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WAY2GO 영광

막고 품기, 그리고 마주하기

마음속 물고기 잡는 법

by Surelee 이정곤

나는 하천길을 걸을 때면 어릴 적 추억 하나에 자주 잠기곤 한다. '막고 품는’ 방식으로 물고기를 잡던 기억 때문이다.
작은 돌과 나뭇가지로 물길을 막고, 고인 물을 퍼내면, 바닥에 남겨진 물고기들이 손에 잡히곤 했다.
한참을 기다렸다가 마침내 드러나는 생명의 움직임—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하다.
‘막고 품기’는 단순한 어획기술이 아니다.
흐름을 잠시 멈추고, 고여 있는 것을 인내심 있게 마주한 끝에 비로소 본질에 닿는 삶의 방식이다.
이 오래된 '물고기 잡는 법'은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감정, 관계, 자아 성찰의 태도와도 닮아 있다.

삶은 늘 흐른다.
하루는 다음 날로, 감정은 또 다른 감정으로, 관계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물처럼 흘러간다.
우리는 그 흐름 속에서 무언가를 잡으려 애쓴다.
그러나 삶의 진실은 깊은 물속 물고기처럼, 쉽게 손에 잡히지 않는다.
피하고 숨고, 스쳐 지나가고,
잡으려 들수록 더 깊이 빠져나간다.
이럴 때 필요한 건 ‘막고, 품는’ 태도다.
먼저, 흐름을 잠시 멈춘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정, 떠다니는 생각, 습관처럼 반복되는 걱정들,
그 모든 입구를 살짝 닫아본다.
그리고 그 안에 고인 마음을 바라본다.
흐릿한 기억,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 말로 다 못한 속내들을 천천히 퍼내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결코 편하지 않다.
고인 물처럼 마음도 처음엔 탁하다.
하지만 퍼내는 시간이 곧 진실을 만나는 시간이다.

예전에 나는 아내와의 갈등으로 마음이 불편했던 적이 있다.
오랜 미국 이민생활을 계속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고, 아내는 미국에서의 삶을 이어가길 원했다.
그 차이는 점점 감정의 골로 번졌고, 대화는 자주 갈등으로 마무리되곤 했다.

그때 나는 문제를 서둘러 해결하려 했다.
말로 풀어보려 했지만, 오히려 내 말은 감정을 더 자극했고, 서로의 마음은 더 멀어졌다.
지금 돌아보면, 그보다 먼저 했어야 할 일은 내 마음의 흐름을 잠시 멈추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 고인 감정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왜 서운했는지, 왜 말이 엇갈렸는지, 내 안의 상처와 기대를 곱씹으며 스스로를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속 물을 천천히 퍼냈더라면, 그 바닥에서 아내에 대한 오랜 신뢰와 애정을 발견해 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마주하고 나서야, 우리는 다시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더 깊이, 더 따뜻하게.
‘막고 품다’는 회피가 아니다.
멈춤은 회복을 위한 준비이고,
품는다는 건 포기하지 않는 태도다.
조급한 해결보다, 묵묵히 가라앉히고 기다리는 인내— 그 안에서 비로소 삶은 깊어진다.
두려움, 상처, 미해결의 감정은 대개 물 위로 떠오르지 않는다.
깊은 마음속에 가라앉아 있다.
그것들을 만나려면 흐름을 멈추고, 내면을 품어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삶이라는 하천을 건너고 있다.
때로는 맑고 잔잔하지만, 때로는 거세고 탁하다.
그 속에서 진짜 ‘내 삶의 물고기’를 만나고 싶다면,
무턱대고 손을 뻗는 대신,
잠시 흐름을 막고, 마음을 고요히 품어보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
바닥에서 반짝이며 살아 움직이는 무언가가 우리 손에, 마음에, 닿게 될 것이다.
그것이 회복이든, 용서든, 혹은 사랑이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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