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님의 열한번 째 편지
요새 커피를 마셔요.
커피를 마시는 게 뭐라고 편지의 첫 머리에 썼냐고요? 선물님도 아실 수 있는데 제게는 커피를 마시는 게 유별난 일이거든요. 저는 원래 그다지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요. 길을 걸으면 10m마다 보이는 커피 집. 그 안에 수많은 사람들. 그걸 보면 세상이 참 이상하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너도 이리 와서 여기 앉아보라고 강요받는 느낌도 들고요. 남들 다 좋아하는 걸 제가 왜 똑같이 좋아해야 하나요? 단지 반골 기질 때문에 커피를 안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좋다 싫다 하기 전에 제 몸이 카페인을 반기지 않거든요. 본능적으로 안 좋아하는 걸 남들이 다 즐긴다고 똑같이 좋아할 필요는 없잖아요? 거리에 아무리 커피 집이 유혹해도 저는 유혹당하지 않아요. 담배를 안 피우는 사람이 도대체 담배를 왜 피우는지 모르겠는 심정과 비슷할 거 같아요.
군대에서 일할 때 한 중령 대대장이 저를 대접한다면서 본인 말에 의하면 ‘아주 귀한 커피’를 내려주었어요. 반반하게 생긴 얼굴에 뒤로 깔끔하게 넘긴 올백. 커피 도구를 만질 때의 정성스러움, ‘이때만큼은 내가 군인이 아니지.’라고 하듯 커피 내릴 때의 우아한 손짓. 어쩐지 ‘난 부드러운 남자야.’라는 아우라를 최대한 풍기고 싶은 듯 했어요. 자기가 줄 수 있는 최상품을 내주는 그에게 자부심이 넘쳐 보였어요.
문제는 저에게 먼저 묻지 않았다는 거죠. ‘커피 좋아하세요?’ 그 한 마디부터 먼저 하는 게 어려웠을까요? 나중에 자기 기대에 못 미치는 제 내색을 보고 묻긴 했지만. 나는 원래 커피를 잘 안 마신다, 별로 안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조차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그래도 이거 정말 좋은 커핀데 한번 드셔 보세요. 오신다고 해서 제가 일부러 준비했어요.’ 이렇게나 친절하게 불편하게 하다니. 결국 마지못해 마셨지만 그 맛이 뭐가 다른지 제가 어찌 알겠어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는데. 그 커피 상찬이 오전이었는데 점심 내내 속이 쓰리기만 했답니다. 아마 ‘아주 귀한 최상품 커피’라서 속이 쓰리기도 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원치 않는 친절이 목구멍으로 넘어가 뱃속에서 부글부글 끓었기 때문이 아닐까 해요.
그런 제가 커피를 마셔요. 희한하지요? 요새 새벽 4시 전에 일찍 일어나니 보통 회사 업무 시작 시간인 8~9시가 되면 졸리기 시작하거든요. 그래서 졸음 쫓는 약으로 커피를 마셔요. 평소에 커피를 안 마셔서 그런지 졸음을 내쫓는 효과가 확실히 있더라고요. 게다가 식사량도 많이 줄였거든요. ‘소식주의자’라는 책에서 소식하면 부자가 되고 성공한다기에 따라하고 있어요. 일종의 극기죠. 내 몸의 충동적 본능을 극복하는 연습을 하는 중이에요. 본능 중에도 강렬한 식욕을 절제할 수 있다면 뭐든 못하겠어요? 식탐이 크지 않은 저에게도 정말 어렵긴 해요. 먹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이제야 알겠더라고요. 식사량도 줄이고 가급적 담백한 음식만 먹으려고 하니 입이 꽤나 심심해요. 뭔가 자극적인 게 끌리지요. 그래서 다소 합법적으로(!) 커피를 마신답니다. 커피를 마시는 게 아주 별미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심지어 커피가 참 맛있기도 해요. 누가 커피를 신이 내린 음료라고 했던 거 같은데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어요. 지금 이 글을 쓰는 것도 새벽인데 커피 향만 상상해도 즐거워지네요. 오 스멜.
인생을 살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면 ‘꼭 그래야만 하는 것은 없다.’라는 거예요. 실천은 요원하지만 머리로는 깨달았으니 남은 생에 부디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래도 좋을시고 저래도 좋을시고 지화자 좋구나! 무릉도원에서 배 띄워놓고 꽃놀이하듯이 말이지요. 커피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는 거지요. 좋아해도 안 마실 수도 있는 거고 싫어해도 마실 수도 있는 거고요. 누가 뭐래도 내 멋에 사는 인생 아닌가요.
