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끄러미, 개미 관찰하기
개미들의 행보를 가만히 들여다본 적이 있는가?
태국 중남부 지역의 반끄릇이라는 어촌마을에 나의 숙소가 있다.
나는 문득, 아침 햇살이 테이블 위를 비추던 날, 바닥으로 이어지는 검은 점의 행렬을 따라 고개를 숙였다.
그 작디작은 생명체들은 경이로웠다. 방향을 바꾸지 않고, 멈추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목적지를 향해 꾸준히 움직였다.
흔히 보는 풍경이지만, 그날따라 유난히 낯설고 신비롭게 느껴졌다.
어릴 적, 성경 잠언서에서 이런 구절을 본 적이 있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그 부지런함을 배우라.”
솔직히 고백하건대, 그 구절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스스로 게으름에 젖어 있던 내 천성을 비추는 듯하여 불편했고,
미물보다 못한 인간이라는 자각이 어딘가 모르게 자존심을 건드렸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내 삶도 굽이굽이 변곡점을 지나며 그 말의 진의가 조금은 달리 다가왔다.
개미는 참 부지런하다. 그것도 집단적으로, 목적지향적으로 움직인다.
부스러기 하나, 벌레의 사체 하나, 인간이 무심코 흘린 흔적 하나에도 그들은 번개처럼 감지하고 행렬을 이룬다.
작은 몸집으로 따지자면, 수십 리는 족히 넘는 길을 오고 가는 셈이다.
그 길 위에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질서가 잡히고, 협업이 이뤄진다.
그들의 집단적인 움직임은 때론 이집트를 탈출하던 이스라엘 민족의 ‘엑소더스’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러나 인간은 그 질서를 쉽게 뒤엎는다.
빗자루로 살짝 쓸어버리기만 해도 개미 행렬은 혼비백산 흩어지고, 당황하며, 방향을 잃는다.
그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처음엔 우습다가도, 이내 측은해진다.
마치 우리의 삶처럼 보이기도 해서다.
누군가의 한마디 말, 하나의 행동에 삶의 방향을 잃고 흔들리는 우리의 나약함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실험을 하나 해봤다.
커피를 마시고 난 티스푼을 그대로 쟁반 위에 올려놓은 것이다.
이전에 개미가 들끓었던 경험이 있어, 이번엔 내 입속에 넣어 침으로 한번 적셔두었다.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그 티스푼 주변엔 개미 한 마리 얼씬하지 않았다.
의아했다. 혹시 우연일까 싶어, 과자 부스러기에 침을 묻혀 보았다.
역시나, 고요했다.
몇 번의 반복 실험 끝에 알게 된 사실. 사람의 침엔 개미가 본능적으로 피하는 ‘무언가’가 들어 있다.
그것은 독이었다. 개미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는, 인간의 입에서 나오는 독...
그 순간, 가슴 한 켠이 싸해졌다.
말이라는 것이 문득 떠올랐다.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뱉는 한 마디, 그 안에 독이 섞여 있지는 않았을까.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히고,
누군가의 삶의 방향을 흐트러뜨리고, 때로는 의도치 않게 사람의 마음을 멍들게 만드는,
그 말의 침묻은 흔적.
입이란, 삶을 나누는 통로이기도 하지만,
방심하면 독이 번져 나오는 통로이기도 하다.
개미는 그것을 알고, 다가오지 않는다.
그 작은 생명체는, 우리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을 감지한다.
어쩌면 개미는 침묵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개미에게 다가가는 것이
단지 그들의 부지런함을 배우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안에 숨어 있는 독을 되돌아보게 하는 일이 아닐까.
말보다 진심이 앞서야 하고,
소리보다 침묵이 따뜻해야 하며,
침묻은 독 대신 향기 나는 언어를 나누어야 우리는 진짜 사람다운 존재로 살아갈 수 있다.
개미는 그저 작고, 보잘 것 없으며, 때로는 불청객으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오늘 나에게 가장 무거운 질문을 건넨 스승이었다.
작고 묵묵한 존재 앞에서, 나는 입을 다문다.
그리고 오래도록 되새긴다.
내 말 속에는 무엇이 스며 있었을까.<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