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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작가 윤 Oct 04. 2024

선택 못 하거나, 안 하거나, 미루거나.

선물작가의 여덟번 째 편지 

날이 따스한 봄날입니다.

지난 번 갑자기 쓴 편지는 뒤로 하고, 지금은 서울로 가는 고속도로 위를 달리고 있어요.

열 살 터울 동생이 지난 토요일 결혼했습니다. 삼 남매 중에, 한 명이라도 드디어 갔습니다! 아빠가 계셨다면, 막내를 축하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 결혼하지 않은 저에 대한 걱정이 더 커지셨을 텐데…. 안 계시니 모르겠어요. 엄마는 제가 자유로운 것도 좋다시면서도, 한편으로는 역시 제가 혼자인 게 좋으면서 싫으신 모양이에요.

여하튼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다 결혼했네요. 외갓집은 엄마가 구 남매 중 여덟 번 째라 외사촌들도 전부 다 결혼하고, 지적장애인 동생과 저만 남았어요. 친가는 아빠가 칠 남매 중 첫째이신데도 넷 정도만 남았네요. 친구들도 그래요. 거의 다 가정을 이루고 있죠.


나무님이 얘기했듯 서로를 기르면서, 그래도 어쩌다 된 어른 역할을 아이들에게 하면서 말이에요.

막내 결혼을 보면서 ‘결혼’을 다시 생각합니다. 한 사람과 다른 한 사람이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시간이 필요한지요. 어쩌면 가정을 이룬 많은 사람이 매일을 더 치열하게 성숙해가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사랑으로 나와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기다려주고, 아껴주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가는 날들이 결혼 생활이 아닐까, 그저 상상합니다.


인간은 생존을 위한 두려움과 본능이 어딘가 내재되어 있는데, 그것을 누르고 나를 더 확장해 좀 더 두툼한 나, 그러니까 우리 가족을 지키고 사랑할 힘을 내는 건 참 대단하다고 느껴요. 우리 부모님도, 나무님의 부모님도, 세상의 거의 모든 부모가 그런 결심과 실천을 통해 가족을 꾸려가는 건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 제가 생각하는 아빠들은 참 대단해요. 부모님도 각각 남자이고, 여자이고픈 마음이 있고 각자의 바람과 욕망이 있으실 텐데, 가족을 더 행복하게 하려고 나의 어떤 부분을 포기하고, 양보하면서 균형을 이루려고 애쓰잖아요.


하지만, 동생의 결혼은 제가 더 외롭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어요. 전 그 대단한 길을 가기에 작가가 되고픈 욕망이 크거든요.

글은 혼자 있을 때 써요. 전 누군가와 식사할 때 휴대폰을 사용하지 않는 건 물론이고 상대에게 집중하는 편이에요. 요즘엔 제가 그렇게 해도 휴대폰 보는 친구나 MZ 세대들이 있지만, 그래도 전 사람과 사람이 함께 있을 땐 그 ‘함께’를 충분히 느끼고, 상대에게 집중하려 해요. 하지만, 글은 여러 색의 실타래를 풀다가 하나를 잡고 쓰는 거라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그런데 저는 글 쓰는 건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 이걸 하려고 다른 사람의 연락이나 청을 거절하는 게 이기적이라고 느껴요. 나무님의 초반 호통이 아직 듣지 않나봐요. 그래서 글 쓰는 걸 나중으로 미루게 되고, 외로워질 시간이 많지 않다 보니 글을 많이 못 쓰는 게 속상해요. 카카오톡을 삼 년쯤 안 쓸 만큼 애썼는데도 잘 안 되네요. 이기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거요.


착하고자 하는 노력을 조금이라도 내려놓으려 노력했는데, 잘 안 돼요. 제가 착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선하게 사는 게 더 좋아서요. 너무 당연한 표현이지만, 사실 깊이 파보면 제가 편하고 좋아서예요. 적당한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보다 제가 편하고 좋아서, 마음이 더 채워지고 삶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아 매 순간 선택하는 것 같더라고요. 착하고 선한 방향이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거라 생각하면서요.

그래서 나무님 얘기 대로 제 자신도 사랑하는 방향으로, 저에게도 선하려고 생각을 바꿨어요. 썩 잘 되진 않지만요. 여전히 저는 많은 시간 외롭고 싶어요. 더 노력해야겠어요. 


그러면서도 천성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해요. 종종 친한 사람들이 말해주길, 네 주위에 사람이 모여들어, 라고 하거든요. 참 고마운 일인데, 제가 작가로서 제 관리를 못 하는 것 같아요.

이중적이지만, 사람들과 있으면 혼자 있고 싶고 홀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져요. 누구나 그런 면이 있으니, 주기로 말하자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사람과 어울리고 싶어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 한 달에 한 번쯤? 대신 제가 배우거나 깊은 관계를 맺지 않는 취미 활동 같은 걸 일주일에 두세 번쯤 하면 적당할 것 같아요. 굉장히 구체적이죠? 꽤 오랫동안 중요하게 변하고 싶은 면이었거든요.

하지만 구체적으로 바라고도 제대로 실천한 적은 거의 없던 것 같아요. 지금은 청량리에서 영월로 가는 기차 안이랍니다. 입석까지 꽉 찼던 기차가 점점 빈자리가 생기더니 원주를 지나자 많아졌어요. 사실 양평에서 담배 냄새와 오래 안 씻은 냄새가 나는 분이 옆에 타서 주무시기 시작했어요. 다른 빈자리에 가서 앉아도 될 텐데, 저는 정해진 자리에 앉아 착하게 규칙을 지키고 있어요. 


