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마음의 집에서

재심의 아파트 연가

by Surelee 이정곤




재심의 아파트 연가

재심이 새집으로 이사하던 날이었다. 현희와 나는 작은 손길이라도 보태겠다며 영광읍으로 향했다. 읍내에서 가장 높은 26층 아파트, 그녀의 집은 꼭대기층에 가까운 층이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풍경이 시선을 압도했다. 거실과 방의 창가 너머로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서 있고, 그 사이로 풍력발전소의 날개가 느릿하게 돌고 있었다. 멀리 서해가 끝없이 펼쳐지며 바다와 하늘은 유리처럼 반짝이는 경계에서 맞닿아 있었다. 저 너머로 섬들이 그림처럼 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긴 저녁이면 노을이 정말 예쁠 거야.”
현희가 창을 열며 말했다. 순간 햇살과 바람이 거실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아직 가구가 다 들어오지 않은 빈 공간은 고요했지만, 바람과 빛은 그 집의 첫 손님처럼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었다.

햇살이 벽에 부딪혀 집의 첫 숨을 내쉬었다.


마음을 집에 비유한다면, 그 집은 세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생각은 문이 되고, 감정은 방이 되며, 의지는 통로가 된다.이 단순한 비유 속에는 마음의 구조와 삶의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이 숨어 있다.

생각은 문과 같다. 문은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열려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바람과 빛을 받아들이고, 닫혀 있을 때는 외부의 소음을 차단하며 고요를 지킨다.
문은 단순한 출입구가 아니다. 그것은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이자, 스스로를 지키는 경계다. 열려 있을 때, 우리는 세상의 빛과 바람을 받아들이고, 닫혀 있을 때는 소음을 차단하며 고요를 지킨다.

현관문이 열리는 순간, 이 집은 바깥과 자연스레 이어졌다. 나는 그 문을 보며 내 마음속의 ‘생각’을 떠올렸다. 문을 열면 새로운 바람이 들어오고, 닫으면 고요가 머문다. 열리는 방식에 따라 집이 달라지고, 여닫는 습관에 따라 삶도 달라진다.
나는 종종 내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타인의 말에 상처받지 않으려, 세상의 소음에 휘청이지 않으려는 방어였다. 하지만 닫힌 문은 나를 지켜주는 동시에, 나를 고립시키기도 했다.

닫힌 문은 나를 지켜주지만, 동시에 나를 가둔다


감정은 집 안의 방과 같다. 어떤 방은 햇살이 가득 들어와 따뜻하고, 어떤 방은 오랫동안 닫혀 눅눅한 어둠이 스며 있다.
재심의 집은 세 개의 방이 있었다. 커튼을 올리면 눈부실 만큼 환히 밝아지는 방, 햇살이 오래 머무는 따뜻한 방, 그리고 옷장과 물품이 들어가 다소 그늘진 방. 나는 그 방들을 바라보며 내 마음속 방들을 떠올렸다.
사람의 마음에도 기쁨의 방, 슬픔의 방, 그리움의 방이 있다. 어떤 방은 환히 열려 있어 누구나 들어올 수 있고, 어떤 방은 오랫동안 닫혀 습기와 그림자가 고인다.

마음에도 햇살이 오래 머무는 방이 필요하다

우리는 가까운 이를 그 방으로 초대한다. 그때 내 감정의 풍경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내 감정의 방은 누군가 편히 쉬어갈 수 있을 만큼 따뜻한가, 아니면 오래 닫혀 있어 숨 막히는가.


의지는 집의 통로와 같다. 문에서 방으로, 방에서 또 다른 방으로 이어주는 길이 없다면 집은 단절된 공간들의 집합에 불과하다. 통로가 있어야 집 전체가 하나로 연결되고, 바람이 흐르며, 온기가 퍼진다.
이사 내내 우리는 거실에서 방으로, 부엌에서 다시 거실로 끊임없이 오갔다. 통로가 없다면 집은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 단순한 사실 하나가 의지의 의미를 새삼 일깨웠다.
의지는 마음의 통로다. 문과 방을 이어주지 않는다면 집은 단절된 조각일 뿐이다. 의지가 닫히면 생각은 생각으로만 남고, 감정은 감정으로만 고립된다. 그러나 의지가 열리면, 생각은 행동으로, 감정은 삶으로 이어진다.

삶은 결국 통로 위에서 흐른다


재심의 집은 가구가 들어오고, 벽에는 그림이 걸리고, 커튼도 달려 있었지만 여전히 미완의 느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미완의 풍경은 오히려 설렘을 주었다. 집은 살아가며 채워지고, 고쳐지고, 새로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음의 집도 그렇다. 생각의 문은 열려 있는지, 감정의 방은 환히 밝은지, 의지의 통로는 막히지 않았는지. 그 모든 것을 살피고 돌보는 일이 곧 살아가는 일이다.
집은 지붕과 벽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그 안에서 오가는 호흡과 나눔이 집을 집답게 만든다. 마음도 마찬가지다. 어떤 문을 열고, 어떤 방을 밝히며, 어떤 통로를 잇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품격이 드러난다.

집은 곧 마음, 마음은 곧 집.

이사 도우미로 함께한 하루가 내겐 뜻밖의 철학 수업이 되었다. 창 너머로 펼쳐진 바다처럼, 마음의 집도 한없이 열릴 수 있음을 배웠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오래 닫혀 있던 방의 창문을 열고, 막힌 통로를 터서, 내 마음의 집에 노을빛이 머물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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