 앞으로도 긴 세월을 이럴 것이다.


침대에 누우면서, 이런 내게 꼭 필요했던 ‘해우’에서의 시간이 아니었나 생각해봤다. 잠들기 전마다 생각이 상상을 그려내고, 그 그림은 주로 불안함이라 숙면하기 어려워하던 나였는데. ‘오늘 참 재밌었어.’ 하며 졸린 눈 깜빡거리다 그 무게를 못 이기는 내가 낯설었으니.



※ 글과 사진은 저작권이 있으므로 작가의 동의 없이 무단 복제 및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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