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지난주, 아버지 기일을 맞아 가족이 오빠 댁에 모였다.
올케 언니가 제사 음식을 제기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며 넋두리처럼 말했다.
"어머니는 늘 제사상에 음식을 잘 쌓아야
복이 들어온다고 하셨어.
평생 그렇게 했는데…
살아보니 그다지 복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아"라고.
옆에 있던 동생이 웃으며 물었다.
"아니, 지금이 어때서요?"
올케의 대답이 들려왔다.
"아들이 이혼하고 씨도 못 받는데
무슨 복이야?"
나는 그 말에 잠시 말을 잃었다.
너무 오래된 기준이 한 사람의 마음을
묶고 있다는 사실이 안쓰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문득,
중학생 시절 처음 만났던 올케의 모습이 떠올랐다.
연둣빛 플레어 스커트에 연노랑 티셔츠
긴 생머리와 맑은 피부,
풋풋하고 생기 있던 얼굴.
오빠랑 결혼한 뒤, 맞벌이하며 두 아이 양육만으로도 힘에 부쳤을 때, 셋이나 되는 시누이를 싫다 좋다 내색 없이 받아주던 사람이었다.
그 후로도,
시어머니와 외 며느리와의 몸서리나는 갈등을 견디며 지쳐갔던 올케의 중년과 그 이후의 삶이
영화처럼 지나갔다.
언니의 가슴속에 쌓였을 무거운 그림자가
내 가슴까지 눌렀다.
난 조심스럽게 말했다.
"난 자녀의 결혼보다, 자녀가 행복하기를 바라게 됐어,
그렇게 생각을 바꾸고 나니
아이들과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 관계가 되었어"라고.
올케가 안타깝게 여기는 그 아들,
조카의 퇴근을 기다리느라 제사 시간이 좀 늦어졌다.
오랜만에 보는 조카의 얼굴은
일상에 지친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볍고 밝았다.
상큼하다는 표현이 어울림 만큼.
어떻게 지내느냐 묻자, 조카는 말했다.
"지금이요?
아주 좋아요."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녀의 행복을 삶의 첫자리에 두는 부모는
생각보다 많지 않음을.
나 역시 오랜 세월, 그랬음을 고백했다.
자신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하며,
그걸 사랑이라고 우겼었다.
누군가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만큼만
나도 자유로울 수 있고,
누군가를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만큼만
내가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용히 인정하고 있다.
이런 고백을 가능케 한 세월에
깊이깊이 강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