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즈 이야기

부패와 숙성은 다르다

by Surelee 이정곤


귀한 친구가 영광을 찾았다.
그래서였을까. 저녁 식탁에 치즈의 신(神)이 강림한 듯, 진수성찬은 아니어도 모두의 입이 즐거운 시간이었다.
친구가 직접 부쳐준 감자전에 치즈를 얹어 먹으니, 그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치즈와의 만남이란, 바로 이런 걸까 싶었다.
사실 나는 치즈와 그리 친하지 않다. 미국에 살던 시절, 치즈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라곤 피자 위에 녹아 있던 것이 전부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뉴저지에서 혼자 이틀 동안 운전하며 일리노이 주의 작은 도시, 샴페인으로 향했다. 친구가 살던 집으로 가는 길에 치즈 공장이 밀집해 있었는데, 발냄새처럼 코를 찌르는 지독한 냄새가 가득했다. 머리가 아플 정도였다.
그 길에선 축지법이라도 써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 기억이 워낙 강렬했기에, 나는 아직도 치즈 앞에서 마음을 넓게 열지 못한다.
내가 이런 비틀어진 기억을 꺼내는 이유는 김치와 치즈에 대한 하나의 통찰 때문이다.
발효식품 가운데 으뜸을 꼽자면, 서양에선 치즈, 우리에겐 김치가 아닐까.
김치와 치즈.
세상에는 시간이 지나면 썩는 것이 있고, 시간이 지나야 맛을 내는 것이 있다.
부패와 숙성은 엄연히 다르다.
치즈와 김치는 가장 대표적인 '숙성의 결과'다.
우유는 고요한 젖빛의 액체였고,
배추는 흙에서 막 건져 올린 풋내 나는 식물이었다.
하지만 둘은, 시간 속에서 자신을 견뎌내며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다.
치즈가 되었고, 김치가 되었다.
그 둘은 ‘발효’라는 길을 걸었다.
그 길은 결코 빠르지 않았고, 다정하지도 않았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 소금과 미생물, 그리고 무엇보다 기다림과 돌봄이 없었다면
그들은 그냥 썩고 말았을 것이다.
치즈와 김치는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나는 썩지 않기 위해 오랜 시간을 견뎠다.”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 나를 완전히 바꾸었다.”
‘익는다’는 것은 단지 시간이 흐른다는 뜻이 아니다.
그 시간 속에서 나를 스며들게 하고, 버텨내며, 받아들이는 일이다.
시간을 통과했다고 모두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방치된 것은 썩고, 돌보는 것은 익는다.
그것이 부패와 숙성의 차이다.
발효는 인내다.
그 안엔 불편함과 냄새, 변형과 기다림이 있다.
하지만 쉽게 잊고 있는 게 있다.
진짜 맛은 시간이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결국 태도다.
익는다는 것은 정체성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나를 더 ‘나답게’ 숙성시키는 일이다.
치즈는 더 이상 우유가 아니지만, 우유보다 더 진한 우유이고,
김치는 더 이상 생배추가 아니지만, 생배추보다 더 살아 있는 배추다.
정체성은 가만히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견디고 변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데서 생겨난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지 않은가.
삶이라는 저장고 속에서
누군가는 썩고, 누군가는 익는다.
냄새나는 상처 속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결국 누군가는 스스로를 발효시켜 향기를 내는 존재가 된다.
그러니, 익는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익는다는 건, 내가 나로 깊어지는 일이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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