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서답의 촉을 읽다
그가 물었다,
“해?”
그녀가 답했다,
“해 뜨려면 아직 멀었어…”
그의 입술에서 흘러나온 이 짧은 물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조심스럽게 길어 올린 고백이자, 서로의 세계를 이어주기를 바라는 다리였다. 한 글자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는 사랑의 떨림과 인간 존재의 고독이 함께 실려 있었다.
그녀의 대답은 시간과 하늘의 질서를 향해 있었다. 그에게 해는 사랑의 동사였으나, 그녀에게 해는 우주를 가르는 태양이었다. 하나의 언어가 두 갈래로 갈라지며,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의 언덕에 서게 된 것이다.
이렇게 다른 길을 걸어도 둘 다 ‘해’라는 표지판 아래 있었으니, 참으로 신비롭지 않은가.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어긋남이야말로 연애의 재미다.
늘 “사랑해”만 주고받으면 얼마나 심심하겠는가.
가끔은 “해?”라는 질문에 “해 뜨려면 멀었어” 같은 동문서답이 나와야, 둘 사이에 별것 아닌 웃음이 꽃핀다.
그날 밤, 남자는 괜히 심통을 부렸고, 여자는 괜히 장난을 더했다.
하지만 둘 다 속으로는 웃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사랑은 거창한 말보다,
이런 소소한 어긋남이 쌓여서 더 단단해지는 게 아닐까.
우리는 같은 언어를 쓰지만, 결코 같은 뜻만을 공유하지 않는다. 인간은 언제나 언어의 다층적 울림 속에서 살아가며, 그 틈새에서 갈등하고 또 성장한다.
사랑이란, 결국 이 불일치 속에서 성숙한다. 만약 모든 말이 완벽히 통한다면, 기다림도, 오해도, 이해의 기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사랑이 빛을 얻는 순간은 언제나 어긋남 이후다. 어긋남은 서로를 단련하고, 그 틈을 메우려는 시간 속에서 더 큰 신뢰가 태어난다.
아직 떠오르지 않은 해는 단순한 자연의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서로에게 다가가기까지 견뎌야 하는 어둠의 은유다. 그 어둠 속에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더듬으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떠오를 때, 우리는 단순히 빛을 보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자신을 견디며 타인의 세계를 배운다.
그날 밤, 그의 물음과 그녀의 대답은 빗나갔지만, 그 빗나감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같은 단어 속에 다른 하늘을 본 두 사람은, 어쩌면 이미 더 큰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결국, 서로 다른 '해'를 바라보면서도 같은 빛을 기다리는 일일 테니까.
어쨌든 해는 뜬다.
사랑도 그렇다.
조금 엇나가다 보면, 어느새 두 사람 얼굴에도 환한 해가 뜨게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