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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물작가 윤 Oct 04.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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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작가의 열 번째 편지 

벚꽃이 팝, 팝, 소리를 내며 터지는 느낌이었어요.

나무님의 이야기가 뭔가 생기발랄하고, 정말 포도가 몽글몽글 영그는 느낌이 드는 편지에 저도 조금 어깨를 펴고 편지를 씁니다.

지금은 경기도 파주의 스타벅스예요. 

대학로에 갈 일이 있다는 분의 차를 얻어 타고 옥수역에 내려 일요일 오후의 경의중앙선을 타고 파주에 왔답니다.


강원도 영월 바로 전에 파주에서 3년을 살았어요. 파주는 저를 사랑하기 시작한 곳이에요. 또 정말 많이 아팠던 곳이고요. 오랫동안 바랐던 드럼을 용기 내서 배우기 시작했고, 친구들의 자랑에 움찔도 안 했던 제가 코로나 지원금으로 PT도 받아보았답니다. 계속 관계하기 어려운 사람을 거절해보기도 했고, 너무 고통이 심해 119를 타고 병원에 실려 가기도 하고, 그걸 들키기 싫어 숨어 살기도 했었어요. 아픈 걸 보이지 않으려 끊은 카카오톡으로 인해 아빠의 마지막 즈음엔 통화도 못했었어요. 파주에서 아빠 임종을 향해 달려갔었고, 몸의 고통을 끝내고 싶어 10층 창문에 서서 눈을 감아보기도 했었죠. 며칠씩 연락이 안 되어 친구가 경찰과 119를 부르기도 했었고요.


사실 파주에 살았던 건 단순한 이유였어요. 출판단지요. 그 근처엔 구할 수 있는 원룸이 없어 길 건너 일산인 야당에 살았지요. 조용한 오전에 오래 앉아 있어도 눈치 보지 않아도 되어 종종 오던 곳이에요. 지금은 일요일 오후라 자리가 꽉 차 있답니다. 이어폰으로 들리는 영월군 장릉 상설 공연 오프닝 곡 가이드 음악에 맞춰 남들이 알아채지 못할 만큼 고개를 흔들면서, 시끌벅적한 도시를 즐기고 있습니다. 대학로에서 한 시간 반이 걸려서 파주까지 온 건 친구가 생일 선물로 네일샵에 끊어준 회원권이 남아서예요. 드럼도 친구가 네가 그렇게 원하면 해 보라고 지원해줬었죠. 생각해보면, 저보다 더 선물같은 친구들이 있었어요. 인생은 혼자서는 안 된다는 걸 늘 깨닫습니다. 물론, 나무님도 소중한 한 분이에요.

정신없이 쓴 글에 긍정적 피드백도 해주시고, 고맙고 또 고마워요.


작년 한 해 정신없이 보내고, 터키를 이 주 정도 다녀온 것 빼곤 정말 겨울 끝까지 계속 아팠어요. 사실 터키에서도 매일 진통제와 소화제를 먹었답니다. 올해 시작 내내 아픈 제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럽던지! 얼마나 밉던지!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시간이 얼마나 답답하던지! 그리고 동생 결혼식을 치르며 일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이 바빴던 것 같아요. 결혼식을 올린 모든 이여, 존경합니다!     


지난 편지는 병원에 오가느라 버스와 기차를 타면서 두서없이 꺼내놓았어요. 주제를 생각하지도 않았고, 퇴고도 안 했어요. 볼펜으로 쓴 편지라고 생각했어요. 한글 프로그램은 언제든 수정할 수 있어서 손글씨가 엉망인 제겐 참 좋은데, 대신 자꾸 고치게 되어요. 어쩌면 진심은 두서없는 가운데 나오는데, 뭔가 자꾸 마음을, 말을, 손 보게 되더라고요. 대부분 손 봐서 보내는 것이 당연하죠. 하지만, 제 있는 그대로를 써서 보내도 그 행간의 진심까지 보는 나무님이 제 친구라 정말 고마워요! 제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부지런한 나무님에 비해 저는 몸이 아파 제 자신이 너무 미운 와중에 신경을 돌리려고 영화와 드라마를 잔뜩 보았어요. 너무 많이 보고, 휴대폰으로 봐서 기억에 남는 게 많지 않다는 게 문제지만, 관심을 돌려 제 자신을 미워하는 건 조금 덜해지더라고요. 아이디어도 조금은 생기고, 영상을 통해 힘을 내기도 하고요. 책은 왜인지 손이 잘 안 갔어요. 아마 글을 쓰지 못하고 있는 제 자신이 다시 미워질까봐가 가장 클 것 같아요.     


