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남들이 나를 보는 눈이 정확하지 않듯이 내가 보는 남들 또한 정확한 모습이 아니다. 한쪽 말만 듣고 사건의 전말을 판단할 수 없지만, 때로는 양쪽의 말을 다 듣고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이해라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다. 오롯이 같은 상황을 겪지 못했음에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가식이다.
2. 기억 속에서도 온전한 것과 불온전한 것, 그리고 철저히 왜곡되어 버리는 것들. 모두 내 탓이다.
신뢰는 신뢰로 더욱 곧고 단단해지며, 관계는 그 신뢰 이전에 불순한 것들로 인해 무너지기도 한다. 내가 알고 있던 신뢰란 보기 좋고 기분 좋은 허울이었을까? 저마다의 관념과 신념을 통해 본인에게 닥친 상황을 받아들인다지만, 함부로란 생각을 함부로 하지 말 것. 함부로란 말을 함부로 하지 말 것. 그리고 절대 타인에게 함부로 대하거나 힐난하지 말 것.
3. 정답과 본질을 온전히 꿰뚫고 있는 이가 어디 있겠는가! 누구 말마따나 우린 나쁨과 좋음 경계에서 살아간다. 그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다 보면 때로는 좋은 쪽으로, 때로는 나쁜 쪽으로 넘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 과정으로 인해 인간과의 관계를 지독히 경멸하면서도 한편으론 수많은 사람들에게 손을 뻗고 있는 모순적인 나를 발견하게 된다. (중간이란 정말 없는 걸까?)
4. 관계란 너무 많은 감정 소모를 필요로 하는 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맞춰줬듯이 상대 또한 나에게 맞춰줬을 수 있단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때에 많은 괴로움이 나를 덮쳐오지만 그간 뒤돌아보지 못했던 나의 문제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내 세계가 넓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성숙해 나가는 거다. 그러니 그 과정을 두려워하지 말 것. 나를 냉정하게 바라볼 것. 그렇게 객관적으로 내 문제점들을 발견해 반추하며 조금씩 고쳐나가 나를 좀 더 나은 사람으로 다듬어 갈 것.
5. 타인의 단점으로 자위하며 살아가는 것은 본인의 단점을 바라보는 시선을 합리화시켜 자기 내면의 발전을 가로막는 길이 되기도 한다. (이유엔 이유가 있는 것이라지만.)
하나, 이유에 이유가 정확히 뒷받침되지 않는 것만큼 합리화적인 일이 어디 있을까. 소통의 적은 자기 열등감이다. 자격지심으로 점철되어지는 것은 소통의 폐단에서의 원흉이다. 타인을 쉽게, 또는 제멋대로 단정하고 판단하길 좋아하는 습관은 자기성찰에 있어 서툴다는 방증이다.
자의식은 안으로 향한 냉철한 의식이며 곧잘 비활동성을 가져오고, 병적으로 격앙하면 고독감과 결부된다.
자의식 과잉은 처음에는 정신적, 인격적인 약함으로 인해서 오직 도의적으로 추구된 것이었으나 인간을 그처럼 약하게 하는 사회적 조건에의 색인으로서의 의식에서 사실적, 비판적으로 추구된 반면 인간 내면의 복잡한 재미로 도리어 향락적이고 감상적인 추구의 대상으로도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