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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YTRUE Aug 13. 2017

엄지손가락

엄살인지 자랑인지 모를 말들을 듣던 저를 기억해 주세요. 당신이 말하던 그 지대위에 세워진 업적은 누군가를 깔아뭉개며 쌓아올린 것들 임을 알고 있어요. 당신이 그렇게 중언부언할 때에 저는 그 쏟아지는 언어의 홍수 속에 오도카니 서 있었어요. 당신은 우연히 얻게 된 전대에 세상 모든 것들을 주워 담았었죠. 사실 구멍 난 전대였다는 것도 모르고요.
그 시절에 나와 함께 하던 여러 개의 숫자가 있었어요. 어떤 날은 20, 어떤 날은 30, 또 어떤 날은 2, 어떤 날은 4. 숫자가 크다고 더 큰 위로가 되는 것은 아니었어요. 제일 좋았던 것은 0이었을 때니까요. 이것은 나만 아는 죄예요.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고, 제게도 그저 진부한 셈놀이였을 뿐이에요.
검은 것을 등에 들쳐매고 바람을 가르며 가던 때의 감정에 대해 말해주세요. 바람에 흔들리던 나무의 존재들이 당신에게 인사를 할 때, 그것들에 철저히 등지던 그 마음을. 바람이 당신 앞에 길게 손을 뻗어도 보지 못했던 그 시절에 대하여.
엄지손가락의 안쪽 면으로 나머지 세 손가락의 겉면을 쓸어내리던 내 버릇을 기억해 줄래요? 두 개의 새끼손가락은 어디 갔었죠? 당신과의 약속이 지켜지지 못해 어딘가로 숨었던 걸까요?
초록도 빨강도, 주황도 파랑도 모두가 의미 없는 것들이라고 말하던 일들을 사과하세요. 지금 당신 인생엔 그 색들이 깊게 자리하고 있잖아요. 창졸간에 제가 당신이 혐오스러워하던 그 찬란한 색을 가지고 당신 곁에 방문해도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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