외로움은 필연적이긴 해요. 세 잎 클로버 가운데 핀 네 잎 클로버도, 바퀴에 바람이 빠지고 손잡이까지 녹슨 버려진 자전거도, 조용한 오후에 계란꽃(개망초) 하나 살짝 흔들고 가는 남실 바람도, 넓고 파아란 하늘에 작고 하얀 구름 하나도. 하물며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관계를 맺고, 손길 없인 생존도 못하니 더더욱 외로움은 당연한 것 같아요.

그럼에도 처음부터 외로움이라는 걸 알지도 못하는 존재는 어쩌면 덜 외로울 지도 몰라요. 사막에 선 나무는 바람과 모래가 친구일 지도 모르고요. 혹은 그립거나 관계해 본 적이 없는 존재는 외로움도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죠.

무엇보다 내가 아닌 존재에 대해 ‘안다’는 것은 얼마나 인간적인 관점인지요. 저는 그래서 잘 몰라요. 모르는 것에 대해 알고 싶은 욕망은 큰 것 같아요. 자료 조사가 즐겁고, 모르던 걸 알아가고, 새로운 걸 경험하는 건 삶을 신나게 만들더라고요.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셨죠? 살아있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건 맞아요. 심지어 저를 좋아하지 않거나 힘들게 하는 사람조차도 진심이에요. 존재 자체로 경이롭잖아요.


꼭 그래서만은 아니고, 나무님은 안 변해도 충분히 멋진 삶을 살고 있어요. 잘 방황해야겠다고 했는데, 제가 아는 나무님은 새로운 변화를 추구했다기보다 자신의 목표를 향해 다양한 시도를 하는 사람이라고 느껴왔어요. 저는 처음 만나 전화번호를 교환할 때 보통 이름과 소속으로 저장해요. 그리고 그 사람과 관계가 깊어지면, 제가 느끼는 그 사람에 대한 표현을 해두어요.

‘열정적 엄마, 자상한 아빠, 누나 맛있는 거, 언니 언제 와’

이게 제 가족 저장 이름이에요. 가족과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열정적인 엄마, 오래도록 따뜻하고 고민한 이야기를 나누는 아빠, 저에게 맛있는 거 사 오라고 당당히 졸랐던 귀여운 남동생, 저에게 집에 언제 오냐고 가장 많이 묻고 절 보고싶다 하는 여동생. 보통 이렇게 설정하고 나면 잘 바꾸지 않아요. 그 사람이 제 마음에 깊이 들어올 때의 느낌을 간직하려고요.


나무님은 앞에 ‘자연주의’가 붙어요. 아마 만나고 오 년쯤 지난 후였을 거예요. 제가 느끼는 나무님은 삶의 방향을 바꾼 적은 없는 것 같아요.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할 때도, 삶의 형태를 바꿀 때도, 이런저런 고민이 있을 때도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할까요? 제가 붙인 ‘자연주의’는 자유의지는 배제하고 주어진 환경에 대한 것을 관찰하는 사전적 의미만을 얘기하는 것은 아니에요.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힘도 가졌고,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사랑하는 눈도 가졌고, 모든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넓은 마음도 가졌다고 느꼈어요. 그냥 ‘자연스럽자! 하는 사람’의 느낌이랄까요?

그러니 충분히 방황하고, 개선하고, 애쓰지 않거나 애써도, 중도를 걸어도 나무님만의 방향이 있으니 어떻게 걸어가도 나무님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심지어 갑자기 삶의 방향을 바꾼다 해도, 목적지를 바꾸겠다고 해도 나무님에겐 자연스럽고, 자연히 잘될 것 같아요!     


어쩌면 인간은 각자 가고픈 방향, 각자 살고 싶은 형태가 있고 그 각각의 모습을 인정받고, 지지받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나무님의 삶을 떠올리고, 나무님에게 얘기하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영월은 시골이라 어른들과 관계 맺을 일이 많아요. 모두 진심으로 저를 걱정하고, 뭔가 잘 되길 바라셔서 하는 말씀인 줄 알면서도 이십 년 내외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 알아주셨으면 할 때가 종종 있어요. 무엇보다 어른들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에서 벗어나려 원가족에게서 독립했는데, 진심으로 걱정해주시는 건 감사하지만 절 도망가고 싶게 만들 때도 있어요.


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지지하기 어려울까요? 너무 가까워서 더 걱정하는 걸까요? 걱정보다 지금은 지지와 격려가 필요해서 더 그런 게 아쉬운가 봐요. 이젠 어린애가 아니니까 지지와 격려 따윈 잊어! 라는 말은 말아주세요. 나이 먹을수록 지지와 격려가 필요하고, 나이 먹어서도 꿈을 꾸는 사람에겐 더더욱 필요한 걸요.

어린이도 청소년도 아닌데, 아직도 독립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시골인 영월에서 가장 싸고 맛있는 카페에 앉아 편지를 마무리해서 보냅니다.     


2023.04.03. 18:01 영월에서 선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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