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 어색한 만남
모두가
자신이 꿈꿔왔던
결혼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어떤 특별한 날에
어떤 결혼식장에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신랑과 신부를 맞으며
어떤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떤 예물을 준비하고
등등등
그리고 덧붙여
이후, 꾸리게 되는 아름다운 가정 또한 상상했을 것이다.
내가 꿈꿔왔으며
내 세상을 만들어갈
그 모든 것들이 사라진
그 어떤 사건
그 시작은
예기치 않은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보스턴에서 만났던
어떤 인연의 보은으로
새로 사귀게 된 여자친구는
나보다 나이는 무려 9살이나 어렸고
나이뿐만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상대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다.
뭐 결혼적령기의 남자들이 생각하는
이상형 여인의 모습은
분명 실제와는 다르게 부풀려지는 모습들이 있겠지만은
그것과는 또 다르게
그냥 나와는 아예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는 느낌이 있었다.
여자친구는 순수했다.
어떨 때는 지나칠 정도로 순수해 보였다.
소위말하는
젊은 세대에 부합되지 않은
때 묻지 않음이 보였었고
어떨 때는 너무나도 순수하여
모르는 게 너무 많은 순수 그 자체의 어린아이처럼 느껴졌었다.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친구가 모르는 것이 많아서 대화가 끊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지만
너무나도 많이 알고,
너무나도 많이 따지는 그런 부류들보다는
그게 더 나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 사람과 처음 사귀었던 시기는
내가 일이 많이 바쁘던 사회 초년생 시기여서
친구들도 아예 못 만났었고
정작 사귀게 된 그 사람과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겨우 봤었다.
그리고
그러던 어느 날
여자친구의 어머님이 나를 호출했다.
불과 사귄 지 5개월 정도 되었을 즈음에...
나는 그 어른이
금지옥엽인 딸이
나이가 너무 많은 남자를 남자친구로 두고 있는 것에
반감을 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긴장한 상태로 약속장소로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의 심정으로 나갔었는데
어머님은
나의 긴장이 무색해질 정도로 쌍수를 들고 나를 반기셨고
시종일관 웃고 계셨다.
그렇게 어머님과의 만남이
다소 이상한 느낌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바로 그다음 주에
여자친구의 아버님의 호출로
여자친구의 아버님까지도 갑작스레 만나게 되었다.
아버님 또한
어머님과 마찬가지로
시종일관 웃고 계셨다.
그리고
만나서 30분도 안 돼서 나에게 하시는 말이
"그래서 날은 언제로 잡을 텐가"였다.
나는 사귄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여자친구와의 결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었기에 많이 당황했었다.
그래도 어른이 질문했으면
무안하지 않게 받아야 된다는 생각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애매하지만 긍정적인 답변을 했다.
"아직... 아 내년쯤 어떨까 생각은 해봤었습니다."
아버님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셨고
그렇게 그 이상하고 묘했던
두 번째 만남도 마무리가 되었다.
그 두 번의 만남에서
여자친구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나를 한 번만 보고 사위로 삼으시려는 것도 많이 이상했고
또
나를 만난 처음부터 시종일관 웃고만 계신 것들 또한 계속 어색했었다.
나는 그냥
'원래 좋으신 분들이라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구나.' 정도로
치부하고 그때는 넘어갔었다.
그날 이후에
여자친구 집안의 주도로
갑작스레 결혼 준비가 시작되었다.
결혼을 할지 안 할지도
내 안에서 조차도 제대로 결정하지 않은 시점에서
우습게도
나의 결혼준비가 그렇게 갑자기
시작되어 버린 것이었다.
일평생을 타인들의 감정을 배려하면서
타인들 민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렇게 무안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눈치를 보며 살아온 나인건 맞았지만
가장 내 생각만 하고
가장 이기적이어야 할 결정을
나는 그렇게 애매한 대답으로
남에게 맡겨 버렸다.
그때를 다시 기억해 보자면
나와 전혀 다른 세계에 사는듯한 여자친구가
나와 무언가 맞지 않는다 라는 느낌의 여자친구가
결혼을 망설이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었고
사실 그렇다면
내가 결혼의 상대로 상대방을 고려하는 것에 시간이 걸려야 맞는 것이지만
만났었던 그 집안의 어른들이 어색했지만 나를 보고 항상 웃으셨던게 좋아 보이기도 했고
그 어른들의 내 직업에 대해 이해도가 높으셨고,
또 높게 평가를 하셔서
그런 긍정의 요인들이 있다고 생각을 하고 나니
"그냥 결혼은 원래 하나도 안 맞아도 이렇게 하는 거 아닌가?"라고
"안 맞는 건 차차 맞춰가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내 안에서 합리화가 진행되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로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의 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것이 나중에 회복되거나
문제없이 사라질 거라는
근거 없는 믿음을 가지며
내 의지도 없이
남의 의지로 시작해 버린 결혼준비를
자연스레 나도 하게 되었고
그러한 결정이
내 인생에 얼마나 큰 굴곡을 만들지는
이때는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