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행복 사이에서
내 집에 사는 파킨슨씨는 질투가 많다.
내 오랜 친구였던 웃음, 빠름, 여유, 인내심, 순발력, 그리고 쾌감까지… 그에겐 모두가 질투의 대상이다.
그의 질투를 무시할 수가 없다. 사실은 내겐 그럴 만한 힘도 없다.
그중에서도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파킨슨씨의 보좌역 역할을 하는 놈이다. 그의 이름은 ‘경직’이다.
몸이 굳고 반응이 느려지면, 예전처럼 쉽게 움직이거나 느끼는 게 어렵다.
익숙했던 감정조차 둔해지고, 예전처럼 쾌감도 선명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사실 쾌감은 단순한 기분 좋은 감각을 넘어서, 감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기분 좋은 날의 커피 한 잔은 향긋하고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우울한 날의 커피는 아무 맛도 감정도 없이 넘겨진다.
운동 후의 개운함, 감동적인 음악, 맛있는 음식, 사랑하는 사람의 포옹.
이런 것들은 우리 감정을 조금씩 바꿔주고, 뇌에서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행복 호르몬’을 분비시킨다.
하지만 반대도 있다. 감정 상태가 쾌감을 받아들이는 능력을 좌우하기도 한다.
같은 경험이라도 기분이 좋을 땐 감동이 되지만, 마음이 지쳐 있을 땐 아무 느낌도 없을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자주 반복되는 쾌감은 점점 익숙해지고, 예전만큼의 감정을 주지 못한다.
처음엔 설렘이었던 쇼핑도, 나중엔 허무함만 남는 것처럼.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 묻게 된다.
쾌감은 얼마나 오래 남을까?
진짜로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쾌감일까?
성적 오르가슴의 순간들, 기대 밖의 좋은 소식, 큰 웃음 같은 것들.
이런 건 확실히 강렬하다. 온몸이 반응하고, 뇌는 폭죽처럼 터진다.
하지만 그런 순간은 너무 짧다.
즐거운 만큼 빨리 사라진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따뜻한 포옹, 오래 준비한 일의 성공, 누군가에게 친절을 베풀고 난 뒤의 여운 같은 행동 인자들...
이런 경험들은 자극적이지 않지만, 오래 기억에 남고 마음을 깊이 채운다.
강렬한 쾌감은 본능과 생존을 위한 것이고,
지속되는 쾌감은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우리는 매일 선택한다.
짧고 강한 기쁨을 좇을지,
아니면 오래가는 따뜻함을 추구할지.
쾌락의 철학은 단순한 ‘기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삶을 경험할 것인가에 대한, 그리고 어떤 감정의 깊이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한 결정이다.
우리는 빠르게 오는 쾌감에 중독되기도 하고,
느리게 오는 쾌감을 간과하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 오래 가는 쾌감은,
바로 의미 속에 숨어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어떤 쾌감을 추구할지를 묻는 일이다.
그리고 그 질문 앞에서 우리는 오늘도 선택한다.
짧은 불꽃이 될 것인가,
아니면 오래 가는 불빛이 될 것인가.<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