뭐랄까, 제 머리나 가슴 어딘가에 ‘도덕에 예민한 녀석’이 앉아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편지는 두 장 이내로 쓰자는 처음 약속 때문에 띄었던 줄을 합치거나, 문장을 지워 딱  두 장에 맞춰서 보내는 것도 그 녀석이 해요. 그래 놓고 갑자기 답장을 기다리지 못하고 먼저 편지 쓰는 녀석도 있어요. 규칙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녀석이죠. 이 녀석은 호시탐탐 기회를 노려요. 레일에서 살짝 벗어나 다른 곳을 구경하고 싶어하죠. 사실 전 그 녀석을 기다려요. 그러면서 규칙에 맞춰 살아요. 어쩌면 둘 중 누구라도 없으면 전 막무가내로 살 거나, 완전 딱딱하고 평범하게 살 거예요. 왜 이리 중간이 없을까요? 친구들이 종종 ‘연구 대상’이라고 했던 말이 이런 것에도 해당하겠죠. 갑자기 앞뒤 없이 샤넬 얘길 했던 그 녀석이 나무님이 당황하지 않았을까 염려되고, 미안하대요.


좋은 사람이 되려 노력하는 건 가식은 아닌 것 같아요. 그것도 저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노력하는 것도 역시 저예요. 사람들 속에서 즐겁고, 무슨 일이든 열정적으로 다 쏟아부어 모두에게 좋은 일이 되게 하려는 것도, 혼자서 우울해질 때 더 우울감으로 들어가 창작의 소재들을 끌어올리는 것도,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탐험하는 것도, 그 모든 게 저예요.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인다는 건, 그 모든 저를 받아들이는 걸 거예요. 하지만 잘 안 돼요. 자유롭게, 자연스럽게, 힘을 빼고 사는 게 잘 안 돼요.

흐음. 잘 안 되는 저도 사랑해줘야겠죠?


나무님의 진심 어린 이야기는 살짝 미소를 띄며, 감사히 들었어요. 세상에 누군가 진심을 담아 저에게 그렇게 얘기해주는 이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참 행복한 일인데 말이죠!


저는 뭔가 좋은 걸 갖는 게 두려운 것 같아요. 안주하게 될까 봐서요. 그러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나, 원하는 것들을 생각해요. 어차피 안주할 수 없는 인간이면서, 하지도 않은 걸 두려워하는 사십이 세 인간.

계속 같이 있을 줄 알았던 부모, 솔직히 엄마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애쓰던 날들이 계속되어 독립하고 싶으면서도 엄마와 아빠는 늘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엄마가 슬슬 정리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니, 느낌이 아니라 종종 그런 얘길 하세요.

시간을 돌려 아빠가 계신다고 해도 제가 아빠 옆에서 애교부리며 잘할 수 없단 걸 알 듯, 엄마에게도 그래요. 그래서 벌써 지금의 절 후회하게 될까봐 걱정해요. 엄마가 떠나고 나면 얼마나 후회할까요? 엄마 옆에 더 있어드리지 못한 걸 굉장히 많이 후회할 거예요. 이렇게 여러 도시를 돌며 살아가는 방식을 택한 걸. 그렇다고 엄마 옆에 있으면서 잘할 수도 없는데 말이죠. 후회할 줄 알면서도 저는 오늘을 살아요. 영월에 가서 아마 공연 준비며, 다른 프로젝트며, 소설로 정신없이 살다가 어버이 날이 되면, 집에 다녀와야지! 하고 움직일 거예요. 엄마에게 잘하지도, 그렇다고 현재에서 제 삶을 즐기지도 못하고, 그렇게 방황하네요. 사십이 센데.


스물한 살이었을 거예요. 이천 명은 왔을 거예요. 학교에서 주최한 무료 사이코드라마였는데, 대공연장이 2층까지 차고 넘쳐 복도에서 사람들이 앉아 있었죠. 왜 그렇게 많이 왔을까요? 어쩌면 아빠 수업을 듣는 학생도 있었을 거예요. 그러려던 건 아닌데, 사이코드라마 무대에서 주인공이 되었어요. 이십 대 학생들 앞에서 전 방황했어요.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도 제가 살고 싶은 저와 아빠가 원하는 딸이 되고 싶은 저와 양쪽을 모두 붙잡고 저는 결정 내리지 못 한 채 드라마가 끝났어요. 모두 갖고 싶어서, 아빠도, 제 삶도. 병행하면 되지 않냐고요? 제 안에 특별하고 싶은 녀석은 부모님이 바라던 큰딸이 아니거든요. 예민 보스 도덕 녀석은 부모님이 바라던 딸이죠. 어쩌면 아닐 지도 모르고요. 제가 만들어낸 ‘모범적인 딸’의 모습일 지도 몰라요. 아직도 선택 못 하고 있네요. 혹은 미루고 있네요. 선택하길...


나무님은 어때요? 선택하지 못하고 남겨둔 게 있나요? 안 하고 싶은 선택이 있나요? 방황하던 때가 있나요? 방황하냐고 물어보면 지금은 그렇지 않으려 애쓴단 말을 할 것 같아서 과거의 나무님에게도 물어보아요. 

삶은 선택의 연속인데, 그 연속을 뛰어넘어, 혹은 살짝 둘 다 붙들고, 살짝 비켜서 살았던 순간이 있었는지, 혹은 지금 그런 게 있는지요?

전 아직도 독립 못 한, 그래서 결혼도 하지 않는 인간입니다. 둘 다 붙잡고 어물쩍 앞으로 나아가고, 어물쩍 두 장을 넘어 쓰지만, 이번엔 그냥 보내볼게요!

보통 이쯤 오면 급하게 마무리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교정을 봤거든요.

갑자기 보냈던 편지에 이어, 약속한 장수를 어기는 불규칙한 용기를 내봅니다.     


2023. 03. 20. 21:26 곧 영월역에 내리는 선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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