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떠한 근거도 없이 고집만을 세워 우겨대던 한 남자의 인생 가운데에는 어떤 행복이 있었을까. 한때는 찬란하게 비약했던 일들이 스러져 버리고 앓던 병에 또 다른 병들이 가중되던 날, 그는 누구보다 호쾌하게 웃어댔다. 온통 흰 천으로 뒤덮인 침대에 앉아 큰 창을 가리던 블라인드를 조심스레, 꽤 오랫동안 올리고 나서야 그는 눈물을 보였다. 누군가 본인의 두 손을 잡아주기만 하면 괜찮아질 거라고 했다. 그의 앞에 앉은 두 여자가 그의 손을 하나씩 나누어 잡았다. 여섯 개의 손은 그렇게 서로를 위로했다. 아무런 말도 없이 한참을 그대로 있던 남자는 두 손을 베개 밑으로 집어넣어 더듬거리고는 노란 봉투 하나를 꺼내들었다. 지난 날의 자신의 방관에 대한 값이라고 했다. 누군가에게 전해져야만 하는 자신의 후회가 담긴 것이라고.
(찌는듯한 무더위에 모두가 얼마의 간격을 유지한 채 보내던 어느 여름 날, 다리 밑을 지나던 그는 기억에 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목격했다. 검은 얼굴에 코가 번져 딱지가 되어 앉은 아이의 얼굴, 그 아이의 뭉툭한 손가락 끝에 간신히 쥐고 있는 만 원짜리 하나. 그 구겨진 만 원짜리 하나를 빼앗으려 아이에게 달려든 네 명의 소년들. 땀으로 범벅된 아이의 목덜미, 팔과 다리에 신발 자국들이 번진 채로 찍히기 시작했다. 소년들의 어깨너머로 나와 눈이 마주친 아이는 돈을 쥔 손이 뒤로 꺾인 채로 그저 멍하니 쳐다볼 뿐이었다. 마지막 안간힘을 짜내듯 아이는 오른손을 한 아이의 관자놀이에 날렸다. 아이들의 더 높은 강도의 발길질에 맥없이 쓰러진 아이는 이내 그들에게 만 원을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오른팔을 가슴께로 끌어안아 눈물을 흘리는 아이를 두고, 나는 그저 망연히 서서 무엇도 하지 못했다. 손목으로 눈물을 훔친 아이는 금세 제 갈 길을 갔다. 담배를 사러 들른 슈퍼에서 만 원짜리 지폐를 동전으로 바꾸고 있는 아이들을 보았다. 정확히 2500원씩 나누어야 한다는 한 아이의 말소리가 들렸다. 나는 슈퍼 밖으로 나오며 담배 한 개비를 물었다. 그자리에 서서 아이들이 게임하는 것을 지켜보다 보니 연신 네 개비를 피웠기에 속이 울렁이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금방 돈을 다 쓴 아이들은 바닥에 뒹굴던 나뭇가지로 게임기 버튼을 툭툭 누르기도 하고, 게임기 위에 올라앉아 웃기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아이가 그곳에서 엄마를 만나 집으로 갔고, 나머지 세 녀석들도 흩어졌다. 텅 빈 거리 위에서 힘없이 고개를 떨구니 발 앞에 네 개의 담배꽁초가 있었다. 나를 위해 제 몸을 태워 자신들의 할 일을 다한 채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것을 보자 괜히 눈물이 쏟아졌다. 쭈그려 앉아 꽁초들을 손바닥 위에 올렸다. 지독하게도 태워졌구나 생각하며 주머니에 넣었다.
집으로 와 재킷을 받아주는 아내에게 꽁초를 왜 바로 버리지 않았느냐고 쓴소리를 들었다. 그날 나는 잠이 들 때까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잠이 들었을 때, 오직 한 가지 괴로움이 꿈에서까지 나를 쫓아다녔다. 멀끔한 모습으로 꿈에 찾아온 아이가 나에게 물었다. “절 도와줬더라면, 얼마만큼의 감정들이 달라졌을까요? 아주 조금의 일들이라도 달라질 수 있었을까요? 괜찮아요, 실은 그 돈 제 것 아니었어요. 훔친 돈이었어요. 그러니 괜찮아요.” 나는 꿈에서도 벙어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