이번 선물님의 편지를 읽으면서 선물님은 참 자기 멋대로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뒤죽박죽인 자기 삶에 대해 뒤죽박죽인 듯 정리가 안 됐다고 선물님이 느끼는 것 같았어요. 파주에 살다가 영월에 살다가, 없는 돈으로 드럼도 배웠다가 PT도 받았다가, 119도 탔다가 10층 창문에도 섰다가. 엉망진창이네요. (그래서 제가 선물님을 좋아하는 거예요. 종일 일대일로 상대방의 말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거나 가만히 책상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는 삶보다는 훨씬 다채롭고 흥미롭잖아요.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펄떡이잖아요.) 그런 자기 삶을 즐기기도 하지만 뭔가 ‘왜 내 인생은 이런 건가. 이럴 수밖에 없는 건가.’라고 살짝 한탄하는 목소리도 들리는 것 같았어요.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게 맞나요? 정돈되지 않은 선물님의 삶이 그래서 더 좌충우돌 동해 번쩍 서해 번쩍 이리저리 반짝이는 게 아닌가 생각도 들어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물을 흐린다고 하는데 그 미꾸라지 한 마리 없으면 물속 세상에 무슨 재미가 있겠어요. 우리 모두를 살아있게 만드는 게 미꾸라지 한 마리인 걸요. 밤하늘의 수많은 별들이 아름답게 수놓인 것도 거대한 미꾸라지가 제멋대로 춤을 추며 사방으로 별들을 흩뿌렸기 때문일 거예요. 만일 별들이 일렬종대로 늘어서 있다고 생각해봐요. 혹은 직사각형, 정사각형 모양으로 완벽하게 박혀 있다고 상상해봐요. 얼마나 답답할까요. 그 하늘 계속 쳐다보고 싶지 않겠죠. 안 그래도 사는 게 팍팍한데 각 잡고 한 자리에 붙어 있는 질서정연한 별들을 본다면 숨이 더 막힐 거예요. 아름다움이란 본래 미꾸라지처럼 엉망진창으로 꿈틀대며 사방을 휘저어 놓는 파격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는 거겠지요. 그러고 보면 선물님은 대체 몇 마리의 미꾸라지를 데리고 다니는 건가요? 가는 곳마다 사람들에게 선물이 되어주고 삶을 아름답고 흥미진진하게 만들어주니, 이런 미꾸라지가 또 어디에 있나요? 존재 자체로 경이롭다며 자기를 좋아하지 않거나 힘들 게 하는 사람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하셨죠? 그 미꾸라지야말로 경이롭고도 참 용한 미꾸라지입니다.
저에게 자연주의자라고 불러주신 건 감사해요. 제가 삶의 방향을 바꾼 적은 없어 보인다는 그 말이 참 와 닿았어요. 정말 그랬던 거 같아요. 삶의 큰 줄기는 어려서나 지금이나 한결같은 것 같네요. 그래서 ‘미꾸라지보다는 나무처럼 살아가는 게 내 운명인가.’라고 더 생각해보게 되네요. 그리고 정말 그것이 내 운명이라면 더욱 그것을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허나 이게 참 어려운 지점이에요. 미꾸라지가 되고 싶은 나무. 그 나무에게는 결코 미꾸라지가 되지 못하는 게 일종의 처형이 될 수도 있잖아요. 한 자리를 떠날 수 없는 게 타고난 운명이라면.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가 전혀 없기에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는 것이겠지만. 그렇지만 여전히 나무의 수액에 미꾸라지가 유영하고 있다면. 줄기마다 이파리마다 미꾸라지를 그리워하고 있다면. 미꾸라지처럼 진흙탕이라도 구르며 활개를 치고 싶은 이 세상의 모든 나무에게 애도와 위안을 표합니다. 미꾸라지도 나무도 갈색 빛깔은 비슷한데 어찌 이리 다른 걸까요? 이렇게 비유하고 보니 선물님과 저는 비슷하면서도 참 다른 사람이네요.
그러고 보니 커피도 갈색이에요. 커피로 이 편지를 시작한 게 우연이 아닌 거 같아요. 시작을 커피로 했으니 마무리도 커피로 해볼까 합니다. 제가 커피를 마신다는 건 제 마음에 미꾸라지를 들이켜는 것과도 같아요. 내 삶의 방식이 아닌 것을 내 몸에 주입하는 것. 정화수의 고요함을 깨고 첨벙대며 파문을 일으키는 것. 내가 아닌 내 모습도 받아들이는 것. 내가 아닌 나와도 함께 사는 것. 사실 ‘내가 아닌 나’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 같아요. ‘내가 아닌 나’는 내가 누군지 명백히 알 때나 할 수 있는 소리니까요. 내가 아닌지 맞는지는 품에 끼고 살아봐야 알겠지요.
왜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고 지지하기 어려우냐고 물으셨지요. 다들 자기의 ‘있는 그대로의 나’도 모르니까 그런 거 아닐까요. 그리고 나도 모르는 ‘있는 그대로의 나’가 타인에게는 보이는 걸 수도 있고요. 그럴 확률이 대단히 높지 않을까 싶어요. 뭐든 가장 가까이 있으면 오히려 가장 안 보이잖아요. 나에게 언제나 가장 큰 수수께끼는 나 자신이잖아요. 그런 거예요. 살면 살수록 나는 나를 모르겠어요. 예전에는 나를 알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몰라도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여전히 끝장을 볼 때까지 알고 싶은 욕구도 강렬하지만. 나를 모를 때 사는 게 훨씬 재미있는 거 같아요. R.P.G Shine 노래 가사처럼 나를 모를 때에만 어깨가 부서져라 부딪히며 로켓 펀치도 날리며 사는 걸 거예요. 알면, 정말 다 알면 아무것도 하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상담을 하나 마치고 와서 다시 쓰니 오전 11시가 넘었네요.
엄청 화창해 보여서 좋아했는데 미세먼지가 극악이라는 날에.
대전에서 있는 그대로의 나답지 않게 커피를 맛있게 홀짝이고 반짝 든 정신으로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2023.04.07. 11:17 대전에서 상담사 나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