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가운데 머무는 연습
지난 주말, 가까이 사는 지인과 식사와 차를 나누며
데이트를 했다.
딸이 오기로 되어 있다는 소식을 무심코 건네자
그녀가 말했다.
"은퇴하고 나면 자녀들이 찾아오는 게 큰 낙이지요?"
그 말에 나는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네 삶의 낙은 무엇이니?"라고.
"빛 가운데 있는 것"
나조차 놀라 웃음이 났다.
이런 뚱딴지같은 주제도 기꺼이 받아줄 수 있는 그녀이기에 그 낙을 숨기지 않고 내어놓을 수 있었다.
요즘 나의 큰 관심은 양자 물리가 말하는,
***모든 물질은 빛이며 에너지***라는 통찰이다.
몸 건물 의자 핸드폰… 까지 고체로 보일뿐,
각기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는 빛의 상태라는 사실에 나는 깊이 매혹되어 있다.
어느 과학자의 말처럼,
몸은 에너지를 변환하는 기계 장치'이다.
눈은 빛을 시각으로,
귀는 진동을 소리로,
코는 에너지를 향기로,
혀는 그것을 맛으로
손 끝은 촉감으로 바꾸어낸다.
그 설명을 듣는 순간,
내 온몸의 지성이 환호하며 갈채를 보내고 있었다.
문득, 양가의 두 어머니가 떠오른다.
두 분 모두 오 남매를 두어 생신날이면 20여 명이 넘는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곤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그 반짝이던 풍경도 조금씩 퇴색했다.
쪼그라진 몸과 허전한 눈빛의 어머니들을 뵐 때면
내 마음은 늘 죄책감으로 저려왔다.
내 마음 하나도 채우지 못하던 때,
부모님을 채워드리고 싶었던 아픈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자녀나 배우자, 혹은 어떤 상황을 통해서도 자기를 확인하지 않을 때,
삶은 비로소 구원처럼 열린다는 것을.
그때에야 비로소 함께 있으면서도 기대지 않은 채,
서로를 존중하고 즐거워할 수 있음을.
보이는 형상 너머에서,
무한의 기운과 하나 되는 신비를 느끼며
나는 지금의 삶을 누린다.
그리고,
온 지성이 보내는 환호를 나의 낙으로 삼는다.
이러한 나의 성품에도
조용히 갈채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