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를 너무나 사랑하는 엄마와 아들, 그 관계에 새로 등장한 앞집 여자 카일라. 이들은 모두 불안정한 사람들이다. 각자 다른 형태의 결핍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은 서로를 통해 용기를 얻기도 하고, 변화하기도 한다. 불안정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생각으로, 나 또한 불안정한 사람이라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다 보니 조금은 힘들었다.
스티브의 사랑은 너무나 아픈 것이었다. 그렇기에 사랑하기 위해, 사랑받기 위해 시작된 것들이 아픔으로 다가오고 상처로 다가오게 됐던 거다. 아픈 애한테 가장 나쁜 건 부인 또는 아이의 지나친 자기 확신이라는 선생님의 말처럼, 사랑과 구원은 별개인 것이다.
세 사람이 행복을 느끼게 되고 화면의 비율이 전환될 때의 시원함은 잠시, 그들은 다시 답답한 정사각형의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 그러나 그 정사각형의 프레임 안에 갇힌 삶이라 해도 불행한 삶이라 단정지을 순 없었다.
자신을 향한 엄마의 사랑을 확신하지 못하는 스티브가, 그럼에도 자신은 엄마를 위해 산다고 말했던 스티브가 자살 시도를 한 이유는 뭘까. 사랑에 대해 불확신함을 갖고 있고, 사랑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을까? 디안이 말하는 세상의 섭리처럼 스티브 또한 엄마를 덜 사랑하게 될까? 이 해답에 대해선 그 무엇도 가늠되지 않는다. 그저 서로를 향한 사랑 속에서 디안이 스티브로 인해 엄마로서 더욱 성장하게 된 것처럼 스티브 또한 엄마를 통해 성장하게 되었음을 기뻐하는 수밖에.
희망이 말라가는 세상일지라도 희망을 품고 살아가는 이들이 있기에 세상은 변화할 수 있다. 그런 세상 속에서 절망해봤자 좋을 게 없기에 희망을 갖고 살아가는 디안이 우리와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살아가며 하는 모든 일들은 더 사랑하고 사랑받기 위함이라고 생각하기에 늘 사랑하고, 또 사랑하며 하루하루를 이겨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